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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도 빵도 안되는 시

화전민의 꿈

 

               강원도 정선 화전민이 떠난 폐가. 경향신문 사진부

 

火田民의 꿈


1

우리들 삶은 부질없이 부는 바람과 같아

어느 땅에도 뿌리 내리지 못하고

어느 하늘에서도 잠들지 못한다

가없이 넓은 하늘과 땅이 있지만

우리가 머물 곳은 아무 데도 없고

바람이 불을 일으켜 땅을 만들면

그 땅을 일구어 자식들을 길들이고

아침마다 산허리를 감싸는 안개와

흰 서리의 섬뜩한 촉감을 사랑하며

또 하나의 집을 허물 뿐이다


2

서러워 말아라

머리를 두고 눕는 곳이면 어디나 고향이고

너희가 불로 다스릴 수 있는

모든 땅들이 너희들 것이니

지나간 세월을 한탄하지 말고

무리지어 사는 사람들을 부러워 말아라

그들은 너희들이 가지고 있는

안개와 바람과 숲을

기억하지 못하고

지상의 모든 꿈들을

하나 둘 잊어버리며

잊은 것만큼 죽어가고 있으니


3

우리는 죽어서 바람 속으로 떠난다

우리들 신인 불에 몸을 사르고

희디 흰 뼈로 남아서

양지바른 바위 위에 누워 있으면

바람은 밀려와 나를 껴안고

뜨거운 사랑으로 나는 녹아서

바람 속으로 바람 속으로 떠날 것이다

어느 하늘에도 머물지 않고

어느 땅에서도 잠들지 않으며

이 산과 저 산 사이를 맴돌다가

지상의 자욱한 안개로 남아

삶의 빛나는 아침마다

이 땅의 사랑을 준비하리라



오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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