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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다방은 어디로 갔을까?

가을을 여는 노래, 가을편지의 탄생비화

 

 

연극연출가로 변신한 김민기. 사진 경향신문 사진부

 

 

 

가을을 여는 노래, 가을편지의 탄생비화

 

 아침 출근길 가을하늘이 눈 부시다. 올핸 유난히 여름이 무더워서였는지 성큼 다가온 가을이 반갑다. 가을이 되면 한 번씩 읊조리는 노래가 있다. ‘가을편지’가 그것이다. 사는게 팍팍한 요즘 가을도 편지도 구닥다리가 된 느낌이지만 가을을 여는 노래로 이만한 노래가 있을까 싶다.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
 낙엽이 쌓이는 날
 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
 낙엽이 흩어진 날
 모르는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모든 것을 헤메인 마음 보내 드려요
 낙엽이 사라진 날
 헤메인 여자가 아름다워요

 

 시인 고은의 시에 스무살 청년 김민기가 곡을 붙인 ‘가을편지’. 이 노래의 탄생배경을 추적해보자. 때는 1968년 봄. 시인 미당 서정주와 고은은 육군대학 초청으로 진해에서 열리는 고급장교를 대상으로한 문학강연회에 갔다. 그당시 땡초를 자처하면서 주목할만한 시와 에세이를 발표하던 고은은 용돈이 생기면 술집부터 찾는 낭인이었다. 강연을 마치고 당시 육군대학 총장과 거나하게 술이 몇 순배 돌았을때 한 풍류하는 미당이 한려수도를 볼 수 있게 해군함정을 내달라고 청했다. 지금같지 않은 시대였던지 총장이 해군에 요청해서 배가 준비됐다. 고은은 아지랭이 넘실거리는 한려수도를 함정 위에서 술에 취해 바라보다가 뱃사람들의 노래소리를 듣고 ‘세노야’를 썼다. 최양숙이 먼저 부르고 훗날 양희은이 불러 유명해진 ‘기쁜 일이면 저 산에 주고, 슬픈 일이면 임에게 주리’라고 노래한 그 노래 말이다. 

 정작 고은의 흥얼거림이 노래가 된 건 그해 겨울 서울대학교가 있던 동숭동의 막걸리집 술자리에서였다. 그 자리엔 고은과 대중음악평론가 최경식(당시 이화여고 음악교사)을 비롯해 최씨의 누이동생인 최양숙(가수)과 그녀가 데리고 온 친구 김광희가 있었다. 최양숙과 김광희는 각각 서울대 성악과와 작곡과에 재학 중인 학생이었다. 술이 거나하게 취했을떼 최경식이 고은에게 시 한편을 읊어달라고 청했고, 그때 고은이 흥얼거리며 읊은 시가 ‘세노야’였다. 타령처럼 읊은 시에 김광희가 즉석에서 콩나물을 그려넣으면서 작곡을 했고, 최양숙이 노래로 불렀다.
 그렇게 만난 인연으로 가끔씩 만나 술자리를 하게 된 동숭동 주막집 인연이 ‘가을편지’를 탄생시켰다. 어느날 최경식이 취한 고은에게 음반을 내기로 한 최양숙을 위해 멋진 노랫말을 더 써달라고 부탁하여 즉석에서 받은 시가 ‘가을편지’였다. ‘가을편지’는 술 취한 청년 파계승 고은의 가슴에서 나온 노래인 셈이다. 

 

 

                        서울대 성악과 재학중 가수로 데뷔한 최양숙. 사진 경향신문 사진부 

 ‘세노야’를 작곡한 김광희는 어린시절부터 피아노를 치고 노래도 부르면서 방송에도 출연했던 다재다능한 소녀였다. 그녀가 서울음대에 입학했을 때는 클래식 외에 대중음악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조차 허용이 안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김광희는 존 바에즈 등 외국의 포크가수들의 음악에 흠뻑 빠져 있었고 언젠가 그런 노래들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어쨌든 고은이 쓴 ‘가을편지’는 김광희의 1년 후배이자 서울대 미대 재학 중이던 김민기에게 작곡이 맡겨졌다. 그렇게 해서 고은 시, 김민기 작곡의 ‘가을편지’는 ‘세노야’와 함께 성악과 출신의 가수 최양숙의 데뷔앨범에 수록되게 된다. 최양숙은 원래 오페라의 프리마돈나를 꿈꾸고 서울음대 성악과에 진학했으나 오빠의 권유로 중앙방송국(현 KBS) 합창단원으로 입단해 활동했다. 그녀가 대중가수가 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합창단 시절 해군함정을 타고 해외파병 군인을 위한 위문공연을 가던 차에 해군함정 LST 선상의 여흥시간에 이브 몽땅의 ‘고엽’을 불렀다. 이를 눈여겨 본 방송관계자들이 드라마 주제가를 그녀에게 부르게 했고, 이 노래가 히트하면서 음반까지 내게 됐다. 최양숙은 그러나 대중가수가 된 것을 주위에 숨길 수밖에 없었다. 빼어난 외모와 함께 서울대 성악과 출신으로 전도유망한 성악가가 대중음악으로 전향했기 때문이다. 그당시엔 성악과 학생이 ‘딴따라’로 통하던 대중가수로의 변신은 충격이었다. 그래서 최양숙은 당시 학장이던 현제명 선생(가곡 ‘그네’의 작곡가)에게 혼줄이 나기도 했고, 이로인해 데뷔 초기에 예명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하긴 고은도 그가 쓴 ‘가을편지’를 두고 술 취해서 실수로 끄적거린 것으로 치부했다. 그만큼 70년대 지식계층들에게 대중음악은 ‘근본없는 딴따라’들이나 하는 것으로 인식되던 시절이었기에 시인이나 클래식 작곡가가 대중적인 활동에 가사를 쓰고 곡을 붙인다는게 시나 클래식을 모독하는 일이었다. 
 ‘가을편지’가 원 작곡가인 김민기의 노래로 재탄생한 건 90년대 들어서였다. 이병우의 클래식 기타 연주에 맞춰 불혹을 넘긴 김민기가 떨리는 목소리로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라고 불렀던 그 노래를 처음 듣던 순간 그 설레임을 잊지 못한다. ‘가을편지’는 이동원에 의해서 리메이크 됐고 또 박효신이나 보아가 리메이크하여 부르기도 했다.  
 여하튼 이 가을, 편지 한 장 쓰는 일은 생경한 일이 되어 버렸다. 페북을 쓰거나 메일을 쓸 수는 있지만 특히 신세대에게 편지지에 편지를 써서 가을 우체국 빨간 우체통에 집어넣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긴 조용필의 노래 ‘서울 서울 서울’에 나오는 ‘베고니아 화분이 놓인 우체국 계단, 누군가에 엽서를 쓰던 그녀의 고운 손’도 구문이 되었으니. 그래도 다시 손글씨 쓰기 열풍이 불어오고, 바닷가 우체국에서 1년 뒤에 배달될 엽서를 쓰는 행사들이 있는 걸 보면 아직 ‘가을 편지’가 유효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편지지는 문방구에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