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뭐니뭐니 해도 뒷담화

'한국문학의 좌장' 반납해야할 작가 황석영

 

 

 

 

 

 

'한국문학의 좌장' 반납해야할 작가 황석영

 

 

최근 작가 황석영이 한 강연에서 한국문학이 이꼴이 된 것은 문예창작학과 때문이라면서 날 선 비판을 했다. 갑자기 멍해졌다. 이 양반이 노망이 든 건가?  한국문학이 이꼴이 된 데 대해 반성하고 사죄해야할 당사자가 에먼 문예창작학과 출신 작가들에게 화살을 돌리다니. 우선 문제의 기사를 보자. 

 

 

 

황석영 "젊은 작가 작품에 '철학' 안 보여…문예창작학과 때문"

강연서 최근 한국문학 추세 비판…"소설의 기본은 서사"

(서울=연합뉴스) 한혜원 기자 = 소설가 황석영(72)씨가 "오늘날 한국문학이 '이 꼴'이 된 것은 문예창작학과 때문"이라며 최근 한국문학 추세에 날 선 비판을 가했다.

10일 밤 서울 종로구 교보빌딩에서 열린 '교보 인문학석강'에 강연자로 나선 황씨는 "문예창작학과에서는 글 쓰는 '기술'을 가르치는데, 그래서인지 최근 작가들은 서사와 세계관이 모자라 작품에 철학이 빠져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왜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느냐는 청중의 질문에 답한 것이었다.

황씨는 "문예창작학과에서 공부한 작가가 워낙 많아 문학상 본선에 올라오는 작품이 모두 무난하고, 문장과 구성이 좋지만 작품들이 다 똑같다"면서 "이 때문에 신춘문예 심사를 하지 않은 지 10년이 넘었다"고 말했다.  

자신이 1970년대 전국을 떠돌아다닐 때의 경험과 공장에 위장취업한 기억 등을 털어놓은 작가는 "최근 젊은 작가들의 약점은 체험의 강도와 서사가 약한데다 작품에 작가가 이전에 본 텍스트(글)의 그림자가 다 보인다는 점"이라며 "작가는 이전에 본 텍스트를 자기 체험의 용광로에 녹여서 다시 내놓아야 하고, 그래서 경험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황씨는 "1990년대에 독일에 망명했을 때 '아시아 예술가는 학위를 중시하더라'는 말을 들었다"며 "저는 예술 교육을 믿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작가는 최근 한국 소설이 작품 전체 서사의 탄탄함보다 '문장'에 더 관심을 두고 있다는 점도 비판했다.  

그는 "소설은 첫 제목부터 맨 마지막 문장의 구두점을 찍을 때까지, 전체의 컴포지션(구성) 안에 미학이 총체적으로 들어 있는 것"이라며 "이야기 자체가 아름다움인데, 최근에 왜 그렇게 세세한 문장 표현에만 집착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국문학이 지금 사회에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묻는 말에 황씨는 "문학은 우리를 돌아보는 시선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씨는 "한동안 작가가 현실과 결부된 글을 쓰면 촌스러운 것처럼, 낡은 것처럼 말하기도 했지만, 문학은 당대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는 것"이라며 "세월호 참사 같은 사건이 생겼을 때야말로 사회가 스스로 돌아보는 시선이 필요한데, 문학이 그런 것을 응원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책의 미래에 대해서는 "사람이 살아있는 한 아날로그적인 이야기는 죽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 이야기를 어디에 담느냐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며 "이야기는 영원하지만, 그것을 담는 출판이 현재 변화하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황씨의 강연은 '나는 왜 여기 서 있나?'를 대주제로 모두 3회에 걸쳐 마련됐다. 이날 황씨는 독자 약 150명이 참석한 가운데 자신의 소설집 '객지'와 대하소설 '장길산' 등을 바탕으로 '개발 독재와 근대화'를 이야기했다.  

hye1@yna.co.kr

 

 몇 번씩 읽어봐도 동의할 수가 없는 강연이었고 발언이었다. 문화부 데스크 시절 그의 소설 <강남몽> 표절사건이 있었다. 그당시 표절의혹을 제기한 기사부터 보는 게 순서이겠다.

 

 

대한민국 주먹을 말하다’ 빼다 박은 ‘강남몽’<황석영 作> 4장 ‘개와 늑대의 시간’

[신동아]

 

 

황석영의 ‘강남몽’은 서울 강남 형성사를 다룬 작품이다. 강남이란 공간을 역사라는 씨줄과 사람이라는 날줄로 형상화했다. 일제강점기부터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까지의 역사를 다섯 꼭지의 이야기로 압축해 선보인다. 각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떨어져 있으면서도 서로 연계돼 있다. 이 소설은 6월 출간 후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 있다.

소설은 리얼리즘의 백미를 보여준다. 소설은 사실, 허구의 경계를 넘나든다. 실제 일어났거나, 일어났을 법한 사건을 토대로 가공의 인물이 서사를 밀고나간다. 자료 혹은 사료를 늘어놓은 것처럼 여겨지는 부분도 있다. 주인공의 이름도 실재 인물과 비슷하다. 특히 조직폭력배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4장 ‘개와 늑대의 시간’이 그러하다.

소설가 김훈은 추천사에서 이렇게 썼다.

“강남몽은 일제강점기에서부터 지금에 이르는 한국 현대사의 지층을 세로로 잘랐을 때 드러나는 시대의 무늬를 보여준다.”

 

 

‘대한민국 주먹을 말하다’는 현직 기자가 주먹 세계의 실상을 파헤친 책이다. 조양은, 김태촌을 비롯해 일세를 풍미한 조직폭력배들의 삶을 심층적으로 그렸다. 검찰을 오랫동안 취재해온 저자는 조직폭력의 대명사 김태촌·조양은 그리고 맨손싸움 1인자 조창조, 김두한 후계자로 통한 조일환, 경기 주먹계 실세 박복만, 서울 주먹계 실력자 백민, 전 안토니파 보스 안상민 등 수십 명의 주먹을 인터뷰했다.

