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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니뭐니 해도 뒷담화

춤도 노래도 퀸, 섹시여가수의 계보

올여름 소위 ‘걸그룹 대전’에서 화제가 됐던 건 섹시컨셉이었다. 걸그룹들이 섹시코드를 내세우는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올여름 들어서는 그 농도가 더 심해진 듯하다. 걸그룹 ‘스텔라’는 아예 끈팬티 의상을 선보여 논란의 중심에 섰다. 치열한 전장터를 방불케 하는 걸그룹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섹시함을 무기로 삼을 수밖에 없다지만 때로 도가 지나쳐서 섹시함보다는 불쾌함을 느끼게 하기도 한다.


그리 길지 않은 가요 역사에서 섹시 여가수는 어느 시대에서나 남성 팬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고, 특히 군인들의 사랑을 듬뿍 받아왔다. 자타가 공인하는 섹시여가수들은 단순히 섹시한 외모에만 방점이 찍히지 않고 음악적으로도 높은 완성도를 보였다.


각 시대를 대표할만한 섹시 여가수의 계보를 훑어보는 것도 납량용으로 나쁘지 않을 듯하다. 누군가는 나도 나름대로 섹시한 여가수였다고 주장하겠지만 단순한 섹시함 뿐 아니라 음악적으로도 족적을 남긴 여가수들을 중심으로 알아보자.


70년대에는 ‘바니걸스’(‘토끼소녀’로 이름 바꿈)나 ‘펄 시스터즈’가 섹시함을 무기로 브라운관과 밤무대를 누비면서 활동했다. 걸그룹의 효시(?)였던 이들은 군인들의 위문공연이나 해외동포 위문공연, 밤무대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재미있는 일화도 있다. 70년대 인기가 높았던 아나운서 김동건씨의 회고담. 박정희 정권 시절에 외화벌이를 위해 광부와 간호사를 모집하여 독일에 보낸 건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김동건 아나운서와 ‘바니걸스’ 등 여러 가수들이 파독 광부와 간호사를 위문하기 위해 독일에 갔다. 공연을 끝낸 김동건 아나운서에게 안내를 맡았던 현지 교포가 솔깃한 제안을 했다. 호텔 근처에 한국에는 없는 ‘혼탕’이 있으니 함께 가보지 않겠느냐는 거였다. 용기를 내서 모든 남녀노소가 다 벗고 목욕을 한다는 별세계를 구경하기 위해 따라 나섰다. 아무 거리낌없이 함께 탕을 드나들면서 목욕을 하는 독일인들의 별난 문화에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나는 사람 하나 없는 데 어떠랴 싶어 여기저기 구경(?)하러 다녔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참을 보다보니 사우나의 뿌연 수증기 너머로 머리가 까만 동양인 여성 두 명이 보인 것이다. 신기하다 싶어서 좀더 가까이 갔는데 아뿔싸, 거기엔 놀란 토끼눈으로 김동건 아나운서를 보고 어쩔 줄 몰라하는 ‘바니걸스’가 있었다는 얘기다.

 

 

김추자

 


여하튼 이들 여성 듀오의 활약도 만만치 않지만 70년대를 대표하는 섹시여가수의 대명사는 단연 김추자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과감하게 몸매를 드러낸 판타롱 바지를 입고 무대를 누비던 김추자는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로 사내들을 뒤흔들었다. 특히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이 만든 음악은 파격적이었다. ‘빗속의 여인’‘거짓말이야’‘무인도’‘님은 먼곳에’‘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등 지금 들어도 전혀 손색이 없는 노래들이었다. 한국적인 소울풍의 리듬감 넘치는 신중현의 노래를 ‘섹시한 가창력’을 가진 김추자가 완벽하게 소화해 냈다. 지난해 33년만에 컴백공연을 하기도 했던 그녀는 ‘담배는 청자, 노래는 추자’라는 유행어를 만들 정도로 남자들의 마음을 뒤흔드는 여가수였다. 신중현과 김추자가 소위 ‘대마초 파동’으로 가요계에서 강제 전역(?) 조치를 당하지 않았다면 한국 가요계의 지형도는 많이 바뀌었을 것이다.

 

 

 

혜은이

 


80년대 여가수 중에는 상당히 대비되는 두 명의 여가수가 있었다. 바로 혜은이와 나미다. 혜은이는 누구인가? 그녀는 도발적인 섹시함보다는 남성의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가냘픈 이미지의 여성성으로 섹시한 여가수 반열의 맨 앞에 섰다. ‘감수광’‘제3한강교’‘열정’‘당신은 모르실거야’등 지금도 노래방 애창곡으로 불려지는 그녀의 노래들은 고 길옥윤씨의 작품이 대부분이었다. 클래식한 리듬과 멜로디에 가냘픈 느낌의 보컬이 어우러져 엑스타시를 느끼게 하는 혜은이의 노래가 그 시절 대중들의 정서를 녹였다.

 

 

나미

 


그에 반해 나미는 노래와 춤으로 섹시함을 분출하면서 섹시여가수 계보를 이어갔다. ‘인디언 인형처럼’‘빙글빙글’‘슬픈 인연’등 허스키 하면서도 리드미컬한 노래로 대중들을 사로잡은 그녀는 요즘 걸그룹의 컨셉과 가장 유사한 패션과 춤을 보여줬다. 그녀의 음반을 제작했던 최봉호씨와의 결혼으로 가요계에서 자취를 감췄지만 그녀의 앞서가는 감각은 지금 되새겨봐도 신선하다.

 

 

김완선

 


1980년대 중반 혜성처럼 나타난 김완선 역시 섹시여가수의 계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록과 댄스가 어우러진 노래와 섹시한 음색으로 여가수로서는 드물게 100만장이 넘는 음반을 팔아치운 여가수였다. 요즘의 아이돌 그룹들은 적어도 2~3년 동안 연습생 신분으로 춤과 노래를 배우지만 80년대만 하더라도 그런 과정은 없었다. 김완선은 최초로 전문적인 댄스수업을 통해 가수로 만들어진 케이스였다. 그녀의 이모이자 제작자였던 고 한백희씨가 ‘섹시한 여가수’를 목표로 춤과 노래를 연마시켜서 시장에 내놨다. 특히 게슴츠레한 그녀의 눈빛은 뭇사내들의 애간장을 녹이기에 더없이 훌륭한 무기였다.

 

 

핑클-이효리

 


그 이후에도 엄정화, 이효리, 손담비를 비롯해 요즘 인기를 얻고 있는 현아에 이르기까지 섹시여가수의 계보는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한 선배 여가수들의 눈물겨운 노력이 있었기에 그 계보가 쓰여질 수 있었다. 여가수들에게 섹시함은 스무살 빛나는 시절에만 연출할 수 있는 최고의 무기다. 김추자나 혜은이, 나미나 김완선에 이르기까지 중년의 문턱을 넘고 있는 지금, 그녀들의 춤과 노래에 넋을 놓고 바라보던 그 시절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