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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똑 군, 페북 양

2009년, 꼭 기억해야할 것들

ㆍ평범하게 살기 어려웠던 세월
ㆍ용산의 아버지·바보 노무현···

한 해가 저문다. 모든 이들이 가슴 속에 추억의 등불을 켜고, 차분히 한 해를 정리하는 시간이다. 누군가는 열정으로, 또 누군가는 소멸로 한 해를 정리할 것이다. 서러울 것도 그리 흥분할 것도 없는 저녁, 조용히 루시드 폴의 새 앨범을 듣는다.

“오르고 또 올라가면/ 모두들 얘기하는 것처럼/ 정말 행복한 세상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나는 갈 곳이 없었네/ 그래서 오르고 또 올랐네 (…중략…)/ 난 어차피 너무나 평범한 사람이었으니/ 울고 있는 내 친구여/ 아직까지도 슬퍼하진 말아주게/ 어차피 우리는 사라진다/ 나는 너무나 평범한/ 평범하게 죽어간 사람/ 평범한 사람” -‘평범한 사람’ 중에서

가수 루시드 폴은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나와 스위스 로잔 연방공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네이처 케미스트리’에 논문이 게재된 촉망받는 학자였다. 그는 “없는 사람들, 죽어간 사람들, 슬퍼하는 사람들, 외로운 사람들을 위한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면서 올해 초 과학자의 길을 완전히 접고 전업가수를 선언했다.

그가 어떤 의도로 이 노래를 만들었는지는 나는 모른다. 그러나 음울한 울림으로 폐부를 파고드는 이 노래를 들으면서 올 한 해 세상을 뜬 ‘평범한 사람들’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가족과 생활터전을 지키기 위해 나섰다가 무참히 희생된 용산참사 현장의 아버지들. 그분들은 죽은 뒤에도 테러리스트로 몰렸고, 한 해가 끝나가는 지금까지도 사회의 법질서를 뒤엎고 혼란을 야기한 죄인 취급을 받고 있다. 그분들이야말로 밥상에 올라온 고등어 한 마리에 감동하던 평범한 이웃이었다는 걸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용산참사의 유가족들 (경향신문 자료사진)


그분들이 애타게 지키고 싶었던 건 아버지라는 이름이었고, 아들딸과 머물 수 있는 지상의 따뜻한 방 한 칸이었을 게다. 목월 선생의 시 ‘가정’의 평범한 아버지처럼 “아랫목에 모인/ 아홉 마리의 강아지야/ 강아지 같은 것들아/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 내가 왔다”고 노래하고 싶었으리라.

그리고 또 한 사람 ‘바보 노무현’이다. 그는 일국의 대통령이었지만 퇴임 이후 손녀를 자전거 뒤에 태우고 논길을 달리면서 ‘평범한 사람’을 꿈꿨다.

실제로 국민들은 언젠가 대통령 할아버지가 손수 지은 봉하산 유기농쌀을 맛볼 수 있는 날을 기대했다. 또 아무때나 내려가면 집앞에 나와 일일이 악수하며 농담도 곧잘 한다는 퇴임한 대통령을 만나러 가고 싶었을 게다. 그런데 ‘바보 노무현’은 초롱초롱한 손녀의 미소를 뒤로한 채 부엉이 바위에서 몸을 던졌다. 자신의 정치적 분신이었던 노무현의 죽음을 접하고 “내 몸의 반이 무너진 것 같은 심정”이라며 눈물을 보이던 또 한 명의 전직 대통령 할아버지도 끝내 세상을 등졌다.

‘어차피 우리는 사라진다.’ 평범하게 한 세상 살다가 사라지는 게 이다지도 힘든 일일까. 무엇이 평범한 아버지의 꿈, 할아버지의 꿈을 앗아갔을까. 다른 해 같으면 묵은 찌꺼기들을 다 털어버리고 희망찬 새해를 맞자고 얘기했으리라. 송년회 때 소폭(소주폭탄주) 한 잔 마시면서 ‘개나발’(개인과 나라의 발전을 위해)이라고 외쳤을 것이다.

그러나 2009년을 그렇게 쉽게 잊어서는 안된다. 아니 쉽게 떠나보낼 수 없다. 우리에게 2009년은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갈 수 없게 된 원년이다. 이 땅의 평범한 아버지들을 테러리스트로 몰아 구천을 떠돌게 만든 해다. 평범한 국민으로 돌아간 대통령을 모두가 합심하여 바위 위로 내몰았던 치욕의 해다. ‘국민들이 요구하면 불륜, 대통령이 결정하면 로맨스’라고 주장하는 이상한 대통령을 모셨던 한 해다. 앞으로는 사회통합을 외치면서, 뒤에서는 눈엣가시들을 솎아내는 정권과 함께 보낸 해다.

망각은 때로 인간에게 유용한 도구지만 2009년만은 꼭 기억하자. 그래야만 내세울 것도, 그리 억울할 것도 없는 ‘평범한 시민’으로 한 세상 무사히 살아갈 수 있다. 더 큰 상처와 치욕을 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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