지난해 1월 발간한 이 책은 소설처럼 숨 가쁘게 읽힌다. 내로라하는 조폭들의 육성이 살아 숨 쉬는 덕분이다. ‘김태촌·조양은 40년 흥망사’라는 소제목이 붙은 꼭지는 실재 사건과 인물이 엉겨 붙어 무협지를 읽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시라소니 이후 ‘맨손싸움 1인자’로 불리는 조창조 인터뷰는 한국 현대사를 가로지른다.

박영수 전 서울고등검찰청 검사장은 추천사에서 이렇게 썼다.

“검사 시절 조직폭력배 수사를 하면서 여러 가지 자료를 보아왔지만 이처럼 깊이 있게 주먹세계의 실상을 파헤친 책을 보지 못했다.”

‘대한민국 주먹을 말하다’는 실제 일어난 일을 다룬 기자의 저작이고, ‘강남몽’은 리얼리즘을 강조한 소설이다. 그런데 ‘강남몽’ 4장 ‘개와 늑대의 시간’의 상당 부분이 ‘대한민국 주먹을 말하다’의 내용을 빼다 박았다. 같은 주제를 다루다보니 생긴 우연의 일치일까? 아니면 발 냄새 땀 냄새의 산물을 ‘출처를 밝히지 않고’ 빌려와 살을 붙인 걸까? ‘강남몽’ 4장 ‘개와 늑대의 시간’과 ‘대한민국 주먹을 말하다’를 비교해보자.

“두 번 다시 오먼 니가 내 형여”

‘강남몽’ 4장은 이렇게 끝난다.

-형님 어디 계세요?

이제는 같이 늙어가는 동생의 말에 그가 대답했다.

-제주여. 방금 몽땅 털리고 나왔구마. 어야. 내 앞으로 입금 좀 시켜주라.

전화기 속에서 김현수가 한숨을 내쉬고는 말한다.

-어쩔라구 카지노엘 또 가셨습니까?

-어이 인자 두 번 다시 오먼 니가 내 형여…

(‘강남몽’ 326쪽)

 

 

‘대한민국 주먹을 말하다’는 조양은의 옛 동생을 인터뷰했다.

그는 조씨를 안 만난다고 했다. 사고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란다.

“돈이 없으니 자꾸 도박에 손을 대는 것이다. 언젠가 내게 ‘두 번 다시 카지노에 가면 네가 내 형이다’며 도박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적도 있다. 그런데 이번 사건의 경우 ‘조깡’이 억울한 면이 있다.”

(‘대한민국 주먹을 말하다’ 164쪽)

“대한민국 주먹을 말하다”의 ‘조깡’은 조양은을 가리킨다. 강남몽 4장의 주인공은 홍양태와 강은촌이다. 홍양태의 비중이 강은촌보다 높다. 홍양태는 조양은, 강은촌은 김태촌이다. ‘개와 늑대의 시간’은 실존 인물의 이름을 쓰지 않았을 뿐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에 있다. 디테일은 허구지만 큰 그림은 실재다.

‘강남몽’의 홍양태는 공교롭게도 ‘홍깡’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홍양태와 나이 한 살 차이로 엇비슷하게 성장한 강은촌이 있었다. 홍이 10대 시절부터 홍깡이라고 불린 것처럼 강은 고등학교 때부터 성씨에 알맞게 깡으로 알려졌다.

(‘강남몽’ 253쪽)

‘대한민국 주먹을 말하다’ 저자는 “‘조깡’은 조양은의 핵심측근이 나와 인터뷰하면서 쓴 표현”이라며 “그전까지 조양은을 ‘조깡’이라고 부르는 코멘트가 담긴 자료를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네이버 검색창에 ‘조깡’ ‘조양은’을 키워드로 넣고 검색하면 ‘대한민국 주먹을 말하다’ 저자의 글만 검색된다.(10월15일 현재)

‘조깡’과 ‘홍깡’은 우연의 일치일까. ‘대한민국 주먹을 말하다’로 되돌아가보자.

김태촌과 조양은의 전쟁은 서울 주먹계를 시끄럽게 만들었다. 주먹계 선배들도 그들을 제어하지 못했다. 1977년 어느 날 전북 주먹의 대부 이승완씨가 조씨를 불러냈다. 태권도 전국체전 실력자로 해병대 태권도단 감독을 맡는 등 태권도계 실력자이던 이씨는 당시 주류도매업을 하면서 주먹계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조씨가 약속장소에 가보니 서로 죽이려고 쫓아다니던 김씨가 나와 있었다. 이씨의 주선으로 두 사람은 한방에 앉았다. 하지만 화해하기엔 감정의 골이 너무 깊었다. 대화는 아무런 소득 없이 끝났다. 일어서면서 잠시 서로의 몸이 스쳤는데, 각자 몸에 지니고 있던 칼이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대한민국 주먹을 말하다’ 151쪽)

“너희들 그러다 둘 다 죽는다”

다음은 ‘강남몽’의 한 대목이다.

그즈음에 동대문에서 주류도매를 하고 있던 이승철 선배가 양태에게 연락을 해왔다. 그는 전북 출신으로 태권도 대표선수를 했고 중정의 윤무혁과 절친한 사이였다. 그들은 주먹이 우익단체를 결성해야 사회적인 힘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중략>

이승철은 홍양태의 가슴을 잡았고, 순간 옷자락 안에 뻣뻣하게 서 있는 칼날을 느꼈다. 홍양태가 나가버린 뒤에 이가 강은촌에게 물었다.

-너두 차구 나왔냐?

-뭘요, 뭔 소리요?

-너희들 그러다 둘 다 죽는다…

강은촌은 이승철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물론 알아들었다. 상의 옷자락으로 가리고 있었지만 그도 와이셔츠에 칼을 차고 나왔던 것이다.

