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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다방은 어디로 갔을까?

가을비 그리고 ‘가을비 우산 속에’

 

 

 

 

                  가수 최헌

 

 

 가을비 그리고 ‘가을비 우산 속에’


 비오는 봄날에 박인수의 ‘봄비’가 있다면 가을비 내리는 날엔 최헌의 ‘가을비 우산 속에’가 있다. 누구나의 가슴 속에 계절의 변화에 따라 생각나는 노래 한 곡이 있겠지만 이렇게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엔 ‘가을비 우산 속에’가 절로 떠오른다.
 ‘그리움이 눈처럼 쌓인 거리를 / 나혼자서 걸었네. 미련 때문에 / 흐르는 세월 따라 잊혀질 그 얼굴이 / 왜 이다지 속눈썹에 또다시 떠오르나 / 정다웠던 그 눈길 목소리 어딜갔나 / 아픈 가슴 달래며 찾아 헤매이는 / 가을비 우산 속에 이슬 맺힌다.’
 ‘가을비 우산 속에’는 최헌이 1978년 발표한 4집 솔로앨범에 수록된 곡이다. 최헌은 허스키한 보이스의 매력에 ‘뽕끼’가 가미된 이 노래로 70년대말 방송사의 10대 가수상을 휩쓸면서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그의 필모그라피를 보면 대중들을 매료시킨 허스키보이스의 매력이 오랜 밴드생활에서 우러나온 것임을 알 수 있다. 1948년 함경북도 성진 태생인 그는 명지대학교 재학 중이던 1960년대말 밴드 ‘챠밍가이스’를 결성하여 미8군 무대에 선다. 1970년대에는 당시 최고 인기를 누리던 밴드 ‘히식스(He6)’에 스카우트돼 보컬과 기타리스트로 활약했다. 1974년에는 ‘최헌과 검은나비’를 결성해 ‘당신은 몰라’를, 1976년에는 ‘최헌과 호랑나비’를 결성해 ‘오동잎’ 등을 히트시켰다. 70년대 기록들을 보면 최헌이 이끄는 밴드는 나이트클럽에서 특급 대우를 받으면서 큰 인기를 얻었다.
 ‘오동잎 한 잎 두 잎 떨어지는 가을 밤에 / 그 어디서 들려오나 귀뚜라미 우는 소리’로 시작되는 그의 대표곡 ‘오동잎’은 ‘가을비 우산 속에’와 함께 대중들의 인기를 얻었던 명곡으로 자리잡았다. 1977년에 솔로로 전향한 최헌은 ‘앵두’ ‘가을비 우산속’ ‘구름 나그네’ 등을 연속 히트시키며 절정의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조용필이 화려하게 복귀한 80년대 초반에는 부업 등을 이유로 가수활동을 쉬고 있다가 84년 ‘최헌과 불나비’를 결성해 미국 팝가수인 버티하긴스의 ‘카사블랑카’를 번안곡으로 발표했다. 80년대 후반 그를 잠깐 만난 적이 있는데 그때도 최헌은 목이 자주 쉬는 등 건강상의 이유로 꾸준하게 노래 부르기가 쉽지 않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2년 지병인 식도암으로 별세하기 전까지도 꾸준히 앨범을 발표하면서 가수활동을 이어갔지만 끝내 이 세상과 작별했다.
 그룹 히식스의 리더였던 김홍탁씨는 최헌을 가리켜 ‘가장 뛰어났던 밴드 보컬 중 한 사람’이라고 평했다. 그의 보이스는 듣는 이를 한 없는 나락으로 잡아 이끄는 마력이 있다. 특히 무대에서의 최헌은 청중들을 순식간에 사로잡는 탁월한 보컬 능력으로 그가 출연하는 70년대말 나이트클럽은 문전성시를 이루기도 했다. 너무 서둘러 세상과 작별한 것이 아쉬울 뿐이다. 사족으로 ‘가을비 우산 속에’는 <고교 얄개>등 영화로 유명했던 석래명 감독에 의해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이 정윤희와 김자옥이었다.
 가수들 중에는 최헌처럼 유난히 가을에 어울리는 목소리를 가진 이들이 있다. 살아생전 최헌과 절친했던 최백호 역시 그런 가수 중의 한 명이다. 2년전 가을, 공연 무대에서 최백호가 부르는 ‘가을엔 떠나지 말아요’를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던 적이 있었다. 그의 노래에서는 이제 어떤 경지가 느껴졌다. 그가 전성기때 불렀던 노래보다도 훨씬 더 김흥이 커진 이유는 가수의 목소리가 아닌 마음으로 부르고, 청중 역시 마음으로 듣기 때문이리라.

 이문세의 ‘가을이 오면’이나 김광석의 목소리로 듣는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도 생각난다. 또 김동규 등 성악가들이 부르는 ‘10월의 어느 멋진 날’ 역시 가을이 되면 꼭 듣고 싶은 노래 중 하나다.
 ‘일광(日光)에 물들면 역사가 되고, 월광(月光)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고 했던가. 어느덧 우리 가요도 역사가 되고, 신화가 되고 있다. 그 신화와 역사를 온 몸으로 건너가고 있는 이 가을, 듣고 싶은 노래 한 곡쯤 꺼내 듣자. LP판을 걸 수 있는 턴테이블이 있다면 더더욱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