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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니뭐니 해도 뒷담화

영화 <베테랑>의 막가파 재벌2세 계보도

 

 

 

 

영화 <베테랑>의 막가파 재벌2세 계보도 

 

 

 

                영화 <베테랑>의 포스터

 

영화 <베테랑>은 한국형 코믹액션의 정점에 있는 영화다. 주인공들의 빛나는 연기와 과장되지 않은 리얼한 액션, 3분마다 터지는 코믹한 대사와 장면 등이 잘 버무려진 인절미같은 영화였다. 이 영화의 백미는 서도철 형사(황정민)나 오팀장(오달수)처럼 연기에 정평이 난 중견연기자가 아니라 신진그룹 재벌3세 조태오 실장역을 맡은 유아인이었다. 이미 그는 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역량을 확인시켜준 바가 있지만 이번 영화를 통해 확실하게 연기의 방점을 찍었다.
 영화 속의 조태오 실장은 못돼 먹은 재벌 3세의 쓰레기 같은 작태를 멀티플렉스처럼 보여준다. 마약에 손댄 지는 이미 오래고 광고출연을 미끼로 여자 연예인들을 마구잡이로 농락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마음껏 조롱하는가 하면 수시로 폭력을 행사한다. 부하직원들은 나이를 불문하고 모두가 자신의 종처럼 부리면서 손찌검을 한다. 그는 늘 돈을 앞세워 법 위에 군림해왔지만 쪽팔리기 싫어하는 광역수사대 서도철 형사의 희생양이 된다. 그렇다면 과연 현실은 영화처럼 권선징악으로 끝날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이 나라 검찰이나 경찰의 공권력보다 재벌의 돈이 우위에 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면서 맨 먼저 떠오른 ‘역대급’ 재벌 2세 스캔들은 소위 칠공자 사건이었다. 1970년대 일어난 사건이니 이제는 빛바랜 사건이지만 사고친 재벌 2세 스토리를 얘기할 때면 빠지지 않는 사건이다. 그 사건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 시온그룹 박태선 장로의 장남인 태광실업 박동명 대표였다. 당시 시온그룹은 종교를 등에 업고 승승장구하던 기업 아닌 기업이었다.
 1975년 6월 경향신문 기사에는 외환관리법 위반 등으로 구속된 박동명의 적나라한 사생활이 구체적으로 묘사됐다. 기사에 따르면 그는 26만 5천달러의 외화를 밀반출 하는 등의 혐의로 동부이촌동 자신의 아파트에서 긴급 체포됐다. 체포당시 그는 모 영화사 신인배우로 스카우트 된 강모양과 동침 중이었다. 그가 낮에 하는 일은 여성지나 주간지를 뒤적이면서 마음에 드는 연예인을 점찍는 게 전부였다고. 그러다가 눈에 띄는 여배우가 있으면 재벌그룹 장남이 맞선을 보고 싶어한다고 유인하여 외제차로 남산 드라이브를 한 뒤 자신의 아파트로 데려와서 보디가드에게 제압을 시켜 성폭행을 일삼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농락한 여배우만 10여명에 이르렀고 이때문에 사건에 연루된 신인여배우들은 영화협회에서 제명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여배우에게 돌아간 건 현금 보상도 아니고 집에 쌓아놓은 핸드백과 목걸이였다는 것이 검찰의 발표였다. 박동명은 독일제 아우디 스포츠카를 타고 각종 명품으로 휘두르는 등 전형적인 재벌2세의 호사를 누리면서 도박을 일삼았고, 도박을 해서 돈을 잃자 노름꾼들을 호텔방에 감금하여 폭행하는 악행을 일삼기도 했다.    
 이 사건을 파고 들어가면 소위 ‘7공자’가 등장한다. 박동명과 그룹을 이뤄 함께 엽색행각을 벌이던 재벌 2세들이 그들이었다. 모두 서른 안팎의 재벌 2세들은 서울 시내 비밀 요정 등에서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엽색행각을 즐겼다. 이때마다 소위 마담 뚜들이 영화배우, 모델 등을 섭외하여 그들의 비밀파티에 끌어들인 것. 이들은 하루 저녁 파티에 수백만원(그당시 수백만원이면 지금의 억대)을 뿌려대면서 그당시 서민들은 상상하기 힘든 외제양주를 마셔대면서 마약에까지 손을 댄 것이다. 그러나 명단을 공개하라는 국회와 여론의 성화에도 불구하고 공식적으로 드러난 7공자들의 명단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들의 엽색행각의 희생양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당시 한창 주가를 올리던 여배우들이었다. 전도양양한 여배우들이 하나 둘 배우의 꿈을 접고, 이민을 가거나 은막에서 사라졌다. 그대신 마약파티와 집단 혼음 등 입에 담지 못할 엽색행각을 즐겼던 제벌2세들은 훗날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이 나라 재벌그룹의 총수가 되거나 신문사 사주가 됐다. 영화 <베테랑>의 조태오 실장 역시 온갖 범죄행위에도 불구하고 죄값을 제대로 치루지도 않고 사면 혹은 복권되어 언젠가 기업총수가 되지 않을까?
