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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똑 군, 페북 양

짧아서 안타까운 봄 3월은 수줍고 설레는 계절이다. 난만한 봄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겨울의 마지막 자락이 남아 있다. 그러나 곳곳에서 기지개를 켜며 일제히 봄을 향해 고개를 내미는 것들이 봇물을 이룬다. 무릇 생명 있는 것들이 모두 앞다퉈서 봄맞이를 위해 새 단장 하기에 바쁘다. 우리네 삶 또한 시작하는 것들로 가득하다. 누구에게나 새로 시작한다는 건 마음 설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여름바람, 가을바람, 겨울바람이란 단어는 없어도 봄바람이라는 단어는 오랫동안 우리를 지배해왔다. 왜 처녀, 총각들이 하필 봄에 바람이 날까? 온갖 꽃들이 둘러 피고, 새들은 지저귀고, 봄바람은 살랑살랑 부는데 마음에 평정을 갖는 건 부처의 일이다. 어쩌면 봄바람은 당연하다. 누구든 봄이 되면 묵은 먼지를 털고 일어나듯 기지개를 켠다. 이런 봄에.. 더보기
김제동을 함부로 차지 마라 김제동이 여전히 뜨겁다. 김제동을 좀 아는 한 사람으로서 논란이 계속되는 현 상황을 마냥 지켜보기 어려웠다. 최근 보도된 기사의 제목들을 보자. -[단독] 김제동, 도봉ㆍ강동서도 1500만ㆍ1200만원…서울서도 ‘고액강연 논란. -김제동 쫓아 논란 판 키운 이언주 “1500만원 강연, 혈세로 특혜 줬다”. -김제동 또 '지자체 고액 강연료' 논란… 확인된 강연 수익만 1억원 육박. 기사를 열심히 읽지 않고 제목만 봐도 어떤 내용인지 알 수 있다. 말하자면 입만 열면 서민과 청년의 열악한 삶에 대해 정치적인 발언을 하는 김제동이 재능기부를 하지 않고, 고액(?)의 출연료를 받고 강연을 하러 다녔다는 것이다. 우선 어른들 때문에 김제동 강연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한 대덕구 내 고등학생들에게 심심한 위.. 더보기
<나는 자연인이다>가 중년을 사로잡는 이유? 사진 경향신문 사진부 가 중년을 사로잡는 이유? 저녁 공양을 마친 스님이 / 절 마당을 쓴다 / 마당 구석에 나앉은 큰 산 작은 산이 / 빗자루에 쓸려 나간다 / 산에 걸린 달도 / 빗자루 끝에 쓸려 나간다 / 조그만 마당 하늘에 걸린 마당 / 정갈히 쓸어놓은 푸르른 하늘에 / 푸른 별이 돋기 시작한다 / 쓸면 쓸수록 별이 더 많이 돋고 / 쓸면 쓸수록 물소리가 더 많아진다. - 이성선, 백담사. 산촌의 밤은 일찍 온다. 여름철은 그대도 좀 낫지만 겨울에는 오후 네 시만 돼도 어둑어둑 해진다. 깊은 산중은 산그림자가 깊어서 더욱더 빨리 밤이 찾아온다. 그래서 산촌은 양지보다는 음지, 낮보다는 밤이 친숙하다. 어쩌면 그곳에 사는 사람들 역시 밝고, 시끄러운 것과는 정 반대로 어둡고, 조용한 것들과 더 친하.. 더보기
다시 활판이 그립다 다시 활판이 그립다 사진 경향신문 사진부 1980년대 중반 내가 처음 신문사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모든 것이 낯설고 새로웠다. 그 당시 신문사의 많은 부서 중에서 가장 눈길을 사로잡은 곳이 문선부(文選部)였다. 문장을 고르는 부서인가? 그러나 문선부의 풍경은 보통의 사무실과는 사뭇 달랐다. 켜켜이 쌓여 있는 납활자들과 그 사이사이 부지런히 손을 놀려 납활자를 고르는 문선공 형님들. 문선부는 신문이나 인쇄공장 등에서 원고대로 활자를 골라내는 부서였다. 무협지 풍으로 얘기하면 칼로 바람을 가르듯 활자를 골라내서 순식간에 목판에 조판을 해서 문장을 완성하는 문선공 형님들의 신공(神功)은 정말 놀라웠다. 기자가 쓴 원고의 속도보다 활자를 골라내서 조판을 하는 문선공들의 손놀림이 더 빨랐다. 세종대왕께서 만드신 .. 더보기
