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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도 빵도 안되는 시

내가 던진 물수제비가 그대에게 건너갈때

 

사진 경향신문 사진부

 

내가 던진 물수제비가 그대에게 건너갈 때



/권혁웅/


그날 내가 던진 물수제비가 그대에게 건너갈 때


물결이 물결을 불러 그대에게 먼저 가 닿았습니다


입술과 입술이 만나듯 물결과 물결이 만나


한 세상 열어 보일 듯했습니다


연한 세월을 흩어 날리는 파랑의 길을 따라


그대에게 건너갈 때 그대는 흔들렸던가요


그 물결 무늬를 가슴에 새겨 두었던가요




내가 던진 물수제비가 그대에게 건너갈 때


강물은 잠시 멈추어 제 몸을 열어 보였습니다


그대 역시 그처럼 열리리라 생각한 걸까요


공연히 들떠서 그대 마음 쪽으로 철벅거렸지만


어째서 수심은 몸으로만 겪는 걸까요




내가 던진 물수제비가 그대에게 건너갈 때


이 삶의 대안이 그대라 생각했던 마음은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없는 돌다리를 두들기며 건너던 나의 물수제비,


그대에게 닿지 못하고 쉽게 가라앉았지요


그 위로 세월이 흘렀구요


물결과 물결이 만나듯 우리는 흔들렸을 뿐입니다



어린시절 물찬 제비처럼 물수제비를 뜨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둠벙 근처의 돌이 바닥날 때까지 던지고 또 던졌다. 땅거미가 져서 더이상 물수제비의 숫자를 셀 수 없을 때까지. 그렇게 물수제비를 떴던 아이들이 자라 청년이 된다. 어느 봄날, 여자친구 손잡고 강가로 나갈 것이다. 그리고 보여줄 것이다. 납작하게 빠진 ‘몸짱 돌멩이’ 집어들고 멋지게 물수제비를 뜨는 모습을.


그리고 어느날, 그 여인과 결혼하여 낳은 아들이 제법 듬직해 졌을 때 또 강가로 나갈 것이다. 게서, 어떻게 해야 멋지게 물수제비를 뜰 수 있는지 이론과 실제를 겸비한 강의를 할 것이다. 그때 이윽히 두 사람을 바라보는 아내는 생각하겠지. 아득하게만 느껴지는 그해 봄날을. 잡고 싶어도 다신 잡을 수 없는 그해 봄날의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먼 강물 위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를 바라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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