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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다방은 어디로 갔을까?

그 많던 DJ들은 어디로 갔을까?

 


 

사진 경향신문 사진부

 

 

그 많던 DJ들은 어디로 갔을까

 

 

  예전에 방영했던 윤석호 감독이 연출한 드라마 <사랑비>에는 1970년대 음악다방 ‘세라비’가 등장한다. 극중 이동욱(김시후 분)은 의학을 전공하는 명석한 두뇌에 훤칠한 외모, 재치 있는 말솜씨까지 갖춘 세라비의 인기 DJ다. 장발머리와 나팔바지로 한껏 멋을 낸 이동욱의 캐릭터를 스타벅스와 카페베네에 길들여진 요즘 세대들이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그 시절, 음악다방이 있었다. 뮤직박스 안에서 리퀘스트를 받아 턴테이블에 음반을 걸고, 멋진 멘트로 처녀들의 가슴을 뒤흔들던 DJ는 그 시절의 꽃이었다. 처녀시절 음악다방 DJ를 짝사랑하여 매일 음악다방에 출근했다는 아줌마들의 사연이 요즘도 라디오 방송에 심심치 않게 오르내린다.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높은 음악다방에 가면 시간대별로 출연하는 인기 DJ의 이름을 줄줄이 걸어놓고 청춘들을 불러모았다. 인기 DJ들은 팝에 대한 풍부한 상식은 물론 그때그때 적절한 멘트를 구사할 수 있어야 했고, 외모 또한 준수해야 다방 매출에 기여하면서 오래 살아남을 수 있었다. 당시 인기 DJ들은 지금의 아이돌 그룹 멤버들처럼 여성팬들로부터 각종 선물공세에 시달리기도 했다. 1000마리 종이학을 접어 리퀘스트 음악과 함께 선물하는 여성팬들이 있는가 하면, 용감하게 일이 끝난 뒤 따로 만나자는 은밀한 제안을 해오는 여성팬들도 많았다.

 1950년대 말 서울 충무로에 문을 연 ‘세시봉’이 음악다방의 효시라는 이들도 있고, 명동의 ‘은하수’가 최초라는 주장도 있기도 하다. 그후 종로 2가 ‘디쉐네’, 미도파 옆의 ‘라 스칼라’, 화신백화점 3층의 ‘메트로’, 충무로의 ‘카네기’ 등이 잇따라 생겨나면서 70년대까지 전성기를 이뤘다. 최동욱, 박원웅, 김광한, 이종환, 황인용, 김기덕, 전영혁, 이문세 등이 FM라디오의 DJ로 명성을 날렸지만 각 도시의 음악다방 인기 DJ들은 가요계의 히트곡을 만들어낼 만큼 파워도 있었다. 70년대 고 김정호의 매니저였던 이상기씨(72)는 “당시에 새 앨범을 내면 전국의 유명 음악다방을 돌면서 DJ를 만나 홍보를 부탁했다”면서 “음악다방이 새 노래를 홍보하는 주요 창구 중의 하나였고 그 중심에 DJ들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80년대에서 90년대 초반에 이르기까지 전국 DJ연합회가 주 1회씩 발행하던 인기가요차트가 가요계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전업 DJ들은 나름대로 전문성을 유지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만 했다. 당시 DJ들의 필독서는 <월간 팝송>이라는 팝 음악 잡지였다. 전 세계 팝스타들의 최근 소식은 물론 팝 용어들을 알기 쉽게 설명하기도 하고, 유명 팝 음악의 노랫말을 우리말로 번역하여 싣기도 했다. 정보에 목말랐던 DJ들에겐 가뭄 끝 단비와 같은 전문잡지가 아닐 수 없었다. 요즘에야 밥 딜런이나 스팅, 에릭 클랩튼, 보니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팝 스타들이 내한공연을 갖는 시대지만 당시에는 해외 팝스타의 새 앨범 소식조차 미디어를 통해 쉽게 접하기 힘든 시대였다.

 음악다방 DJ가 급격하게 쇠락의 길을 걷게 된 것은 80년대 중반 이후였고, ‘88 올림픽’이 열렸던 88년에는 거의 자취를 감췄다. 여러 가지 요인이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스테레오 사운드를 들을 수 있는 오디오가 각 가정에 보급되면서부터였다. 또 LP가 사라지고 CD가 보급되면서 각 개인들이 휴대하여 음악을 재생해 들을 수 있는 CD플레이어가 등장한 것도 음악다방의 몰락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제는 CD조차 구경하기 힘든 시대가 됐으니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세월이 흘러도 지직거리는 빽판으로 음악을 듣고, “오늘은 왠지…”로 시작하는 DJ들의 닭살멘트가 그리워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커피도 직접 가서 주문해야 하고, 소위 ‘테이크 아웃’이 보편화 된 요즘의 커피숍을 보면서 문득 그 많던 ‘레지’(다방 여종업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궁금해진다.

 80년대 라디오를 주름잡았던 유명 DJ중 한 명이었던 김광한 선생이 유명을 달리한 지금, 아날로그와 LP시대가 대중문화의 황금기였다는 생각이 자꾸 드는 것은 왜일까. 쭉쭉 빠진 아이돌 그룹이 전 세계를 석권하고, 미국 본토 가수들보다 힙합을 더 잘부르는 래퍼들이 넘쳐나는 시대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