그녀가 떠났다 그녀가 떠났다 사진 경향신문 사진부 욕망이란 이름이 전차를 타고 -연극배우 윤소정 태초에 그녀를 장미라고 이름하고 신은 가시를 심어주었다. 가시 뒤에 욕망을 숨겨 놓았다 사막 위에 홀로 피어 도도하게 살도록 운명을 주고 그 이름과 분위기에 걸맞게 인생의 무대를 사랑하라 말했다 때론 수녀도 되고, 창녀도 되면서 신이 주신 사막 위의 생을 가시 끝에 달린 욕망을 온몸으로 뜨겁게 사랑했다 붉은 장미가 욕망의 힘으로 불타서 검은 장미가 될 때까지 그 장미가 뜨겁게 부서져 모래알이 될 때까지 그녀는 장미의 이름으로 살아갈 것이다 이제 기억도 가물가물 하지만 배우를 인터뷰 하고 기사 대신 시를 썼다. 그 칼럼을 위해 윤소정을 만났다. 오늘 장미가 부서져 모래알이 되었다. 우리 모두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더보기
안성기, 배우로서의 시간 59년째 안성기, 배우로서의 시간 59년째 배우 안성기 / 사진 경향신문 사진부 배우 안성기(64)를 도형으로 표현한다면 정육각면체 같은 사람이 아닐까. 변의 길이와 내각의 크기가 모두 같은 정육각면체처럼 안성기는 어디 하나 흠잡을 데 없는 반듯한 인간의 전형이다. 모든 후배들이 본받고 싶어하는 배우의 멘토이자 한 시대를 모범적으로 살아가는 초로의 사내로서도 흠결이 없다. 배우로서도 삼각형이나 사각형보다 더 다채로운 이미지를 품고 있어서 보는 이들을 지루하지 않게 하는 마력도 있다. 마치 정육각면체를 이루고 있는 벌집처럼 늘 달콤한 꿀을 품고 있어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배우로서의 시간 59년째. 1957년 영화 에서 아역으로 데뷔한 이후 13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해왔다. 이나 의 젊은 안성기부터 나 .. 더보기
창고에서 잠자는 영화를 만든 까닭은? 창고에서 잠자는 영화를 만든 까닭은? 영화 의 포스터 내가 아는 후배 영화감독은 2년 전 아주 어렵게 영화 한 편을 찍었다. 그동안 총 4편의 영화를 세상에 내놓은 바 있으니 영화감독의 이력으로는 크게 모자랄 게 없는 중견감독이다. 총 제작비 8천만원. 그것도 악전고투하여 모은 돈으로 제작한 영화다. 그런데 그의 영화는 영화제에 잠깐 선보인 것 외에는 세상 사람들과 대면할 기회가 없었다. 물론 그의 영화가 수백억의 자본이 투입되어 빵빵한 스타가 나오는 그런 영화는 절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의 영화를 좋아한다. 우선 메이저시장에서 유통되는 영화들과는 분명히 다른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여전히 실험적이다. 또 세상을 바라보는 삐딱한 시선도 마음에 든다. 그의 영화가 창고에서 썩어야 하는 이유가.. 더보기