(‘강남몽’ 295쪽)

 

.

 

‘대한민국 주먹을 말하다’가 서사한 에피소드의 상당수가 ‘강남몽’의 상황을 닮았다. 주먹들의 증언과 비슷한 내용이 ‘강남몽’의 서사를 형성한다.

두 사람이 다시 만난 것은 1977년 11월 서울구치소에서였다. 두 사람은 거의 같은 시기에 구속됐다.  

<중략>

김씨의 죄목은 교도관 상해였다. 광주교도소에 수감돼 있을 때 자신에게 혹독하게 대했던 교도관을 출소 후 칼로 난자한 사건이었다. 거기에 명동 꽃다방 폭력사건 등이 보태졌다. 두 사람은 서울 구치소에서 한방을 쓰면서 화해했다.

(‘대한민국 주먹을 말하다’ 151쪽)

‘강남몽’을 읽어보자.

강은촌은 같은 무렵 서울에서 검거되었는데 강이 이전에 광주에 수감되어 있을 때 가혹하게 대했던 교도관을 그의 수하가 칼로 찌른 사건 때문이었다. 죄목은 살인미수교사였다.

<중략>

사십사번은 홍양태였고 강은촌은 팔십팔번이었다.<중략> 먼저 들어온 홍이 그래도 고참이라고 접은 담요자락을 내주면서 말했다.

<중략>

-아야 홍깡, 사둔 남말 허네 우리도 여덟 놈이 몸 베리고, 두명 깨지고잉. 열둘이 장기형 안 받었냐.

두 사람은 한참이나 말없이 등을 대고 반대쪽으로 돌아누워 있다가 강은촌이 말했다.

-니가 먼저 나갈 것인디, 아무래도 내는 두 바퀴는 살어야 풀릴 거여. 인자 헐만큼 혔으니 그만허자.

(‘강남몽’ 297~299쪽)

‘대한민국 주먹을 말하다’의 취재 내용과 황석영의 글은 이렇듯 성격이 서로 다른 쌍둥이를 보는 듯하다. 두 저작을 좀 더 읽어보자.

싸움의 기술

-어 양태 오냐. 인사 올려라. 우리 큰 형님이시다.

그는 어깨가 딱 벌어지고 날렵하게 보이는 중년 남자였다. 홍양태가 이름을 대며 인사하자 그는 고개를 끄떡이면서 환하게 웃었다.

-수고가 많다지. 나 조창호라 칸다.

-형님은 전에 서울 기시다가 대구로 낙향하셨는데 이참에 우릴 도우려 오셨구마. 잘 모셔야 한다. 알겄냐?

조창호는 원래 조직이 없는 도꼬다이 주먹이었는데 맞짱으로는 그를 대적할 자가 없다는 소문이 있었다.

(‘강남몽’ 264쪽)

조창호는 대구 출신 주먹 조창조의 분신이다. 조창조는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과 호형호제하는 사이로 맨손싸움 1인자로 불린다. 올해 일흔셋인 그는 지금껏 딱 한 차례 인터뷰했다. ‘대한민국 주먹을 말하다’는 인터뷰 내용을 35쪽 분량으로 실었다. “권투하는 놈은 유도로, 유도하는 놈은 씨름으로 무너뜨렸지요” 같은 생생한 코멘트가 인상적이다.

대구가 낳은 걸출한 주먹인 조창조씨는 ‘싸움의 달인’ ‘실전(實戰)의 황제’로 불린다. ‘싸움 천재’ 시라소니(이성순) 이후 맨손싸움의 1인자로 ‘맞장’에서 져본 적이 없다는 신화적인 주먹이다. 칼과 조직 없이 오로지 맨손으로 최고봉에 오른 그의 이력은 주먹세계에서 이색적인 전범(典範)이다.

(‘대한민국 주먹을 말하다’ 292쪽)

조씨는 운동에 천부적인 소질이 있었다. 초등학생 때 육상을 했고, 중·고등학생 때는 권투와 씨름, 유도를 배웠다. 도장에도 다녔지만 혼자 집에서 연습을 많이 했다. 고1 때는 태권도를 연마했다.

(‘대한민국 주먹을 말하다’ 297쪽)

“운동선수마다 약점이 있어요. 나는 여러 가지 운동을 했기 때문에 그 약점을 다 간파하고 그것을 공략하는 방법을 터득했습니다. 한마디로 꾀를 부린 거죠. 권투한 친구들과도 많이 붙었는데, 한 번도 진 적이 없어요. 권투하는 놈은 유도로, 유도하는 놈은 씨름으로 무너뜨렸지요. 실전에서 가장 덕본 건 씨름입니다.”

(‘대한민국 주먹을 말하다’ 298쪽)

‘강남몽’을 읽어볼 차례다.

그 역시 고등학교 시절부터 싸움으로 또래들 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십대 때부터 권투와 씨름 유도를 배웠고 태권도를 배우기도 했는데 몇 년을 단련한 것은 아니고 반 년에 몇 개월씩 알짜 기술만을 연습했다.

(‘강남몽’ 265쪽)

그는 여러 가지 운동을 했기 때문에 각 부분의 약점을 잘 알고 있어서 가령 상대방이 권투하는 자세로 나오면 유도 식으로, 유도하는 놈은 씨름이나 태권도로 공략했다.

(‘강남몽’ 265쪽)

조창호는 중앙청과시장의 경비과장을 맡았다. 당시에는 모든 채소와 청과물이 화물열차로 서울에 집결했기 때문에 서울역 앞으로 뚜쟁이, 각설이 등이 시장으로 몰려들어 하루에도 몇 차례씩 정리에 나서야 했다.

(‘강남몽’ 265쪽)

“그건 옛날 방식입니다.”