 이처럼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재벌2세와 연예인의 환각파티는 잊을만하면 한 번씩 신문지상에 등장한다. 주로 검찰의 마약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것들이 대부분이다. 80년대에는 70년대의 7공자에 이어 ‘신7공자’가 등장했지만 이들의 엽색행각은 사건화되지 않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90년대 들어서는 전 검찰총장이었던 채동욱 검사가 서울지검 특수2부 근무 당시 터뜨린 재벌2세와 연예인의 환각파티가 눈에 띈다. 이 사건에는 연예인 이모양이 재벌2세들로부터 거액의 소개비를 맏고 영화배우, 모델, 미스코리아를 소개시켜 주는 ‘마담 뚜’로 등장한다. 이렇게 만난 연예인들과 재벌2세들은 시내 호텔과 일본의 호텔, 전국의 콘도를 전전하면서 마리화나와 히로뽕을 투약하고 상습적으로 섹스파티를 가졌다. 그당시 조서에 의하면 ‘마담뚜’인 이모양의 수입이 한 달에 2천만원에 이르렀고, 재벌 2세들은 화대로 연예인들에게 회당 3백만원에서 1천만원까지 준것으로 드러났다.
 <베테랑>의 조태오 실장처럼 술과 마약에 취해 시내를 휘젓다가 문제를 일으킨 재벌2세들도 있었다. 90년대 중반 국내 굴지의 재벌그룹 2세들과 권력층의 아들들은 외국 유학 중에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귀국, 술에 취해 그랜저를 타고 가다가 소형 승용차를 타고 끼어든 운전자를 건방지다며 구타한 사건도 있었다. 그당시 이들은 벽돌과 화분 등으로 운전자를 구타하여 운전자가 중태에 빠졌다. 이들의 행위는 살인죄에 해당하는 중범죄였지만 그당시 사건 연루자들은 지금 여전히 큰 벌을 받지도 않고 재벌그룹을 운영하는 대표로 잘 살고 있다. 
 영화 <베테랑>에서도 그렇지만 재벌 2세들의 일탈은 신문이나 방송에 보도되지 않고 적당히 무마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경찰이나 검찰의 레이더망에 포착됐다 하더라도 그들의 금력으로 무마하기도 했으며, 설혹 문제가 됐다 하더라도 소위 광고로 기사를 바꿔치기 하는 경우도 많았다. 기자들 사이에서는 모처럼 잡은 특종을 회사가 엿바꿔먹었다고 표현한다.
 모 걸그룹 멤버들이 재벌총수의 술자리에 불려가서 노래 몇 곡 부르고, 술을 따른 뒤 몇 천만원을 받았다더라. 모 여자 탤런트가 최근 스폰서(연예인들 사이에서는 스펀지라고 부른다고. 왜냐하면 스펀지처럼 쭉쭉 물을 빨아들이듯 돈을 빨아들일 수 있는 상대)를 물어서 집과 차를 바꿨다더라. 모 중견탤런트가 재벌집 며느리들 술자리에 잘나가는 남자 연예인 몇 명을 불러내서 질펀하게 놀았다더라. 모 남자탤런트는 강남의 ‘종마’로 활약하면서 몇 년째 출연료 한 푼 벌지 않고도 호화판 생활을 즐긴다더라. 소위 찌라시 같은 내용들이 언론사에 제보되는 경우도 있지만 실제 취재가 되어 기사회 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런 일들이 사생활과 위법, 알권리와 개인의 프라이버시 사이에 어정쩡하게 걸쳐있기 때문이다.
 여하튼 우리 사회가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간극이 갈수록 벌어지고, 물질만능의 세태를 청산하지 못한다면 제 2, 제3의 조태오는 계속 등장할 수밖에 없다. 7공자들이 설치던 그 시절이나 오늘의 세태가 달라졌다고 볼 수도 없고, 마약도 더 은밀하게 유통되고 있으며, 연예인을 꿈꾸는 숫자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지금, 오늘은 일탈을 꿈꾸는 재벌2세 혹은 3세가 활개치기엔 더없이 좋은 세상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