300:1, 비정상적인 실용음악과 경쟁률 300:1, 비정상적인 실용음악과 경쟁률 스타가 된다는 것, 밤하늘의 축포만은 아니다. 사진 경향신문 사진부 지난 주말 를 보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수많은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각 방송사마다 시즌을 거듭하면서 끊이지 않는데 어디서 저렇게 노래 잘하는 인재들이 끊임없이 나오는지? 그리고 각 방송사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입상하여 가수들의 반열에 오른 친구들은 지금 다 뭘 하는지? 지구가 생겨난 이래로 우리나라처럼 가수지망생이 많은 나라가 또 있을까? 하긴 한 집 건너 하나씩 전국에 노래방이 있는 나라도 우리나라 밖에 없다. 게다가 대통령부터 장관, 국회의원에 이르기까지 미래의 먹거리가 문화콘텐츠이고, K팝이야말로 먹거리가 떨어져가는 우리나라를 먹여 살릴 새로운 먹거리가 될 거라고 얘기하고 있다. 이쯤 되니 미.. 더보기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고?”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고?” 영화 이 1,272만명의 관객을 동원, 영화 을 넘어 올해 최고 흥행작에 올랐다. 역대 6위의 준수한 성적이다. 영화 의 첫 손 꼽는 명대사는 형사 황정민의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였다. 그의 아내 역시 검은손이 내미는 명품백과 돈다발을 팽개치고, 황정민에게 와서 “가오 떨어지게 살지말자”고 말한다. 류승완 감독은 영화배우 강수연(부산영화제 공동집행위원장)이 어떤 행사의 뒷풀이에서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야, 마셔”를 외치는 걸 들으면서 머릿속에 각인됐다고 토로했다. 어찌됐든 유승완 감독은 가오를 세우면서 영화 흥행에도 성공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사실 ‘가오’는 일본말이다. 일반적으로 얼굴을 뜻하지만 체면의 뜻으로도 쓰인다. 우리 일.. 더보기
문득 <뿌리 깊은 나무>가 그립다 창간호 표지 문득 가 그립다 (한국브리태니커사 발행)라는 월간지가 있었다. 1976년 창간되어 1980년 신군부에 의해 폐간 됐으니 불과 4년여의 짧은 생명을 가진 잡지였다. 그러나 폐간된 지 30년이 지난 오늘에도 그 잡지의 한 페이지, 한 페이지가 뚜렷하게 기억날 정도로 참 인상깊은 잡지였다. 는 창간호부터 잡지의 정형을 깼다. 우선 한자 제호가 난무하는 잡지시장의 추세와 달리 순한글의 긴 제목에 본문도 한자가 전혀 없는 한글전용에 가로쓰기였다. 게다가 잡지 최초로 아트디렉터를 고용하여 디자인 개념을 도입했다. 요즘 잡지들은 디자인 과잉으로 불편하기까지 하지만 그 당시에는 실로 엄청난 파격이었다. 그래서인지 사진 한 장, 기사 한 줄 버릴 게 없는 잡지였다. 당시 사회의 문제점을 끈질기게 파헤친 르포.. 더보기
홀로 떠나는 여행길 사진 여름 백담사, 경향신문 사진부 홀로 떠나는 여행길 다산 정약용 선생은 `소서팔사(消暑八事)’라는 시에서 `더위를 피하는 8가지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소개된 피서법은 솔밭에서 활쏘기, 느티나무 아래에서 그네타기, 넓은 정각에서 투호하기, 대자리 깔고 바둑두기, 연못의 연꽃 구경, 숲속에서 매미소리 듣기, 비오는 날에는 한시짓기, 달밤에 탁족하기 등이다. 듣기만 해도 더위가 썩 물러갈 듯하다. 피서라. 안 가자니 서운하고 가자니 번잡하다. 다산이 살았던 시대라면야 굳이 짐 싸들고 먼 길 나설 필요도 없었으리라. 그러나 숨 막히는 도시 한가운데서 푹푹 찌는 폭염을 견딘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지난 시절 우리네 피서를 돌이켜보면 팔할을 길거리에서 허비하면서 또 남은 시간의 팔할을 먹는데 보내는.. 더보기
