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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똑 군, 페북 양

‘속도전’에 희생당한 삶

새해는 휴대폰 알림음과 함께 왔다. 지인들이 보낸 메시지들이 주루룩 뜬다. 한 해 고마웠다, 복 많이 받으시라, 내년에는 자주 만나자. 대개 그런 내용이다. 보신각 종이 울리는 순간 ‘카카오톡’에서는 집단 채팅이 시작된다. ‘페이스북’에도 이런저런 메시지들이 올라왔다. 뉴욕에 있는 친구는 타임스퀘어 광장에서 찍은 사진을 올렸고, 오클랜드에 있는 지인은 스카이 타워의 화려한 불꽃놀이 동영상을 올린 뒤 안부를 물었다.


(정원식기자)



대신 내 책상 위에는 크리스마스 카드나 연하장이 거의 사라졌다. 얼리어답터도 못되는 중년 사내의 연말연시가 이랬으니 이 나라 많은 이들의 새해도 별반 다르지 않았으리라. 불과 1년 전만 해도 볼 수 없었던 풍경이다.

새해 신새벽 아들 녀석과 함께 해돋이를 보러 뒷산에 올랐다. 오르기 전 휴대폰을 뒤적거려 날씨를 확인한다. 산에 오르다가 처음 만난 건 집토끼도 산토끼도 아닌, 공원에서 키우는 ‘고도비만’ 토끼들이었다. 아들 녀석이 사람을 보고도 도망가지 않는 토끼들의 모습을 동영상으로 담으려 했지만 휴대폰이 없다. 휴대폰을 놓고 온 것이다.

점심 무렵 오래 만나온 친구들과 가족모임을 했다.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가까운 친구집으로 몰려갔다. 차 한 잔을 마시면서 나눈 담소는 주로 스마트폰의 ‘놀라운 능력’에 대한 거였다. 왕년의 추억이나 자식 이야기 대신 스마트폰의 수 많은 ‘애플’ 활용법이 화제가 됐다. 이걸로 고스톱도 치고, 명함을 찍으면 자동 저장되고, 얼굴을 찍으면 연예인 누굴 닮았는지 다 나온다. 뭐 그런 얘기들이다. 두 아들을 모두 미국에 보내놓은 친구는 화상전화로 자녀들을 불러냈다. 4살짜리 손녀의 재롱을 보고, 작은아들이 사귄다는 미국 여자애와 새해인사를 나눴다.

새해인사 온통 스마트폰과 SNS

아들이 사서 보내줬다는 아이패드가 등장하자 스마트폰도 화상전화도 화제의 뒷전으로 밀렸다. 온통 아이패드가 몰고올 혁명(?) 얘기다. 정작 사업은 잘되니? 다음 대권은 누구야? 이러다가 늙으면 뭘 먹고살까? 그런 얘기들도 못하고 헤어졌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내 삶이, 우리네 삶이 ‘보이지 않는 힘’에 포획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조지 오웰의 탁월한 소설 <1984>의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는 소리를 줄일 수는 있으나 끌 수는 없는 텔레스크린의 감시 속에 산다. 한 여인과의 사랑조차도 텔레스크린의 감시망에 걸려 포기한 채 자신이 살아남기를 택하는 비극적 결단을 내린다.

어쩌면 우리 모두 윈스턴 스미스가 돼가고 있는 게 아닐까. 모두들 기기값과 통신비에 쩔쩔 매면서도 세상의 트렌드에 뒤처질까봐 전전긍긍한다. 그 사이 전자회사의 주가는 치솟고, 통신회사의 이익은 쌓여간다.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 이건희 등 몇몇 ‘빅 브라더’들은 마치 세계의 구원자인 양 칭송받는다. 이들은 수많은 감시카메라에 포획된 소비자들이 탈출을 시도하면 또다시 새로운 전자기기로 유혹한다.

정부는 첨단 신제품의 실험장이 된 이 나라가 자랑스럽다고 홍보한다. 위정자들 역시 삶의 질이나 국격은 곧 신기술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몇몇 신기술의 리더그룹이 이 나라 국민들을 먹여살릴 수 있다고 장담한다. 마구잡이로 방송 채널을 허가해 홍보 역량을 강화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마치 ‘소작농’들이 잘살려면 ‘만석꾼’이 흥해야 한다는 논리와 다를 바 없다.

과연 그럴까. 위정자들이 이 땅의 서민들에게 그렇게 설파하는 동안 양극화는 심화됐다. 취직이 안되는 청년들은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스마트폰을 사고, 각종 통신비 지출로 서민들의 가계부담이 대폭 늘어났다. 중소기업들은 대기업의 하청업체로 전락했고, 전통적인 제조업체들은 이미 문을 닫은 지 오래다. 그러는 사이 서민들은 자본의 덫에 갇혀서 빚더미에 허우적거린다.

철학은 없고 기술에 포획된 삶

책상머리에 앉아 정책을 입안하고 결정하는 사람들은 장차 이 문서가 이 나라 서민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늘 고민해야 한다. 조금 더디게 가더라도 속도전에 희생당할 사람들이 없는지 챙겨야 한다. 말과 행동이 다른 통치철학의 부재, 인간냄새가 배제된 일방통행식의 통치가 우리네 삶을 어떻게 망치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사인 한 장 잘못하면 그 여파가 부메랑이 되어 당신들의 삶을 덮칠 수도 있다.

새해에는 지난해처럼 ‘참 거시기한 세월’이 다시는 안왔으면 좋겠다. 아니, 오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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