‘강남몽’의 중앙청과시장은 염천시장을 가리킨다. ‘대한민국 주먹을 말하다’는 최초 육성 증언을 토대로 염천시장과 조창조를 이렇게 묘사한다.

염천시장에 자리 잡은 조창조씨가 주먹계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은 바로 그 무렵이었다. 조씨는 상인협회 경비과장으로 시장 내 이권 싸움을 정리하는 일을 맡았다. 가락시장의 모체라 할 만한 염천시장엔 농수산물이 풍부해 전국 각지의 건달들이 몰렸다. 특히 쓰리꾼이라 불리던 소매치기와 거지가 설쳐댔다. 싸움이 자주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조씨는 하루에 보통 2~3회 싸웠다.

(‘대한민국 주먹을 말하다’ 300쪽)

‘대한민국 주먹을 말하다’ 저자는 조창조가 설명한 ‘싸움의 기술’을 전하면서 “신비감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고 썼다. 당대의 최고 주먹과는 어울리지 않게 ‘눈 찌르기’ 같은 치졸한 수를 썼다고 조씨가 증언해서다. 그는 “싸움에선 단순하고 빠른 동작이 좋다. 그리고 상대의 동작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남몽’에 나오는 조창호의 싸움 기술은 이렇다.

“부자지 차기는 물론이고, 눈 찌르기와 명치 관자놀이 인중 같은 급소치기에서 장딴지 박아차기, 발등 밟기, 턱에 안수 먹이기, 목젖 지르기 신장이 있는 잔허리치기 같은 싸움기술이 동원되었다.”

(‘강남몽’ 265쪽)

‘대한민국 주먹을 말하다’는 조창조가 염천시장에서 호남 주먹들이 이권을 챙기는 데 도움을 준 사실을 전한다. ‘강남몽’의 묘사는 ‘대한민국 주먹을 말하다’보다 생생하다.

-혹시 염천교에서 나온 사람들이오?

-알아주어 고맙구만은, 임자는 누군교?

-나는 목포 번개요. 무교동에 터를 잡았는디 김장 좀 묵어볼랍니다.

-그기 니 맘대로 되겄나. 니 일루와바라.

<중략>

-나 중앙시장 경비과장 하는 조창호라 칸다. 니는 마 내 듣기로 동생뻘 된다 카든데.

박종식이 하는 수 없이 말을 올려 예우를 했다.

-저두 형님 선성을 들었구만이라. 김장차가 한두 번 오고 마는 것도 아니겠고요, 우리도 좀 띠어주셔야 안 쓰겠어라우?

조창호가 껄껄 웃더니 박종식의 어깨를 툭툭 두들겨주었다.

-내사 마 한판 뜨고, 날 꺾으면 주겠다 싶지만도 그랄 수 있나? 동생인데…. 어째 삼칠로 안되겄나?

“열 명씩 뽑아 맞장을 뜨자 캐라”

1970년대 초반 서울 주먹계에서 가장 센 조직은 신상사파였다. 1975년 사보이호텔 사건은 조양은을 주축으로 한 호남세력이 신상사파를 보복 공격한 사건이다. 조창조는 ‘대한민국 주먹을 말하다’ 저자와 인터뷰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사건이 난 후 나는 이쪽과 저쪽(신상사파) 서로 10명씩 내세워 1대1로 승부를 내자고 제안했습니다. 학모도 내 의견에 찬성했죠. 그런데 동생들이 ‘그런 건 옛날 방식’이라면서 반대했어요. 결국 학모와 내가 목욕하러 간 사이 오종철과 조양은이 일을 저질렀던 겁니다. 실제 행동은 양은이가 했죠.”

(‘대한민국 주먹을 말하다’ 304쪽)

‘강남몽’은 이 사건을 어떻게 묘사했을까?

오와 박이 말다툼을 벌이려 하자 호남 선배 격인 정학영이 말렸다.

-어야, 뭘 언성을 높이구 그라냐. 경식이는 내 후배두 되는디. 이참에 나나 창호가 건너가서 진상사 형한테 얘기해볼 참여. 수습책으로 경식이 팬 놈덜 사과나 받고이.

그러나 그들에게서 사과나 받는다는 게 형식에 지나지 않음을 홍양태는 잘 알고 있었다. 이미 이쪽에 오물이 튄 격이었다. 조창호가 말했다.

-사과나 받아서 마 구겨진 체면을 회복할 수 있겄나. 이래하문 어떻겠노? 이쪽캉 저쪽서 열 명씩 뽑아가 차례로 맞짱을 뜨자 캐라. 그러면 분도 좀 풀리고 체면도 세울 수 있겠구만은.

오종오가 픽 웃었고 박종식도 어이가 없는지 턱을 쓸며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조창호가 홍양태에게 불쑥 물었다.

-니는 우짜면 쓰겠노?

-그건 옛날 방식입니다, 큰형님. 응징해야지라.

(‘강남몽’ 276쪽)

사보이호텔 사건을 다룬 두 책의 내용을 좀 더 비교해보자. 먼저 ‘강남몽’을 읽어본다.

 

 

홍양태가 잠행하면서 서울과 지방을 왕래하는 중에도 수배령은 풀리지 않았고, 모나코호텔 사건에서 홍의 윗선으로 지목된 정학영과 조창호에게도 검거령이 떨어져 있었다. 정학영은 순순히 잡혀서 칠개월을 때우고 집행유예로 나왔고 조창호는 공소시효를 절반쯤 남긴 시점에서 동향 선배인 서울지검 아무개 검사를 찾아갔다. 때마침 오종오가 심한 부상을 입고 은퇴한 사실이 검찰에도 알려진데다, 이미 형을 살고 나간 정학영에게 책임을 미루면서 자기처럼 선배 세대들은 오히려 말렸다는 식으로 진술한 것이 유리하게 작용하여 조창호는 무혐의 처분이 되었다. 그리고 그 제일 조건이 홍양태를 자수시키는 것이었다.