밀본, MB, 세종 SBS 사극 를 열심히 보고 있다. 원작소설을 재미있게 읽은 터여서 어떻게 드라마로 구현했는지 보고 싶은 호기심도 있었다. 한글창제라는 역사적 사실에 추리와 액션을 가미한 이 드라마는 볼수록 매력이 있다. 회를 거듭하면서 ‘본방사수’를 하는 광팬이 됐다. 경향신문DB “지랄하고 자빠졌네”를 연발하는 세종 이도(한석규)와 한글창제를 막으려는 조직인 밀본의 본원(윤제문)과의 치열한 대립, 여기에 드라마의 재미를 이끌어가는 강채윤(장혁) 등 출연진들의 호연도 볼 만하다. 이 드라마의 핵심은 글자와 권력의 대립이다. ‘나랏말씀이 중국과 달라 백성들이 제 뜻을 펴지 못한다’면서 한글을 창제하려는 세종과, ‘글자가 반포되면 성리학과 관료체제의 뿌리가 흔들린다’는 양반 관료들의 치열한 싸움이 기본 줄거리다. 극중에서.. 더보기
어떤 결정 추석 차례상에 으레 ‘조율시이(棗栗枾梨)’가 오르듯 ‘추석민심’ 또한 오래된 차림상이다. 특히 총선이나 대선을 앞둔 정치권은 추석민심의 향방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세 사람만 모이면 정치얘기부터 꺼내는 게 이 나라 백성들이어서 추석에 형성된 여론이 표의 향배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 추석 상차림은 남달랐다. 마치 대추나 밤, 감, 배 옆에 멜론이나 바나나가 올라온 느낌이랄까. 이명박이나 박근혜가 올라와 있어야 할 자리에 안철수와 강호동이 떡하니 놓여 있었다. 추석 연휴 기간 내내 어딜 가든 온통 두 사람 얘기뿐이었다.  알다시피 안철수는 서울시장 출마 의사를 철회하고 박원순 변호사와 후보 단일화를 이뤘다. 이후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오래된 ‘밑반찬’인 박근혜의 지지율을 능가하면서 유력 대선.. 더보기
‘속도전’에 희생당한 삶 새해는 휴대폰 알림음과 함께 왔다. 지인들이 보낸 메시지들이 주루룩 뜬다. 한 해 고마웠다, 복 많이 받으시라, 내년에는 자주 만나자. 대개 그런 내용이다. 보신각 종이 울리는 순간 ‘카카오톡’에서는 집단 채팅이 시작된다. ‘페이스북’에도 이런저런 메시지들이 올라왔다. 뉴욕에 있는 친구는 타임스퀘어 광장에서 찍은 사진을 올렸고, 오클랜드에 있는 지인은 스카이 타워의 화려한 불꽃놀이 동영상을 올린 뒤 안부를 물었다. 대신 내 책상 위에는 크리스마스 카드나 연하장이 거의 사라졌다. 얼리어답터도 못되는 중년 사내의 연말연시가 이랬으니 이 나라 많은 이들의 새해도 별반 다르지 않았으리라. 불과 1년 전만 해도 볼 수 없었던 풍경이다. 새해 신새벽 아들 녀석과 함께 해돋이를 보러 뒷산에 올랐다. 오르기 전 휴대폰.. 더보기
다시 ‘우상의 시대’에 서서 ‘하나, 하나! 왼발, 왼발! 오와 열, 오와 열!…중략…그는 반평생을 연병장 아니면 운동장에서 보낸 사나이답게 군중을 휘어잡는 재간을 터득하여 비상금처럼 휴대하고 다녔다.’ 70년대 발표된 소설가 윤흥길의 단편 ‘제식훈련변천약사(諸式訓練變遷略史)’는 방학기간을 이용해서 1급 정교사 강습을 받게 된 중·고교 체육교사들의 제식훈련을 소재로 당대의 야만성과 폭력성을 고발한 수작이다. 우연히 이 작품을 다시 읽다가 고교 시절 제식훈련에 얽힌 안 좋은 추억이 떠올랐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70년대에 고교 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남녀 불문하고 누구나 교련복을 입고 군사훈련을 받았을 것이다. ‘오와 열’이 생명인 제식훈련은 물론 총검술 16개 동작, M1소총 분해와 조립 등 일찌감치 ‘군대맛’을 봐야 했다. 그 시절.. 더보기
