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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할 놈의 TV

'히트곡 제조기’ 김수현, 필 꽂히면 띄운다

 

 

'히트곡 제조기’ 김수현, 필 꽂히면 띄운다


김수현 작가, 경향신문 사진부

 

 드라마작가 김수현이 ‘히트곡 제조기’라면 언뜻 이해가 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뇌리 속에 남아있는 몇몇 노래들은 작가 김수현의 힘으로 온국민이 따라 부르는 스테디송이 된 건 사실이다.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지만 그 시작은 문성재의 ‘부산갈매기’였다. 롯데 자이언츠의 공식 응원가로 일년 내내 프로야구장을 뒤덮는 그 노래 말이다. 대전 유성의 나이트클럽에서 밴드로 활동하던 문성재는 한밭기획 양승국 대표의 권유로 데뷔했다. 양대표는 구창모, 소방차, 심신, 전유나 등 80년대와 90년대를 풍미한 가수들을 키워낸 굵직한 가요제작자였다. 그러나 문성재는 본인도 인정하듯이 뛰어난 노래실력을 가진 가수가 아니었다. 80년대초 ‘사나이 울리는 노래’를 만들어 보자는 양대표의 주문으로 작곡가 김중순(작고)의 도움으로 ‘부산갈매기’를 만들었다.

 제작사의 홍보로 방송사 라디오 프로그램마다 노래가 흘러나왔지만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양대표는 이 노래를 띄우기 위해 평소 안면이 있던 김수현 작가를 찾아갔다. 이미 70년대부터 잘나가던 작가 반열에 오른 김수현은 그당시 MBC 일일극을 집필하고 있었다. 노래를 들어본 김수현 작가는 드라마와 잘 맞아떨어진다면서 흔쾌히 노래를 쓰겠다고 대답했다. 문제는 이 노래가 너무 자주 드라마에 노출된다는 거였다. MBC 한 간부가 양승국 대표에게 김수현 작가를 찾아가서 “너무 자주 나오니 자제해달라고 부탁하라”는 압력을 넣었다. 양대표는 김수현 작가를 찾아가 이제 그만 넣으셔도 된다고 부탁했다. 그러나 김수현이 그리 호락호락한 작가가 아니었다.

 “처음 부탁한 건 양사장이지만 이 노래를 넣고 빼는 건 제 마음입니다.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마세요.”

 작가가 그리 나오니 더 이상 이야기 하지 않고 자리에서 나왔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방송사가 작품에 대해 이런저런 간섭을 했다고 생각한 김수현 작가가 극중 고두심의 옷가게를 아예 레코드 가게로 바꾼 뒤 본격적으로 ‘부산갈매기’를 홍보하기 시작했다. 결국 MBC는 이 문제로 김수현 작가와 갈등을 빚은 연출자를 교체하는 강수를 둔 뒤 사태를 진정시킬 수 있었다. 50% 안팎의 시청률이 보장되는 작가에게 방송사도 꼼짝할 수 없는 을이었다. 

 썼다하면 40~50%의 시청률을 올리는 드라마에 매일같이 ‘부산갈매기’가 흘러나왔으니 노래가 히트곡으로 떠오른 건 당연한 결과였다. 지금도 문성재는 '부산갈매기'의 가수로 남았으니 노래 한 곡으로 평생 먹고산 가수인 셈이다.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한 치 앞도 모두 몰라 다 안다면 재미없지.'

지금도 대한민국 드라마 최고 시청률을 얘기할 때 빠지지 않는 MBC주말극 <사랑이 뭐길래>에서 극중 엄마 김혜자가 라디오만 틀면 노래가 있었다. 급기야 김혜자가 매일매일 따라부르면서 흥얼거렸던 노래가 김국환의 '타타타'였다.

 사실 이 노래는 드라마가 방영되기 몇 달 전에 발매한 앨범에 들어있었으나 대중들의 반응이 시원치 않았다. 우연히 이 노래를 김수현 작가가 자가용을 타고 가다가 듣게 됐다. 김수현 작가는 드라마 내용과 딱 맞아 떨어지는 이 노래를 김혜자의 애창곡으로 설정하여 드라마에 삽입했다. 1991년 방영 당시 서울 시내 수돗물 사용량이 줄었을 정도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드라마에 노래가 나왔으니 그결과는 충분히 예측할만한 상황이었다.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김국환의 음반은 품귀현상을 빚을 정도였다. 또한 15년간 무명가수로 밤무대를 전전하던 김국환은 하루아침에 인기가수 반열에 올랐다.



'궂은비 내리는 날 /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 / 도라지 위스키 한 잔에다 / 슬픈 섹소폰 소리를 들어보렴'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 역시 김수현이 아니었으면 히트곡 반열에 오르지 못했을 곡이었다. 1992년 최백호는 미국 이민길에 나섰다가 정착하지 못하고 다시 한국으로 유턴했다. 평소 친분이 있었던 대영기획의 음반제작자 유재학 사장이 별 기대없이 '의리로' 최백호의 16집을 제작해 주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공백이 있었던 중견가수의 앨범이 잘 나갈리는 만무했다. 그런데 어느날 레코드사에서 전화가 왔다. 하루 1만5천장의 주문이 밀려서 당장 앨범을 공급할 수 없을 지경이라는 것이었다.

 그 시작은 당시 KBS주말극 <목욕탕집 남자들>을 집필 중이던 김수현 작가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낭만에 대하여'를 듣게된 데시 비롯됐다. 곧바로 주변에 수소문하여 이 노래를 극중 아버지(장용 분)의 애창곡으로 쓴 것이다. 이 노래 또한 바람 잘 날 없는 대가족을 이끌면서 하루하루 살아가기 힘든 장용이 옛사랑을 추억하는 장면에 삽입되면서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그덕분에 채 1만장도 안나갔던 최백호의 앨범은 수십만장이 판매되면서 최백호 역시 제2의 노래인생을 열게된 것이다. 훗날 최백호가 김수현 작가를 찾아가서 고맙다는 말을 전하자 김작가는 '첫사랑 그 소녀는 어디에서 나처럼 늙어갈까'라는 가사가 마음을 흔들었다면서 노래의 완성도를 칭찬했다는 것이다.

 요즘처럼 PPL과 O.S.T가 거래 관행으로 굳어진 드라마 시장에서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적어도 낭만이 남아있던 시대였기에 '히트곡 제조기' 김수현의 신화가 만들어지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