(‘강남몽’ 295쪽)

동생 30명, 아우 100명

‘대한민국 주먹을 말하다’는 이렇다

조씨를 비롯한 무교동 식구들은 사보이호텔 사건 이후 수사기관에 쫓기는 몸이 됐다. 가장 먼저 체포된 정학모씨는 7개월간 형을 살다 집행유예로 출소했다. 사건이 난 지 3년쯤 지나 조씨는 서울지검 윤모 검사실을 찾았다. 윤 검사는 그와 동향인 평양 출신이었다.

“고마운 검사였습니다. 사람을 통해 만나자고 해서 찾아갔어요. 사건 기록에는 내가 총지휘한 걸로 돼 있었습니다. 그런데 검사가 나보고 ‘적당히 피해 다니며 공소시효를 넘기라’고 조언하더군요. 공소시효가 7년인데 절반쯤 남았을 때였습니다. 윤 검사는 오종철과 조양은을 자수시키라고 권했습니다.”

(‘대한민국 주먹을 말하다’ 305쪽)

실제 세계에서 김태촌 조양은은 1989년 5월 충남 아산의 도고호텔에서 조우한다. ‘대한민국 주먹을 말하다’는 두 주먹과의 인터뷰를 토대로 이렇게 묘사한다.

당시 공주교도소에 수감돼 있는 조씨는 3차 귀휴를 나왔다. 김씨는 그에 앞서 그해 1월 폐암 선고를 받고 형집행정지로 석방,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해 폐암수술을 받고 요양중이었다. 두 사람의 만남은 김씨가 밤에 몰래 병원을 빠져나가 조씨가 묵고 있는 도고호텔을 찾아감으로써 성사됐다. 김씨의 동생 30여 명이 동행했다. 호텔엔 조씨의 아우 100여 명이 득실거리고 있었다.

(‘대한민국 주먹을 말하다’ 305쪽)

‘강남몽’을 잃어볼 차례다.

이듬해 5월 강은촌은 서울의 대학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그는 연초에 폐암 진단을 받고 형집행정지가 되어 수술한 뒤 회복병동에서 요양하는 중이었다. 부하들이 번갈아가며 병실을 지키고 있었는데 몇 번 병문안을 왔던 김현수가 사람을 보냈다.

-선배님 인사드립니다. 저희 큰 형님께서 귀휴를 나오셨습니다.

-뭐야, 양태가? 언제?

-어제 나오셔서 내일 아산 온천호텔에 묵으십니다. 내일까지 사람들을 만나보고 고향에 내려가신답니다. 현수 형님이 알려드리라고 해서….

이튿날 밤 당직 의사의 회진이 끝난 뒤에 강은촌은 이대권 박광현 등과 함께 승용차편으로 서울을 빠져나갔고 부하들도 연락을 받고는 아산으로 갔다. 아산호텔에는 홍양태 계열의 조직원들 백여 명이 몰려와 있었고, 강은촌의 조직원들도 삼십여 명이 찾아왔다.

(‘강남몽’ 321쪽)

김씨의 동생 30여 명-강은촌의 조직원들도 30여 명, 조씨의 아우 100여 명-홍양태 계열 조직원들 100여 명의 조합이 흥미롭다.

오종철 습격사건

 

 

1973년 3월 김태촌은 무교동 엠파이어호텔 부근에서 오종철을 습격한다. ‘대한민국 주먹을 말하다’는 김태촌의 입을 빌려 당시 사건을 전한다.

김씨의 특공대원 7~8명이 무교동 엠파이어호텔 주차장 부근에서 오씨를 습격했다. 오씨의 아우가 몇 명 있었지만 대검과 도끼 낫으로 무장한 특공대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특공대는 오씨의 하체를 난도질했다. 오종철이라는 호남주먹의 거목이 허망하게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김씨는 나에게 당시 상황을 설명하며 “나는 공격에 직접 가담하지 않았고, 현장 지휘만 했다”고 부연했다. 이 사건으로 오씨는 사실상 주먹계에서 은퇴했고, 조씨와 김씨는 본격적인 전쟁에 돌입했다. 서로 상대방의 영역을 기습해 ‘연장질’을 하는 사건이 수시로 발생했다.

(‘대한민국 주먹을 말하다’ 148쪽)

‘강남몽’은 소설답게 당시 사건을 극적으로 묘사한다.

과연 건장한 사내들 일행이 무교동의 엠파이어호텔 주차장 앞으로 몰려오고 있었다. 장소도 맞춤하고 거리도 적당했다. 가운데 말끔한 정장 차림의 중년 사내가 오종오임은 은촌도 대번에 알아볼 수 있었고 그의 양날개 중 오른쪽에는 홍양태의 직속인 임철이 걸어오고 있었다.

<중략>

공격조가 낫으로 그의 어깨를 찍자 임철은 낫을 어깨에 매단 채로 돌아서서 달아났다. 오종오의 호위였던 나머지 셋도 뿔뿔이 흩어져 달아나버렸고, 무릎을 강타당해 넘어진 오종오만 주저앉아 있었다. 이대권이 대검으로 그의 허벅지를 몇 번 쑤셨고 연이어 도끼와 쇠파이프와 사시미칼 등의 연장질이 그의 하반신에 집중적으로 쏟아졌다. 보도에는 피가 낭자했고 길을 지나던 사람들의 비명과 고함소리가 요란했다.

(‘강남몽’ 266~277쪽)

조양은과 홍양태가 처음 구속되는 대목을 비교해보자.

조씨가 성인이 되어 처음 구속된 것은 1970년 2월이다. 명동 캠퍼스 다방에서 벌어진 패싸움으로 8개월간 징역을 살았다. 출소 직후 소공동의 명소이던 조선호텔 고고클럽 투모로우의 관리를 맡았다. 이듬해 8월엔 중앙정보부 간부로 호남주먹의 후견인 노릇을 하던 문무회씨에게 대들었다가 괘씸죄(?)로 구속돼 6개월간 실형을 산다.