K형, 곧 겨울입니다 ‘요즘 어떻게 사느냐고 묻지 마라 / 폐사지처럼 산다 / 요즘 뭐하고 지내느냐고 묻지 마라 / 폐사지에 쓰러진 탑을 일으켜세우며 산다 / (중략) / 가끔 웃으면서 라면도 끓여먹고 / 바람과 풀도 뜯어먹고 / 부서진 석등에 불이나 켜며 산다 / 부디 어떻게 사느냐고 다정하게 묻지 마라 / 너를 용서하지 못하면 내가 죽는다고 / 거짓말도 자꾸 진지하게 하면 / 진지한 거짓말이 되는 일이 너무 부끄러워 / 입도 버리고 혀도 파묻고 / 폐사지처럼 산다’(정호승 ‘폐사지처럼 산다’ 일부) K형. 시인 정호승의 신작 시집 을 읽다가 시편마다 뚝뚝 묻어나는 비애와 상처의 무게를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정말 누군가에게 다정하게 어떻게 지내느냐고 묻기도 힘든 요즘입니다. 특히 이 나라 중장년들의 삶이란 게 대략 난감하기.. 더보기
왠지, 이 가을이 쓸쓸하다 풍경 하나. 올봄에 국토의 최남단 마라도에 가볼 기회가 있었다. 언젠가 한 번쯤은 가봐야겠다고 맘먹었지만 늘 쫓기듯 제주도를 다녀왔기에 작지만 아름다운 섬, 마라도를 보는 건 쉽지 않았다. ‘마라도는 내 제주도 생활에서 한라산 꼭대기의 그 구름 속에 가득한 전망과 함께 내게 태고 이래의 초시간 속에 존재할 수 있는 어떤 기이한 용기를 베풀어 주었다.’ (고은 중에서). 마라도의 장군바위 /경향신문 자료사진 일찍이 시인 고은은 제주도에 머물던 낭인 시절부터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마라도를 가끔 찾았다고 했다. 그곳에서 풍성한 자연의 숨결을 빚어 훗날 노벨상 후보에 오른 저력의 터전을 마련했음은 불문가지다. 그런 고은의 증언을 떠올리면서 나 역시 부푼 기대를 갖고 모슬포항을 떠나 마라도의 선착장에 내렸다. 나.. 더보기
‘병역기피 의혹’ 안상수와 유승준 정치인과 연예인은 여러모로 닮은꼴이다. 우선 두 직업군은 모두 인기를 먹고 산다. 아무리 훌륭한 자원이라도 대중들의 지지가 없으면 인기를 얻기 힘들다. 가수라면 음반이 팔리지 않고, 영화배우라면 관객을 모으기 어렵다. 정치인들도 선거에서 표를 얻지 못하면 정치생명을 이어갈 수가 없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미디어에 자주 오르내려야 한다는 점이다. 대중의 관심을 끌면서 신문이나 방송에 이름이 나와야 유명세를 탈 수 있다. 다만 정치면이나 문화면 등에 오르내려야지 사회면의 톱뉴스가 되면 곤란하다. 두 직업군은 이 때문에 평소 이미지 메이킹에 힘써야 한다. 아무리 노래를 잘 부르고 연기를 잘해도 이미지 메이킹에 실패하면 무명의 세월을 견뎌야 하고, 정치인 역시 네거티브 이미지가 불거지면 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 더보기
유쾌한 대세씨 ㆍ멋진 골 넣고 환호하는 모습 ㆍ스물일곱살 ‘인민 루니’의 눈물 한 재일교포 청년이 꿈의 월드컵 무대서 줄줄 눈물을 쏟았다. 경기가 끝난 뒤 그는 “간절히 원했던 꿈의 월드컵 무대에서 최강팀 브라질과 경기할 수 있다는 것이 감격스러웠다”고 눈물의 이유를 밝혔다. 북한 월드컵 팀의 스트라이커 정대세. 월드컵에 앞서 그는 틈틈이 익힌 포르투갈어로 “북한의 호랑이와 포르투갈의 사자가 맞붙는다고 생각하며 우리가 이길 것이라고 자신한다”고 말했다. 그때부터 이 청년은 이번 월드컵의 이슈메이커가 될 기미가 보였다. 그의 어머니 리정금씨와 아버지 정길부씨는 ‘세계를 향해 크게 날개를 펼치라’면서 ‘대세(大世)’라고 이름 지었다고 했다. 나는 요즘 이 청년의 일거수 일투족이 즐겁다. 올해 스물일곱살의 청년 정대세를 처.. 더보기
