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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도 빵도 안되는 시

명태 덕장에서



 명태 덕장에서

 강문숙
 


 대설주의보 해제 되던 날, 대관령
 덕장은 사원이 되어 있었다.
 백색의 골짜기 가장 높고 추운 곳
 수천의 부처가 기립해 있었다.

 마음 비웠다는 말
 이보다 저 정직할 수 있을까.
 물살이 키워온 내장 버리고
 딱딱해진 혓바닥, 짜부라진 눈으로
 기다리는 극락세상. 아직
 멀었다, 멀었다, 쏟아지는 설법처럼
 해풍에 젖은 햇살.

 네 뼈에 살 입힌 곳 북해였다구?
 그럼 동해는 네 지느러미 간질이며
 놀던 곳으로 솟구쳐 오르고 싶었던 날들
 푸른 수초 사이 미끄럽던 사랑
 기억 속에 가두면 향처럼 피어오르는
 이 삶의 비린내여.

 이제 인간의 바다에서 해탈하리니
 가지런히 싸리 쾌에 꿰인 채
 황태,골태……
 바람태가 되면 또 어떠리.

 一시집 `탁자 위의 사막'(문학세계사)

 생태, 명태, 황태, 북어. 지금 비록 덕장에 빨래처럼 내걸렸어도 그대들의 따스한 아침식탁에 오를 날 남아있다네. 그대여 나를 밟고 지나가시게. 황태국물로 뜨끈하게 속을 데우고 아침을 시작하시게. 혹 간밤에 과음 했다면 북어국으로 해장하시는게 어떤가. 온 가족 둘러앉은 저녁 생태찌개 한 남비면 행복도 살 수 있지 않은가.  
 내 생도 사랑과 절망, 만남과 이별의 충만함과 황량함이 가득 했네. 북해(北海)의 차고 맑은 물로 살을 입히고, 동해(東海)의 푸른 물결 속에서 사랑을 키웠네. 저 바다, 어디든 다 내 집이었네. 죽어서도 동해의 양지 바른 바닷가서 풍장(風葬)하듯 세속의 때 벗었으니 안심하고 드시게. `이제 인간의 바다에서 해탈하리니'.  오광수기자 ok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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