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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도 빵도 안되는 시

오광수의 오솔길 3



喪家에 모인 구두들 
                      /유홍준/

저녁 喪家에 구두들이 모인다

아무리 단정히 벗어놓아도

문상을 하고 나면 흐트러져 있는 신발들

젠장, 구두가 구두를

짓밟는 게 삶이다

밟히지 않는 건 亡者의 신발뿐이다

정리가 되지 않는 喪家의 구두들이여

저건 네 구두고

저건 네 슬리퍼야

돼지고기 삶는 마당가에

어울리지 않는 화환 몇 개 세워놓고

봉투 받아라 봉투,

화투짝처럼 배를 까뒤집는 구두들

밤 깊어 헐렁한 구두 하나 아무렇게나 꿰 신고

담장가에 가서 오줌을 누면, 보인다

北天에 새로 생긴 신발자리 별 몇 개


-시집 ‘상가에 모인 구두들’(실천문학사)



‘죽음’은 벗어놓은 양말짝처럼 초라하다. 지상의 모든 것들을 벗어놓고 맨발로 떠나는 마지막 길. 폭력과 광기의 생 앞에서 흔들리던 사람들은 비로소 ‘죽음’으로 평등해진다. 죽은 자의 의지와 상관없이 살아있는 사람들이 喪家로 모인다. ‘구두가 구두를 짓밟는 게 삶’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죽음을 잊고 화투짝을 뒤집는다. 상가에 놓인 화환과 구두 몇 켤레의 무게로 亡者의 전 생애를 헤아린다.

죽음은 잊혀짐으로써 비로소 완성된다. ‘담장에 가서 오줌 한 번’ 누고 돌아서면 그만인 지상에서의 인연들. 하여, ‘북천에 새로 생긴 신발자리 별 몇 개’로 떠오르면 물끄러미 바라보는 산 자와 죽은 자의 거리. 하긴, 요즘엔 밤새 화투 치고 술주정하며 망자가 가는 길 외롭지 말라며 밤샘하는 이들도 없으니.

오광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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