오월의 날들이 간다 아름다운 오월이 간다. 아니 가슴 서늘한 오월, 괜스레 피가 뜨거워지는 오월이 간다. 유튜브에 들어가서 프랑스 샹송가수 미쉘 뽈라레프가 부른 ‘누가 할머니를 죽였나(Qui A Tue Grand Maman)’를 듣는다. 서정적인 피아노 선율과 어우러진 감미로운 목소리가 온 몸을 감싼다. 음표들이 오월의 아카시아향처럼 피어나고, 기억의 세포들이 일제히 기립한다. ‘할머니가 살았던 시절에/ 정원엔 꽃들이 만발했지/ 이제 그 시절은 가고 남은 거라고는 기억 뿐/ 더이상 아무것도 남지 않았지// 누가 할머니를 죽였나?/ 세월인가? 아니면/ 무심한 사람들인가?’ 80년대 중반의 오월을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이 노래는 몰라도 선율은 뚜렷이 기억할 것이다. 당시 이 노래는 누군가에 의해 ‘오월의 노래’로 번안되어 불렸다.. 더보기
‘하 수상한’ 4월 4월의 꽃들이 속절없이 진다. 채 피지도 못하고 지는 봄꽃들이 안쓰럽다. 궂은 날씨 때문에 꽃망울을 터뜨리지 못한 채 비바람에 스러져간 저 꽃들, 마치 서해 앞바다에서 황망히 생을 마감한 청춘들을 닮았다. 무릇 꽃은 4월의 햇살 속에서 환하게 피어나, 봄꽃에 취한 사람들 사이에 있어야 꽃다울 터인데…. 올 봄 피어난 꽃들은 시절을 잘못 만난 탓에 꽃다운 삶과는 거리가 멀었다. 봄날의 인간사 또한 그러해서 저 남쪽 끝에서부터 발화해야 할 봄꽃축제가 하나둘 취소되더니 북쪽 끝까지 매양 비슷한 풍경이다. 4월의 시인 신동엽은 이렇게 노래했다. ‘마을 사람들은 되나 안되나 쑥덕거렸다./ 봄이 발병 났다커니/ 봄은 위독하다커니 // 눈이 휘둥그레진 수소문에 의하면 / 봄은 먼 바닷가에 갓 상륙해서 / 동백꽃 산모.. 더보기
울지 마, 아이티의 소녀여 늦은 저녁 국밥집에서 TV뉴스를 보다가 눈시울을 붉혀야 했다. 따끈한 국밥 앞에서 도저히 숟가락을 뜰 수 없었다. 뉴스에서는 아이티 대지진의 현장에서 리포터가 한 소녀의 죽음을 전하고 있었다. 천신만고 끝에 구출된 11살난 소녀가 “엄마, 죽지 않게 해주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끝내 숨을 거뒀다는…. ‘살찐 소파’처럼 부푼 내 몸이, 기아문제에 무관심했던 내 이기심이 한꺼번에 부끄러워졌다. 그랬다. 대지진 전까지 나에게 아이티는 상반된 이미지로 남아 있었다. 카리브해의 뜨거운 열정을 담은 그네들의 리듬, 강렬한 삼원색의 색채가 인상적인 아이티 무명 화가의 그림들은 눈물겹게 아름다웠다. 반면 원색의 이면에 도사린 어둠도 또렷하다. 몇 년 전 읽은 일본의 소설가이자 유니세프 친선대사인 구로야나기 데쓰코의 책 .. 더보기
2009년, 꼭 기억해야할 것들 ㆍ평범하게 살기 어려웠던 세월 ㆍ용산의 아버지·바보 노무현··· 한 해가 저문다. 모든 이들이 가슴 속에 추억의 등불을 켜고, 차분히 한 해를 정리하는 시간이다. 누군가는 열정으로, 또 누군가는 소멸로 한 해를 정리할 것이다. 서러울 것도 그리 흥분할 것도 없는 저녁, 조용히 루시드 폴의 새 앨범을 듣는다. “오르고 또 올라가면/ 모두들 얘기하는 것처럼/ 정말 행복한 세상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나는 갈 곳이 없었네/ 그래서 오르고 또 올랐네 (…중략…)/ 난 어차피 너무나 평범한 사람이었으니/ 울고 있는 내 친구여/ 아직까지도 슬퍼하진 말아주게/ 어차피 우리는 사라진다/ 나는 너무나 평범한/ 평범하게 죽어간 사람/ 평범한 사람” -‘평범한 사람’ 중에서 가수 루시드 폴은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