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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니뭐니 해도 뒷담화

통일대박의 천박함

 

 

 

 ‘통일대박’의 천박함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신년사에서 ‘통일은 대박’이라고 표현했다. 나는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귀를 의심했다. 한 나라, 그것도 한글을 가진 자랑스런 나라이자 OECD국가의 총책임자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오다니. 그러나 사실이었다. 그이후 박근혜 정부는 ‘통일 대박’아라는 말을 자랑스럽게 내다 걸고, 통일대박을 내건 온갖 전시성 행사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당시 외신들이 ‘대박’을 ‘Jackpot’으로 번역한 것으로 기억한다. 사실 ‘대박’이라는 표현은 흥행에 크게 성공하여 큰 돈을 벌 때 사용하는 경제용어에 가깝다. 가요계 등에서 ‘대박이 났다”는 표현을 자주 쓰고 좋아한다. 언젠가는 배우 김정은이 나오는 광고에서 “대박나세요”라는 카피로 전 국민의 유행어가 됐다. IMF 등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오죽 힘들었으면 그 말 한마디에 서민들이 위로를 얻었겠는가. 여하튼 ‘대박’이라는 표현은 천민자본주의 냄새가 물씬 나는 표현이 아닐 수 없다.
 박근혜 정부는 통일이 북한의 자원과 남한의 기술력이 만나 시너지 효과를 거둬 경제발전에 기여하고, 나아가서는 시베리아 철도횡단에서 통일한국이 포함돼 물류비가 감소하는 등의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근에도 박근혜 대통령은 ‘통일은 대박’ 이후 만들어진 통일준비위원회에 참석하여 “내년에라도 통일이 될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드러났다.
 나는 이런 발언들을 들을 때마다 분노했다. 이렇게 후안무치할 수 있을까? 틈만나면 남북의 긴장관계를 조성하여 국민들을 불안케 하는 현 정부가 저렇게 뻔뻔하게 통일을 아무데나 갖다 붙여도 되나 하는 분노였다. 
 철책선에서 지뢰가 터져서 우리 병사가 크게 다치고, 예전에 철거했던 확성기를 재설치하여 왕왕대다가 북한의 포사격에 우왕좌왕하는 군의 모습을 보면서 더욱 한숨이 나온다. 더군다나 아들 녀석을 군대에 보내놓은 애비의 심정이 더해지니 더더욱 화가 끓어오른다. 세월호에 메르스로 원투펀치를 얻어맞은 서민들이 이제 좀 살아볼까 하고 희망을 갖고 있는데 거기다가 제대로 찬물을 끼얹었다. 갑자기 군복을 입고 지하벙커로 기어들어가던 전직 대통령 못지 않다. 저런 정부를 믿고 아들을 군대에 보내고 국민세금으로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60만 대군을 유지하고 있단 말인가. 모든게 김정은 때문이다 라고 말하기엔 답답한 정부의 통일정책을 지켜보는 국민으로서 너무나 어이없고 억울하다. 

 따지고 보면 ‘통일은 대박’이란 표현에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의 천박함이 그대로 묻어나 있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에 살면서 우리는 통일에 대해 좀더 세밀하고 전략적이며 나아가서는 철학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존재감 없는 통일부나 가끔 모여서 뭐하는지도 모르는 통일준비위원회로는 더더군다나 힘들다. 게다가 반공을 국시로 하면서 정권의 위기 때마다 간첩단 사건이나 조작하여 정치에 이용했던 아버지를 둔 딸에게서 그런 것들을 기대할 수 없다. 또 북한은 천륜을 저버리면서 피붙이를 숙청하는 망나니와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 3대 세습에 침묵하는 정권의 시녀들이 즐비한 나라다.
 이런 정권이 양쪽에서 계속 되다보니 ‘통일의 염원’이 평가절하됐다. 과거 김구 선생이나 문익환 목사와 같이 진정성을 가지고 통일운동을 하던 분들은 찾아볼 수 없고 하다못해 소를 몰고 북한에 갔던 정주영 회장 같은 경제인조차 없다. 금강산 관광은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얘기가 됐고, 개성공단은 툭하면 폐쇄되어 경제인들이 마음 놓고 일할 수 없다. 수많은 전쟁 1세대들이 유명을 달리한 지금 이산가족 상봉에 대한 희망이나 기대도 요원해지고 있다. 문화교류나 체육교류가 활발하던 시절도 다 지나갔다. 우리는 또 젊은 세대들에게 통일에 대한 진정성 있는 교육을 해보지도 알았다.

 한쪽에서는 ‘통일대박’을 외치면서 또 한편으로는 삐라를 날려보내고, 확성기를 틀어대서는 절대로 통일이 될 수 없다. ‘철없는 재벌 3세’를 연상케하는 김정은을 상대로 우리는 어떻게 통일의 길로 한 걸음 더 나아갈 것인가.

 

                                         김구 선생 동상

 

 영화 <암살>을 뒤늦게 보면서 갑자기 김구 선생의 ‘나의 소원’에 담긴 글 한 줄이 떠올랐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지금 인류에게 부족한 것은 무력도 아니오, 경제력도 아니다. 자연과학의 힘은 아무리 많아도 좋으나, 인류 전체로 보면 현재의 자연과학만 가지고도 편안히 살아가기에 넉넉하다.
 인류가 현재 불행한 근본 이유는 인의(仁義)가 부족하고, 자비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한 때문이다. 이 마음만 발달이 되면 현재의 물질력으로 20억이 다 편안히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인류의 이 정신을 배양하는 것은 오직 문화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말미암아서 세계에 실현되기를 원한다.’
 
 김구 선생의 글에서 ‘어른의 진심’이 느껴진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고 하느님이 물으신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오직 대한 독립’이라고 대답할 것이다.”라는 백범(白凡) 선생의 말에서 대한독립은 통일과 동의어일 것이다. 남북하늘에 날아다닐지도 모르는 포탄의 공포 속에 서 있는 오늘, 우리는 조금 돌아가고 힘들게 가더라도 통일에 대한 철학과 원칙을 세워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 내야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