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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똑 군, 페북 양

유쾌한 대세씨

ㆍ멋진 골 넣고 환호하는 모습
ㆍ스물일곱살 ‘인민 루니’의 눈물

한 재일교포 청년이 꿈의 월드컵 무대서 줄줄 눈물을 쏟았다. 경기가 끝난 뒤 그는 “간절히 원했던 꿈의 월드컵 무대에서 최강팀 브라질과 경기할 수 있다는 것이 감격스러웠다”고 눈물의 이유를 밝혔다.

북한 월드컵 팀의 스트라이커 정대세. 월드컵에 앞서 그는 틈틈이 익힌 포르투갈어로 “북한의 호랑이와 포르투갈의 사자가 맞붙는다고 생각하며 우리가 이길 것이라고 자신한다”고 말했다. 그때부터 이 청년은 이번 월드컵의 이슈메이커가 될 기미가 보였다. 그의 어머니 리정금씨와 아버지 정길부씨는 ‘세계를 향해 크게 날개를 펼치라’면서 ‘대세(大世)’라고 이름 지었다고 했다. 나는 요즘 이 청년의 일거수 일투족이 즐겁다.



올해 스물일곱살의 청년 정대세를 처음 본 건 몇 년 전 TV다큐멘터리에서였다. 옆으로 길게 찢어진 눈, 밤톨 같은 머리, 까무잡잡한 피부, 장난기 가득한 미소까지. 어린 시절 내 친구처럼 생긴 정대세는 참 유쾌한 청년이었다. ‘인민 루니’라는 별명을 가진 그는 프로필부터 유쾌하다. 홈DJ와 영어회화, 차 안에서 숨어서 노래부르기, 시합 전 방 치우며 마음정리 하는 게 취미란다. 힙합과 원더걸스 춤을 좋아하고, 언젠가 빅토리아 베컴 같은 한국미녀와 결혼하는 게 꿈이다. 애창곡은 ‘독도는 우리땅’, ‘유리 심장’이라는 별명답게 드라마 <겨울연가>를 보면서 하염없이 울었다고 밝힌 적도 있다. 생긴 것 답지 않게 바퀴벌레에 물리는 걸 가장 싫어한다. 자신의 블로그에 시시콜콜한 얘기들을 올리기도 하는 그는 월드컵이 열리는 요즘에도 재미있는 글과 사진들로 네티즌의 화제를 몰고 다닌다. 끊임없이 한국팀이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그는 재일조선인(자이니치) 3세다. 그는 언젠가 “북한도, 한국도, 일본도 아닌 ‘재일’이라는 나라가 나의 모국”이라고 얘기한 적이 있다. 완벽한 경계인인 정대세의 출생 배경에는 복잡한 한국현대사의 슬픔이 묻어있다. 그런 사연 때문에 그는 한국 국적을 갖고, 북한 대표선수로 뛰게 된 것이다.

최근 차범근 SBS 축구해설위원은 월드컵을 앞두고 국내 한 통신업체가 박지성과 정대세가 나란히 출연한 CF를 만든 적이 있다고 밝혔다. 차 위원은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사실 월드컵 전에 정대세랑 지성이를 함께 찍은 CF가 있었어. 내가 내레이션을 하는 건데 생각만 해도 멋있지 않아? 근데 천안함 터지면서 국민정서에 안맞는다고 바로 없는 걸로 해버렸지”라며 아쉬워했다. 그는 또 “나는 북한선수들에게 애정이 간다. 특히 안영학과 정대세는 우리나라 선수들만큼 애정이 가고 가슴이 두근거린다”고 덧붙였다.

사실 ‘천안함의 비극’은 남북한 동반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끌어낸 남아공 월드컵에 큰 악재로 작용했다. 남북한 공동응원단 논의에도 찬물을 끼얹었고, SBS가 북한에 제공할 수도 있었던 월드컵 영상 논의도 중단됐다. 천안함 사태 이후 곧 북한과 전쟁이라도 불사할 것처럼 대통령부터 나서는 마당에 온 국민은 그저 숨 죽여야 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남과 북의 스트라이커가 나란히 출연하는 광고를 보면서 시청앞 광장에서 북한을 응원할 수도 있었다. 폭주기관차처럼 그라운드를 누비는 정대세를 연호하며, 남북한이 나란히 16강에 진출하기를 고대했을 것이다. 자라는 신세대에게 힘들이지 않고 통일교육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정치권에서 불어온 ‘북풍’ 때문에 놓쳐버린 것이다.

정대세는 언젠가 인터뷰에서 “부모님이 나쁜 일을 했다고 피로 이어진 인연을 끊을 수 없다”고 했다. 나는 그가 월드컵 무대서 흘린 눈물이 단순히 최강팀과 맞섰다는 감격 때문만은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최강팀 브라질과 선전한 북한팀의 경기를 보면서 가슴 뿌듯했던 이유와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역사가 만든 자신의 숙명을 극복하고, 꿈을 이룬 것에 대한 벅찬 감격이었으리라.

오늘, 한국의 호랑이가 포르투갈의 사자와 맞붙는다. 아니 ‘인민 루니’ 정대세가 세계 최고의 선수인 호날두와 일전을 벌인다. 정대세는 ‘조국통일’이라고 쓴 언더셔츠를 입고 출전한다고 했다. 물론 쉽지 않은 경기다. 하지만 정대세가 멋진 골을 넣은 뒤 ‘조국통일’이라고 쓴 언더셔츠를 입고 호날두 앞에서 환호하는 모습이 보고 싶다. 백두산의 정기를 받고 태어난 ‘한국산 호랑이’ 정대세, 그가 있어 월드컵이 조금 더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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