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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똑 군, 페북 양

짧아서 안타까운 봄

구비구비 흐르는 섬진강<경향신문 사진부>

3월은 수줍고 설레는 계절이다. 난만한 봄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겨울의 마지막 자락이 남아 있다. 그러나 곳곳에서 기지개를 켜며 일제히 봄을 향해 고개를 내미는 것들이 봇물을 이룬다. 무릇 생명 있는 것들이 모두 앞다퉈서 봄맞이를 위해 새 단장 하기에 바쁘다. 우리네 삶 또한 시작하는 것들로 가득하다. 누구에게나 새로 시작한다는 건 마음 설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여름바람, 가을바람, 겨울바람이란 단어는 없어도 봄바람이라는 단어는 오랫동안 우리를 지배해왔다. 왜 처녀, 총각들이 하필 봄에 바람이 날까? 온갖 꽃들이 둘러 피고, 새들은 지저귀고, 봄바람은 살랑살랑 부는데 마음에 평정을 갖는 건 부처의 일이다. 어쩌면 봄바람은 당연하다. 누구든 봄이 되면 묵은 먼지를 털고 일어나듯 기지개를 켠다. 이런 봄에 묵은 동요 한 소절이 떠오르는 건 너무 낡은 걸까? 그보다도 가장 먼저 배운 봄 노래였기에 오래 기억에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엄마 엄마 이리와 요것 보셔요/ 병아리 떼 뿅뿅뿅뿅 놀고 간 뒤에/ 미나리 파란 싹이 돋아났어요/ 미나리 파란 싹이 돋아났어요.’

 

노래를 흥얼거리다 보면 시각적으로 황홀한 봄 풍경이 떠오른다. 노란 병아리 떼가 아장아장 걷고 난 길에 파란 미나리 싹이 돋는 장면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봄이 바로 앞에 와 있는 느낌이다. 이 땅에 봄이 시작될 무렵이면 한 번쯤 가보고 싶은 동네가 지리산과 섬진강 자락이다. 어느 해 봄에 매화꽃이 활짝 핀 섬진강 변을 걷다가 생각난 시가 있다.

 

나 찾다가/ 텃밭에/ 흙 묻은 호미만 있거든/ 예쁜 여자랑 손잡고/ 섬진강 봄물을 따라/ 매화꽃 보러 간 줄 알그라’ -김용택 봄날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시가 아닐 수 없다. 늘 여유가 없는 도시에서의 삶에는 없는 풍경이다. 예쁜 여자랑 손잡고 가지는 못할지라도 이 봄에 지리산 자락, 섬진강 어디쯤서 꽃놀이해야겠다.

봄이 오면 누구나 꽃놀이에 대한 욕망에 시달린다. 그러나 하루하루 바쁜 시간을 보내다가 허망하게 피었다 지는 꽃을 놓치기 일쑤다. 개나리와 진달래, 벚꽃이 지천인 나라에서 그 꽃 한 번 마음 편히 즐기지 못한다면 그 생은 실패한 생이 아닐까.

이 땅의 봄은 남쪽에서부터 시작되어 들판을 지나 산으로 올라간다. 요즘은 기후변화로 일찌감치 봄이 시작되기에 자칫 한눈을 팔면 봄꽃놀이를 놓치기 일쑤다. 복숭아꽃과 살구꽃, 제비꽃과 할미꽃, 모란과 작약으로 이어지는 꽃들의 향연을 놓치지 말 일이다. 다른 꽃들에 비해 화려하지는 않지만 소박하면서도 수줍은 듯 피는 보라색 제비꽃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노래가 있다. 이미 세상을 떠난 가수 조동진의 노래 제비꽃이 그것이다.

 

내가 처음 너를 만났을 때/ 너는 작은 소녀였고/ 머리엔 제비꽃 너는 웃으며 내게 말했지/ 아주 멀리 새처럼 날고 싶어/ 내가 다시 너를 만났을 때/ 너는 많이 야위었고/ 이마엔 땀방울/ 너는 웃으며 내게 말했지/ 아주 작은 일에도 눈물이 나와/ 내가 마지막 너를 보았을 때/

너는 아주 평화롭고 창 너머 먼 눈길/ 너는 웃으며 내게 말했지/ 아주 한밤중에도 깨어있고 싶어.’

 

마치 한 폭의 수채화 같은 노래지만 노래가 담고 있는 슬픔의 무게는 결코 녹록지 않다. 일설에는 백혈병을 앓고 있는 지인의 딸에게 문병을 다녀와서 쓴 노래라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조동진은 이 노래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이야기한 적이 없다.

따지고 보면 봄은 그리움의 계절이다. 특히 사람이 그리운 계절이어서 짧은 봄밤이면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한 채 꿈결을 헤매는 게 아닐까?

 

멀리서 당신이 보고 있는 달과/ 내가 바라보고 있는 달이 같으니/ 우리는 한동네지요/ 이곳 속 저곳/ 은하수를 건너가는 달팽이처럼/ 달을 향해 내가 가고/ 당신이 오고 있는 것이지요/ 이생 너머 저 생 아득한 한 뼘이지요/ 그리움은 오래되면 부푸는 것이어서/ 먼 기억일수록 더 환해지고/ 바라보는 만큼 가까워지는 것이지요/ 꿈속에서 꿈을 꾸고 또 꿈을 꾸는 것처럼/ 달 속에 달이 뜨고 또 떠서/ 우리는 몇 생을 돌다가 와/ 어느 봄밤 다시 만날까요.’

- 권대웅, 그리운 것은 모두 달에 있다.

 

문제는 그 봄이 너무 짧다는 것이다. 게다가 코로나 19에 시달려야 하는 봄은 더욱더 짧다. 짧아서 아쉽고 안타까운 봄이다. 아주 오래 전에 교과서에서 만난 시 한 편이 봄은 짧으니 즐기라고 재촉한다.

 

이 비 그치면/ 내 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 서러운 풀빛이 짙어 오것다.// 푸르른 보리밭 길/ 맑은 하늘에/ 종달새만 무어라고 지껄이것다.// 이 비 그치면/ 시새워 벙글어질 고운 꽃밭 속/ 처녀애들 짝하여 외로이 서고,// 임 앞에 타오르는/ 향연(饗宴)과 같이/ 땅에선 또 아지랑이 타오르것다.’ - 이수복, 봄비

 

아지랑이 피어오르고 송홧가루 날리면 이미 봄이 저만치 가 있을 것이다. 카르페디엠, 마음만으로도 이 봄을 마음껏 후회 없이 즐겨야겠다.

 

 

오광수(시인, 경향신문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