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사극 <뿌리 깊은 나무>를 열심히 보고 있다. 원작소설을 재미있게 읽은 터여서 어떻게 드라마로 구현했는지 보고 싶은 호기심도 있었다. 한글창제라는 역사적 사실에 추리와 액션을 가미한 이 드라마는 볼수록 매력이 있다. 회를 거듭하면서 ‘본방사수’를 하는 광팬이 됐다.
경향신문DB
“지랄하고 자빠졌네”를 연발하는 세종 이도(한석규)와 한글창제를 막으려는 조직인 밀본의 본원(윤제문)과의 치열한 대립, 여기에 드라마의 재미를 이끌어가는 강채윤(장혁) 등 출연진들의 호연도 볼 만하다.
이 드라마의 핵심은 글자와 권력의 대립이다. ‘나랏말씀이 중국과 달라 백성들이 제 뜻을 펴지 못한다’면서 한글을 창제하려는 세종과, ‘글자가 반포되면 성리학과 관료체제의 뿌리가 흔들린다’는 양반 관료들의 치열한 싸움이 기본 줄거리다.
극중에서 밀본 세력은 “사대부가 권력을 지닐 수 있는 건 유학을 알고 한자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 글자를 알면 사대부의 권력이 무너진다”면서 한글창제를 막으려 한다. 이에 대해 세종은 “조선을 어떻게 다르게 할 것이냐. 백성을 위한 대의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 이것이 나의 답이다”라면서 한글창제를 서두른다. 그 와중에도 좌의정 이신적(안석환)은 “주상의 글자가 반포된다 해도 아무도 쓰지 않을 것”이라면서 한글의 파급력을 부정한다.
<뿌리 깊은 나무>의 미덕은 작금의 우리네 정치현실과 치환하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는 데 있다. 또 한편으로는 ‘세종의 리더십’을 드라마로 다시 한번 확인하는 재미다.
이 시대의 왕인 MB는 집권 초기부터 소위 ‘형님정치’로 기반을 다졌다. 그 중 하나로 ‘백성의 말’을 통제할 수 있는 자리인 방송통신위원장에 ‘최시중 형님’을 앉혔다. 최시중은 누구인가.
언론인 출신에 여론조사 전문가로서 MB 대통령 만들기의 멘토 역할을 한 인물이다. 그를 비롯한 현 정권은 집권과 더불어 신문과 방송의 줄세우기에 나섰다. 방송사 수장에 자기 사람을 앉힌 뒤 방송사 내 돌출분자를 색출했다. 까칠한 진행자를 솎아내고, 정의를 외쳐대는 시사 프로그램들을 무력화시켰다. 심지어 코미디 프로그램의 풍자까지도 용납하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소위 메이저 언론들에 종편채널이라는 미끼를 던져놓고 집권기간 내내 그들의 입을 막았다. 이들 언론은 신문과 방송의 겸영으로 ‘미디어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충성경쟁을 펼쳤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정권은 모두에게 미끼를 던져주면서 방송환경을 ‘개판 오분전’으로 만들어 놓았다. 오늘 이 시간 펼쳐지는 종편들의 이전투구는 그러한 ‘꼼수’의 결과다.
당대의 밀본으로 치환할 수 있는 MB정권은 주요 방송사와 몇몇 거대언론을 장악하면 천년만년 집권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백성들로부터 ‘글자’를 빼앗으면 백성의 머릿속까지 지배할 수 있으리라 믿은 것이다.
그러나 나라 밖에서 스티브 잡스가 창제하고, 국내 대기업들이 돈벌이를 위해 전파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명박산성’을 쌓았던 권력의 발목을 잡았다. 당대의 한글창제에 비유할 만한 SNS가 저들의 권력을 무력화시키기 시작했다. 치졸한 권력에 저항하면서 거대언론이나 방송이 아닌 SNS를 통해 소통을 시작한 몇몇 사람들이 청년들의 멘토로 떠올랐다. 누군가는 자신을 지지하는 시민들에게 떠밀려 대권주자로 부상했다. 정부가 허가해주지도 않은 ‘시시껄렁한 방송’인 ‘나꼼수’가 거대 미디어의 논리를 뒤집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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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뿌리 깊은 나무>의 본방사수에 나서야겠다. 제작진이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이 드라마가 우리 시대에 던지는 메시지는 강렬하다. 역사 속의 세종은 재능도 뛰어났지만 즉위 후 보통 새벽 2~3시에 일어나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고 한다. 혼자 있는 시간에도 공부와 사색을 좋아했고, 각종 경연을 통해 토론을 즐긴 ‘워커 홀릭’이었다. 그러나 세종은 운동을 싫어하고 편식이 심해서 비만에 시달렸다. 이 때문에 풍병, 종기, 당뇨, 관절이상 등 성인병을 앓았다. 그가 오로지 ‘백성들의 미래’를 걱정하면서 자신의 안일을 위한 시간을 줄인 결과일 것이다.
대권주자들이 한결같이 ‘세종 리더십’을 외치는 오늘, 세종과 같은 리더십을 가진 인물을 가려내서 대통령을 만드는 건 이제 국민의 몫이다. 다시는 달콤한 공약과 과장된 이력에 속아서 대통령을 뽑는 일이 없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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