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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니뭐니 해도 뒷담화

김성근혜, 한화야구와 박근혜 정부

 

 

 

 김성근혜, 한화 야구와 박근혜 정부

 

 

 

박근혜 대통령, 사진 경향신문 사진부

 

 

 고백하자면 나는 한화의 팬이다. 한화경기를 보러 야구장을 찾은 적도, 사인을 받기위해 노력한 적도 없으니 열성팬은 아니지만 늘 관심을 갖고 있는 팬이다. 경기가 있는 날이면 한 번씩 승패를 체크하고 그날의 패인이나 승인이 무엇인지, 누가 홈런을 쳤으며 마무리는 누구였는지 챙기는 정도다. 어쩌다 휴일 집에 있게 되면 마누라와 채널 신경전을 벌이면서 흘끔흘끔 한화전을 보기도 한다. 지역연고가 충청도라서 자연스럽게 이끌리기도 했다. 더하자면 늘 꼴찌하는 팀이 언젠가는 위로 치고 올라가는 걸 보고싶어 하는 ‘변방적 정서’도 한 몫 했으리라. 언젠가 소설가 고 박완서 선생이 에세이집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를 써서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른 적이 있다. 그 에세이집의 히트 배경에는 일등을 챙기는 사회보다는 꼴찌에게 애정어린 시선을 보내면서 응원하는 사회를 꿈꾸는 소설가의 따뜻한 마음이 한 몫 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사회는 일등을 위해 수 많은 사람들이 들러리를 서는 사회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한 울분을 풀기 위해 꼴찌를 응원하면서 대리만족을 꿈꾸는 소심함을 용서하시라.
 그리고 또 하나, 나는 박근혜 정부의 안티팬이다. 그 정부를 지지해서 뜨거운 박수를 보낸 적이 없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 대통령을 둘러싼 당정의 말 한 마디까지 늘 챙겨보기에 열성적인 안티팬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한화가 또 꼴찌를 한들 내 삶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치 않지만 박근혜정부가 꼴찌를 하면 나와 내 가족, 나아가서는 우리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기에 ‘팬심’으로 보면 후자가 훨씬 강하다. 한화의 경기 결과는 편한 마음으로 들여다보지만 박근혜 정부의 성적표를 보기 위해서 늘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뉴스를 열어본다. 그러기에 사랑과 미움은 한 끗발 차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쯤해서 김성근호의 한화와 박근혜호의 대한민국을 비교해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어쩌면 스포츠가 정치의 반면교사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순진한 믿음 때문이다.

 

                                          김성근 감독, 경향신문 사진부

                                   