(‘대한민국 주먹을 말하다’ 148쪽)

양태가 서울에 올라와서 징역을 산 것은 두 번인데 첫 번째는 명동의 씨티다방에서 패싸움을 벌인 일로 십개월 옥살이를 했고 두 번째는 조선호텔 고고클럽인 투모로우에서 기관원에게 대든 사건으로 육개월을 살았다. 첫 번째 사고는 명동의 토박이 똘마니들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생긴 일이고 두 번째는 그에게 대단히 중요한 인연을 만드는 계기가 된다.

(‘강남몽’143쪽)

중요한 인연은 조양은과 문무회의 만남을 가리킨다. ‘대한민국 주먹을 말하다’가 소개한 중앙정보부 수사관이면서 주먹계에 발을 담근 문무회의 에피소드는 소설에서 윤무혁이라는 이름으로 되살아난다.

정당방위

‘대한민국 주먹을 말하다’ 저자는 조양은의 옛 동생이던 박수○, 강영○을 인터뷰한 내용을 토대로 양은이파의 내분을 다룬다. 두 저작의 서술을 비교해보자.

그 시기 양은이파는 내분을 겪었다. 2인자 자리를 놓고 다툼이 일어난 것. 원래 조씨의 바로 아랫동생은 사촌매제인 백영○씨였다. 그런데 백씨가 1976년 대구 수성호텔 살인사건에 연루돼 구속된 후 박수○씨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중략>

1979년 박씨가 자신을 따르는 동생들을 이끌고 조씨에게 반기를 들었다. 그 얼마 후 강씨가 박씨를 칼로 찌르는 사건이 벌어졌다. 박씨의 증언

“조양은은 출소 후 나와의 관계를 끊어버렸다. 주변에서는 내가 너무 컸기 때문에 내친 것이라고들 했다. 당시 나는 열심히 싸웠다.<중략> 나는 공격할 의사가 없었는데, 내가 조양은 나쁜 놈이라고 하자 강영○이 칼을 꺼내 나를 찔렀다.”

그러나 강씨의 얘기는 다르다. 박씨를 찌른 것은 그가 먼저 칼을 꺼내 공격하려 한 데 따른 정당방위였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주먹을 말하다’ 152~153쪽)

-큰형님을 배신하는 놈은 누구든지 우리가 그냥 내버려두지 않을 거요.

-홍깡은 나쁜 놈여. 의리를 저버린 놈은 나가 아니라 양태 그 새끼요.

말하면서 철이 품안에서 칼을 뽑았고 현수도 잽싸게 칼을 빼어 상대의 옆구리를 찔렀다. 먼저 칼을 맞은 철은 멈칫, 했다가 칼을 떨어뜨리고 주저앉았다.

<중략>

현수가 치명타를 먹이지 못했다고 홍양태에게 보고하면서 아이들을 풀어 병원을 뒤지겠다고 했지만 양태는 그를 말렸다.

-냅둬라, 인자 발붙일 디가 없응께.

그는 주위에 칼을 먼저 뽑은 것은 철이고 현수의 행동은 정당방위였을 뿐이라고 소문을 내게 했다.

(‘강남몽’ 304~305쪽)

“조양은은 나쁜 놈” “홍깡은 나쁜 놈여”라는 코멘트와 대사가 비슷하다. ‘정당방위’라는 단어의 사용도 공교롭다.

김태촌과 백영○은 ‘대한민국 주먹을 말하다’ 저자와 인터뷰하면서 OB파와의 다툼과 관련한 일화를 이렇게 전한다.

“조양은은 나쁜놈”

김씨는 자신이 교도소에 수감돼 있는 동안 OB파에 난자당한 친구 이석○씨의 복수를 한다는 명분으로 이동재씨의 사무실을 급습했으나 실패했다. 김씨에 따르면, OB파와의 전쟁은 이동재씨가 이석○씨를 찌른 동생들을 김씨 측에 보내 야구방망이로 맞게 함으로써 종결됐다.

얼마 후 김씨는 화해의 표시로 건달 단합 체육대회를 구상했고 이씨도 적극 찬성했다. 그해 6월 한강 둔치에서 열린 제1회 새마을체육대회가 그것이다. 이 행사에는 유지광씨를 비롯한 주먹계 원로들과 송태준 박종석 정학모씨 등 호남주먹계의 선배 다수가 참석했다. 또한 구속된 조양은씨를 대신해 양은이파를 이끌던 백영○씨도 동생들을 거느리고 동참했다.

백씨에게 행사에 참여하게 된 사정을 묻자, 김태촌씨의 얘기와는 달리 자신이 먼저 제안해 성사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동생들끼리 자꾸 싸우니 얼굴이라도 익히자”는 뜻에서 마련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주먹을 말하다’ 156~157쪽)

이와 비슷한 대목이 나오는 ‘강남몽’의 서술은 ‘대한민국 주먹을 말하다’의 그것과 거의 똑같다.

강은촌은 이대권을 칼로 찌른 놈들과 박광현의 영업부장을 때린 자들을 보내어 응징을 받게 하면 없던 일로 하겠다고 통보했다. 강은촌이 부하들이 그들을 야구방망이로 죽지 않을 만큼 두들겨 팬 뒤에 말썽은 종결되었다.

강은촌은 그맘때부터 현실에 눈뜨기 시작하고 이를테면 철이 들었다. 건달들의 친목을 도모하자며 그가 제안하여 새마을 축구대회를 열었는데, 자유당 시절부터 늙은 선배들과 범호남파의 일세대 상경파 주먹들이 거의가 왔고, 구속된 양태파의 대리인 김현수도 동생들을 이끌고 참여했다. 후배들이 서로를 몰라서 자꾸 싸우게 되니 얼굴이라도 익히자는 취지였다고 그들은 말했다.

