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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다방은 어디로 갔을까?

조용필과 가을

‘살면서 듣게 될까 언젠가는 바람에 노래를/ 세월 가면 그때는 알게 될까 꽃이 지는 이유를/ 나를 떠난 사람들과 만나게 될 또 다른 사람들/ 스쳐가는 인연과 그리움은 어느 곳으로 가는가/ 나의 작은 지혜로는 알 수가 없네/ 내가 아는 건 살아가는 방법뿐이야/ 보다 많은 실패와 고뇌의 시간이/ 비켜갈 수 없다는 걸 우린 깨달았네/ 이제 그 해답이 사랑이라면/ 나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 - 조용필 ‘바람의 노래’ 일부


경향신문 DB

가을은 조용필과 함께 깊어간다. 조용필의 노래는 유독 가을을 닮았다. 그의 노래에서는 낙엽 태우는 냄새가 나고, 단풍나무 숲 사이 작은 오솔길도 보인다. 그의 목소리는 가을산 메아리를 닮았고, 노랫말에서는 시인의 정서가 듬뿍 묻어난다. 격정적이고, 달콤하며, 사색적이다. 

나는 가을을 그의 공연과 함께 시작한다. 요즘 주말마다 조용필은 전국의 스타디움에서 단독 공연 ‘바람의 노래’를 펼치고 있다. 공연장에는 매번 2만명 안팎의 관객들이 몰린다. 관객층은 주로 이젠 나이를 속일 수 없는 중장년들. 조용필은 그 세대가 모두 따라 부를 수 있는 히트곡을 가진 유일한 가수다.

어느 가수의 공연이 이처럼 드라마틱할까.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거대한 무빙스테이지가 객석 한가운데로 이동하면서 모든 관객이 노래를 따라 부르는 ‘노래방 타임’이다. 함께 노래를 부르는 관객들의 얼굴에서 아름답거나 쓰라린 추억들이 피어오른다. 조용히 눈물을 흘리다가 누가 볼까봐 손수건으로 눈가를 훔치는 관객도 있다. 하여, 그의 노래와 함께하는 가을밤은 마치 오랜 연인을 만나 속삭이는 아름다운 시간이다.
 

경향신문DB


얼마 전 한 출판사 간부가 예쁘게 포장된 노트를 들고 왔다. 그 노트에는 조용필의 1집부터 18집까지 모든 노랫말이 인쇄된 듯 깨알같이 쓰여 있었다. 사춘기 소녀시절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학업을 포기한 그에게 조용필의 노래는 유일한 위안이었다고 했다. 그는 주경야독 하면서 중·고등학교 검정고시에 합격, 오늘날 유수의 출판사 부사장 자리에 올랐다. 그 노트는 그때 힘이 돼주었던 우상에게 바치는 헌사였다. ‘당신과 함께 한 시대를 살게 돼서 다행’이라는 팬들의 찬사가 가슴에 와 닿는다.

그러나 그가 수십년을 ‘가왕(歌王)’으로 군림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나는 가수다’에 출연했을 때 보여준 후배 가수들의 한결같은 존경의 언사들은 단순히 선배라는 이유만은 아니었다. 그는 정확하게 후배 가수들의 문제점을 기분 나쁘지 않게 짚어낸다. 한 치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는 그의 프로정신은 혀를 내두를 정도다. 쉰 살 안팎의 멤버들로 구성된 그의 밴드 ‘위대한 탄생’은 늘 완벽을 추구한다.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 최고의 밴드지만 조용필은 그네들의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다. 연습, 또 연습한다. 조용필이 도면을 그려가면서 직접 연출하는 무대 또한 늘 새롭고 신선하다. 최고의 무대를 만들기 위해 외국 팝스타들의 공연을 두루 보면서 연구하고, 또 연구한다. 많은 공연 수입들을 무대에 쏟아부어서 별로 남는 게 없는 공연이기도 하다.

경향신문 DB

 

하지만 허리 통증에 시달리면서도 매주 무대에 오르는 조용필의 ‘투혼’을 누가 알까. 한동안 그는 진통제를 맞으면서 무대에 올랐지만 목소리에 영향을 준다는 이유로 그마저도 거부한 채 무대에 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단 한 차례도 초대가수를 무대에 세운 적이 없다. 혼자서 두 시간여의 공연을 꼬박 책임진다. 저 남도 끝에서 공연을 하고도 끝내 집으로 돌아오는, 돌아와서도 불면증 때문에 고생한다는 ‘고독한 거인’ 조용필. 나는 그의 완벽주의를 존경하지만 사랑하지는 않는다. 소주만을 고집하는 애주가인 그는 왕년에 비해 주량이 크게 줄었다. 한 치의 빈틈을 보이지 않던 그도 요즘 술에 취하면 외로움을 토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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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그랬으면 좋겠다. 최근 비틀스의 전 멤버 폴 매카트니는 일흔 살의 나이에 18살 연하의 신부를 맞았다. 

아직도 미소년 같은 조용필에게 ‘뜨거운 연애’ 상대가 나타났으면 좋겠다. 텅 빈 집에서 소주를 마시면서 음악 얘기밖에 할 줄 모르는 그가 세상 가운데로 나왔으면 좋겠다. 해 질 무렵 거리에 나가 차도 마시고, 배낭을 메고 ‘대전발 0시50분’ 기차에도 올랐으면 좋겠다. 남몰래 거액을 기부하고도 시치미를 떼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가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아니라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슬픔도 기쁨도 외로움’도 함께하는 조용필이기를….

가을이 절정이다. ‘그 언젠가 나를 위해 꽃다발을 전해주던 그 소녀’가 그립다. 햇빛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고 했던가.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조용필은 이미 신화이고 역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