 김성근 감독이 매년 꼴찌를 도맡아하던 한화의 수장으로 임명됐을때 쾌재를 불렀다. 이제 드디어 꼴찌가 일등이 되는 대역전 시나리오를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김성근 감독 역시 미디어데이에서 올 한 해 농사가 끝났을때 한화가 결코 뒤에 서있지 않을 것임을 장담했다. 그리고는 후반기로 접에든 지금 그 꿈의 절반쯤에 정확히 서 있다. 박근혜호는 그럭저럭 성적이 괜찮은 대한민국이라는 팀을 맡았다. 잘만하면 평균성적은 올릴 수 있는 나쁘지 않은 팀이었다. 그러나 역시 집권 후반기에 접어든 박근혜호는 애초 약속했던 공약은 이미 폐기처분한 지 오래고, 그나마도 성적이 바닥으로 추락하고 있다.        
 김성근 감독과 박근혜 대통령. 따지고 보면 공통점도 많다. 우선 두 사람은 수첩을 신뢰한다. 김성근 감독의 수첩은 너덜너덜하다. 경기때마다 끊임없이 메모하고 적는다. 언젠가 그의 수첩을 힐끗 본적이 있는데 너무나 써놔서 보통 수첩의 두 배쯤 돼보일 정도로 부풀어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수첩을 신뢰한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 수첩에 뭘 적어 놨는지 본적이 없다. 다만 그 수첩에 적혀있지 않으면 이 정부에서 절대 요직에 기용될 수 없다는 것쯤은 삼척동자도 안다.
 김성근 감독과 박근혜 대통령은 소위 명문가 출신이다. 김성근 감독은 야구 선진국 일본에서 야구를 배웠고, 지금도 일본의 시스템을 신뢰한다. 우리보다 먼저 프로야구를 시작한 일본에서 그 장점을 배워온 걸 친일이라 하지 않는다. 통계를 중요시하는 일본야구를 바탕으로 선수의 기용과 작전에 있어서 감성보다는 이성이 앞선다. 이를 배경으로 가는 팀마다 꼴찌를 일등으로 만들고 한국 시리즈에서 우승을 하는 등 탁월한 성적을 올렸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정치 명문가 출신이다. 20여년에 걸쳐서 장기집권을 하면서 죽는 순간까지 대통령이었던 아버지 밑에서 일찌감치 퍼스트레이디 대행으로 정치를 배웠다. 일찌기 선거의 여왕이라는 애칭이 생길 정도로 선거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이면서 집권 보수세력의 신뢰를 얻었다. 또 그 후광으로-박정희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던 많은 이들의 지지-로 한나라당을 접수한 뒤 아버지에 이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됐다.
 그러나 두 사람의 행보는 사뭇 다르다. 김성근 감독은 스프링 캠프에서부터 대역전극의 서막을 써내려갔다. 선수들을 조련하기 위해 지옥훈련을 마다하지 않았다. 스프링캠프에서 나오는 뉴스를 보면 마치 이현세의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을 보는 듯 했다. 김감독은 실제로 연습생 출신이나 독립리그 출신들을 과감하게 기용하여 그들에게 야구선수로서 살 수 있는 길을 열어줬고, 다른 팀에서 후보군에 있던 선수들을 데려다가 주전으로 기용하면서 새로운 희망을 심어주기도 했다. 김감독의 선수 기용 스타일은 오로지 실력과 경기에서의 조직력을 우선으로 기용할 뿐 털끔만큼의 사심이 없어 보였다. 겉멋만 들고 실력은 별로인 외인을 과감하게 퇴출하기도 했다. 또 한편으로는 인간적인 면모를 잃지 않았다. 위암수술을 받은 정현석을 기다려주고, 그가 돌아오자마자 중심타선에 기용하여 선수와 팬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그리고 패인을 얘기할 때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기도 했다. 감독이 “나의 판단이 잘못됐다”고 얘기하는 건 결코 쉽지 않다. 그 결과 한화는 ‘마리한화’라는 신조어가 만들어 지면서 열성팬을 끌어모았고, 성적도 지난해와는 전혀 다른 성적을 내고 있다.
 박근혜호는 어떤가. 박대통령은 처음부터 인재를 두루 기용할 생각이 없었다. 소위 ‘문고리 삼인방’을 비롯하여 자신의 수첩에 있는 인재(?)를 기용한 결과 집권 초기부터 윤창중 사건 등 희대의 성추행파문이 국내에서도 아닌 미국에서 벌어지는 등 웃지못할 촌극들이 끊이지 않았다. 정윤회 사건은 또 얼마나 웃기는 촌극이었던가. 게다가 집권 초기에 국민들이 믿고 뽑아주게 만든 수많은 공약을 모두 내팽개쳐버렸다.
 그리고 집권 스타일은 어떤가. 경향신문 이대근 논설실장이 팟캐스트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통치스타일을 다음과 같은 세가지로 잘 정리했다. ‘①직접 나서지 않는다, 대신 아래에 떠맡긴다 ②장관과는 마주 앉지 않는다 ③짐짓 모른 체한다’가 그것이다. 세월호와 메르스사태 그리고 최근 발생한 지뢰폭발 사건에서 박대통령의 행보를 보면 이 세 가지 공식에서 한 치의 어긋남도 없다. 전쟁터의 한 가운데서 직접 앞장서지 않고 뒤로 숨은 장수를 보는 군사들의 심정은 어떠하겠는가. 그때문에 지금 대한민국호는 안팎의 위기 속에 놓여있다. 프로야구는 성적이 저조하면 감독을 교체하는 초강수를 두어 위기에서 탈출할 수도 있지만 대통령의 임기가 보장된 대한민국은 그렇게 하기도 힘들다. 남북관계는 여전히 냉전의 시대 논리에서 한 발자국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으며, 일본이나 미국, 중국과의 외교 역시 수구적이고 보수적인 태도 때문에 한순간 한순간이 위험하다.
 지금 한화는 위기를 맡고 있다. 제 역할을 해줬던 선수들이 하나둘씩 부상을 당해 팀에서 이탈해있고, 온몸을 던져 필승조로 활약하던 권혁이나 윤규진 같은 선수들도 지쳐있다. 솔직히 상위권에 있는 삼성과 넥센과 같은 팀들과 상대할 때면 아슬아슬하고 버거워 보인다. 그러나 팬들은 믿는 구석이 있다. 그동안 김성근 감독이 위기관리 능력을 충분히 보여주었기에 언젠가 위기를 탈출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는 것이다. 또 단숨에 일등을 하라고 강권하는 것도 아니고 적어도 가을야구에 나서는 희망을 보여달라는게 팬들의 소박한 바람이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집권 이후 그러한 위기관리 능력을 한번도 보여준 적이 없다. 그렇기에 국민들은 불안하고 불안하다. 틈만나면 정부를 믿고 따르라는데 도무지 따를 수가 없다. 장수가 전쟁터에서 ‘나를 따르라’고 얘기할 때는 맨 앞장서서 얘기해야 통하는 거지, 뒤에 숨어서 얘기해서는 절대 통할 리가 없다. 얼마전 김성근 감독이 청와대의 초청으로 특강을 했다는 뉴스를 본적이 있다. 물론 그자리에 박대통령이 참석했다는 얘기는 들은 바가 없다.
 일개 야구팀의 운영과 OECD 국가인 대한민국의 운영을 비교하는 건 어불성설임을 안다. 그러나 그 원리는 같다. 모든 일에 성심을 다하는 것, 그리고 그를 지지하는 팬이나 국민이 만족할 때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 목표를 위해 사심을 버리는 것. 집권 후반기를 맞은 대한민국 대통령 박근혜호가 김성근식 야구의 치밀함을 접목시켜 멋지게 위기에서 탈출하기를 간절히 원한다. 내 아들과 딸의 나라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