(‘강남몽’ 318~319쪽)

조양은 옛 동생의 육성 증언인 “동생들끼리 자꾸 싸우니 얼굴이라도 익히자”(‘대한민국 주먹을 말하다’)와 “후배들이 서로를 몰라서 자꾸 싸우게 되니 얼굴이라도 익히자는 취지였다”(‘강남몽’) 는 거의 같은 문장이다. ‘동생’은 ‘후배’로, ‘싸우니’는 ‘싸우게 되니’로 바뀌었고 ‘서로를 몰라서’가 추가됐다.

이 같은 대목은 또 있다.

정씨 형제는 그 일이 전낙원씨의 영향력과 관련된 것으로 믿고 있다. 덕일씨에 따르면 당시 안기부 기조실장이던 엄삼탁씨가 “당신들이 살길은 전낙원씨와 화해하는 것뿐”이라고 말했다는 것.

(‘대한민국 주먹을 말하다’ 193~194쪽)

안기부 기조실장 엄상택은 전씨 형제에게 “당신들이 살길은 원회장과 협조하는 것뿐”이라고 귀띔을 해주었다.

(‘강남몽’ 325쪽)

‘대한민국 주먹을 말하다’의 저자는 정덕일씨를 인터뷰해 “당신들이 살길은 전낙원씨와 화해하는 것뿐”이라는 엄삼탁의 말을 전언 형식으로 전했다.

‘강남몽’에서 엄삼탁은 엄상택이다. 실존 인물 정씨 형제와 전낙원은 각각 전씨 형제, 원회장으로 바뀌었다. “당신들이 살길은 전낙원씨와 화해하는 것뿐”이라는 문장과 “당신들이 살길은 원회장과 협조하는 것뿐”이라는 구절은 ‘화해’ ‘협조’라는 단어를 제외하면 똑같다.

표절의 혐의

지금껏 비교해 읽은 대목들은 두 저작이 서로 겹치는 부분의 일부일 뿐이다. ‘강남몽’이 그려낸 실존 주먹 관련 에피소드는 대부분 ‘대한민국 주먹을 말하다’가 서술한 것이다. 독자들도 두 책을 겹쳐 읽으면서 조양은-홍양태, 김태촌-강은촌, 조창조-조창호, 엄삼탁-엄상택, 정학모-정학영, 신우회-청우회의 행적을 비교해보시라.

표절(剽竊)은 사전적 의미로 다른 사람 저작물의 일부 또는 전부를 몰래 따다 쓰는 행위다. ‘대한민국 주먹을 말하다’는 논픽션이고 ‘강남몽’은 소설이므로 표절로 몰아세우기엔 마땅치 않다. 그렇다면 거장의 리얼리즘 소설 안에 표절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대목이 숱하게 발견되는 걸 어떻게 봐야 할까.

문학평론가 H씨는 이렇게 말했다.

“‘대한민국 주먹을 말하다’가 폭력배의 용쟁호투를 그린 것이라면 ‘강남몽’은 한국 사회의 경제성장 이면에 있었던 어두운 면, 즉 천민자본주의의 황당한 전개 과정을 다루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황석영 작가가 자료를 읽은 다음, ‘강남몽’에 재구성해 사용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작가가 소설을 쓸 때 여러 자료를 취합·사용하는 건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이 경우는 정도가 조금 심했다. 소설가가 소설을 쉽게 썼다는 얘기다. 황석영 같은 대가가 취할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본인은 소설의 리얼리티를 위해서 그랬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이것은 소설의 정도(正道)가 아니며 작가적 성실성의 훼손이라고 생각한다. 좀 실망스럽고 화가 나는 구석도 있지만 표절이라고 보긴 어려울 것 같다.”

대학교수이면서 문학평론가인 K씨의 의견은 이렇다.

“‘대한민국 주먹을 말하다’의 저자가 ‘강남몽’에 문제 제기를 할 소지가 있다고 본다. 거장의 글쓰기로는 실망스러운 일이다. 황석영의 소설 쓰기 방식의 성실함에 대해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표절이라는 단어를 쓰면 논란이 일 것 같다. 애매하고, 헛갈린다. 하지만 ‘당신들이 살길은…’ ‘동생들끼리 자꾸 싸우니 얼굴이라도 익히자’ 같은 부분은 표절의 소지가 있다.”

표절 여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닌 곁가지다. 소설을 두고 표절을 말한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문제는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의 소설이 실망스러웠다는 점이다. ‘강남몽’ 4장은‘대한민국 주먹을 말하다’에 기대어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대한민국 주먹을 말하다’저자가 법적으로 문제 삼을 수 있다고 본다”면서 “표절 여부를 떠나서 저작권 침해 소지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황석영 작가의 의견을 듣고자 수일에 걸쳐 집 전화, 휴대전화, SMS로 접촉했으나 연결이 되지 않았다. 장문의 e메일로 취재 경위, 보도 방향을 설명하기도 했다. ‘신동아’는 황 작가가 의견을 밝혀오면 언제든 인터뷰 형식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작가 김훈은 소설 ‘남한산성’ 앞머리에 “이 책은 소설이며, 오로지 소설로만 읽혀야 한다”고 적으면서 시대의 모습과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 참고한 자료를 밝힌다. 소설 ‘현의 노래’에선 “이 소설의 시대 배경과 골격은 ‘삼국사기’에서 빌려왔다”고 적었다.

황 작가가 강남몽 4장의 배경과 골격은 ‘대한민국 주먹을 말하다’에서 빌려왔다고 밝혔으면 어땠을까? 안타까운 대목이다.

일러두기 : ‘대한민국 주먹을 말하다’의 저자는 동아일보 신동아팀 조성식 차장이다. 내부인이 관련된 문제를 다루는 게 옳으냐는 논란이 있었으나 ‘신동아’는 황석영이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라는 점에서 기사로 전하는 게 옳다고 판단했다.



송홍근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carrot@donga.com

 

 

 

시쳇말로 빼도박도 못할 정도로 날카롭게 작가의 표절의혹을 하나하나 지적한 기사였다. 이 기사만으로도 신경숙의 표절보다 훨씬 심각하고 엄중한 문제였다.이에 대해 출판사인 창비와 황석영 작가 측에 해명을 요구했으나 한동안 침묵했다. 그러다가 중국에 머물고 있다는 황씨가 장문의 해명글을 보내왔다.  당시 편집국에서는 이 글을 싣는 것에 대해 열띤 토론이 있었다. 결국 독자에게 가감없이 보여줘야한다는 생각에서 신문에 전재했다.  

 

 

황석영씨 “소설 내용 출처 안 밝힌 것 불찰”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ㆍ‘강남몽’ 표절의혹 첫 해명

ㆍ“당초 다큐소설 설정, 기사·인터넷 등 참조… ‘표절’은 더 논의 필요”

 
소설가 황석영씨가 자신의 소설 <강남몽>의 일부 표절의혹에 대해 24일 “출처를 밝히지 못한 것은 저의 불찰”이라면서 “표절에 해당하는가는 더 정밀한 논의가 필요할 것”이라고 밝혔다.

외국에 체류 중인 황씨는 표절 의혹이 일어난 이후 처음으로 자신의 의견을 e메일을 통해 경향신문에 전해왔다.
장편소설 <강남몽>(창비)은 지난 6월 출간돼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18만여부가 판매됐지만 최근 월간 ‘신동아’의 조성식 기자가 쓴 ‘대한민국 주먹을 말한다’(동아일보사)의 내용 일부를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신동아는 11월호에서 <강남몽>의 4장 ‘개와 늑대의 시간’에 나온 조직폭력배와 관련된 내용 일부가 ‘대한민국…’의 내용과 상당부분 닮았다고 주장했다. 동아일보도 지난 19일 작가의 해명을 요구하는 사설을 실었다. <강남몽>은 일제 강점기부터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까지의 강남형성사를 담은 작품이며, ‘대한민국…’는 김태촌·조양은씨 등을 인터뷰하며 조직폭력배의 세계를 다뤘다.

출판사 창비는 “작가 의견을 존중해 향후 집필 당시의 참고자료를 적절한 형식으로 <강남몽>에 명기하는 것을 포함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법적 자문 결과 작품 특성상 법적인 의미의 표절로 판명하기 어렵다는 소견을 받았다”고 밝혔다. 다음은 황씨가 보내온 e메일 전문이다.

“저는 지난 9월부터 새 작품 집필 관계로 중국에 머물고 있습니다. ‘신동아’ 송홍근 기자가 수차 연락을 취했다는데 외부와의 연락을 두절하고 작품에만 전념하고자 인터넷을 이용하지 않던 터라 지난 토요일(16일) 밤 늦게야 국내에 있는 집사람을 통해 메일 내용을 겨우 전해 들었습니다. 그때 이미 신동아는 제작 중이었을 테지요. 이와 관련해 신동아가 발간되자마자 다음날 저의 답이 늦다고 ‘동아일보’가 사설에서까지 거론을 하였는데, 저간의 제 사정이 이와 같았습니다.

이번 일에 대한 저의 입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소설의 시대물은 대개 신문기사 등등의 사실 자료를 취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더구나 <강남몽>은 애초부터 다큐 소설로 설정이 되어 있었지요. 여러 인터뷰와 대담에서 구상 단계에서부터 신문, 잡지의 기사와 인터넷 자료 등등을 참조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소설의 중심 사건인 삼풍백화점 사건 자체가 신문기사를 기초 자료로 선택했지요.

문제로 지적된 4장 부분 또한 ‘신동아’ 2007년 6월호에 실린 인터뷰 내용뿐만 아니라 인터넷상에 떠있는 각종 회상자료와 인터뷰 내용 등을 참조했습니다. 인터뷰를 바탕으로 근대화 기간 동안의 역사적이며 사회적인 사실을 인용하면서 인물에 따라서 인간성을 드러낼 수 있는 ‘장면’에 조명을 가하여 소설적 윤색을 했던 것이지요. 이것이 표절에 해당하는가는 더 정밀한 논의가 필요할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소설 내용에 주를 달거나 전거를 일일이 밝힐 수 없었던 것이 문제라면 문제일 텐데, 이것이 학술논문도 아닌 데다 반세기에 걸친 현대사의 방대한 자료를 다루고 있어서 가능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출처를 밝히지 못한 것은 저의 불찰입니다만, 인터넷상의 자료는 출처가 불분명한 경우가 많고, 이를 필요한 대목만 메모해 두었다가 사용한 터라 일일이 출처를 확인하여 밝히기란 일일연재하는 작가로서 사실상 유의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어쨌든 작품 집필에 도움이 되었던 많은 분들의 노고에 늦게나마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습니다.

필요하다면 ‘신동아’의 기사를 비롯해 참고자료를 <강남몽>에 밝히고자 합니다. 이 일로 물의가 빚어진 것은 유감입니다. 이것이 언론의 선정적 행태를 지양하고 창작자의 권한을 존중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황석영 소설가.”

 

 

 

사건의 전말을 상세히 얘기하려다보니 온갖 인용자료가 길어졌다. 개인적으로 작가 황석영이 신경숙의 표절파문 등으로 뒤숭숭해진 한국문학의 앞날을 이야기하는 강연에 나섰다면 자신의 표절파문에 대해서도 한 번쯤 사과하고 시작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문단에 수많은 '황석영키즈'들이 있다. 문예창작학과 출신 작가들도 문청시절에 그의 책을 밑줄 그으면서 읽었으리라. 한국문단의 대가 반열에 오른 작가 황석영이 좀더 대범해지고 솔직해져야 수렁에 빠진 한국문학을 건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