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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똑 군, 페북 양

홀로 떠나는 여행길

 

 

             사진 여름 백담사, 경향신문 사진부 

 

 

홀로 떠나는 여행길


 


다산 정약용 선생은 `소서팔사(消暑八事)’라는 시에서 `더위를 피하는 8가지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소개된 피서법은 솔밭에서 활쏘기, 느티나무 아래에서 그네타기, 넓은 정각에서 투호하기, 대자리 깔고 바둑두기, 연못의 연꽃 구경, 숲속에서 매미소리 듣기, 비오는 날에는 한시짓기, 달밤에 탁족하기 등이다. 듣기만 해도 더위가 썩 물러갈 듯하다.

피서라. 안 가자니 서운하고 가자니 번잡하다. 다산이 살았던 시대라면야 굳이 짐 싸들고 먼 길 나설 필요도 없었으리라. 그러나 숨 막히는 도시 한가운데서 푹푹 찌는 폭염을 견딘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지난 시절 우리네 피서를 돌이켜보면 팔할을 길거리에서 허비하면서 또 남은 시간의  팔할을 먹는데 보내는 피서였다. 올해 아직 피서길에 오르지 않았다면 예전과 다른 피서를 제안해본다. 시 한 편, 노래 한 곡 챙겨서 홀로 떠나는 피서는 어떨까.

'떠돌고 떠돌다가 여기까지 왔는데요/저문 등명 바다 어찌 이리 순한지/솔밭 앞에 들어온 물결들은/솔방울 떨어지는 소리까지,/솔방울 속에 앉아 있는/민박집 밥 끓는 소리까지 다 들려주는데요/(중략)/막버스가 왔습니다 헐렁한 스웨터를 입은 여자가 내려, 강릉장(場)에서 산 플라스틱 그릇을 딸그락 딸그락거리며 내 앞을 지나갑니다/어디 갈 데 없으면, 차라리/살림이나 차리자는 듯'

강릉 근처 등명(燈明) 바닷가서 시인 전동균씨가 쓴 `초승달 아래'라는 시다. 동해 바다로 갈 길이라면 순하디 순한 등명 바닷가에 꼭 한 번 들러볼 일이다. 시 한편 가슴 속에 품어들고 가서 나즈막하게 외다보면, 또 아는가. 막버스 내린 동네 처녀가 갈데없으면 살림 차리자며 딸그락 거릴지….

혹 바다 위를 가로질러 비라도 뿌린다면 김민기의 '친구'가 생각날 것이다. '검푸른 바닷가에 비가 내리면/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뭍이요/그 깊은 바닷속에 고요히 잠기면/무엇이 산 것이요 무엇이 죽었소'라고 나즈막한 저음으로 불러볼 일이다.

더위에 지쳐 푸른 숲이 그리워졌다면 설악산 백담사를 찾을 일이다. 이 여름 계곡은 깊고 깊어서 물소리만으로도 몸이 얼어불고, 솔숲을 스치는 바람만으로도 마음이 씻겨질 것이다. 게서도 이런 시 한 편쯤 떠올려볼 일이다.

'저녁 공양을 마친 스님이/절 마당을 쓴다/마당 구석에 나앉은 큰 산 작은 산이/빗자루 에 쓸려 나간다/산에 걸린 달도/빗자루 끝에 쓸려 나간다/조그만 마당 하늘에 걸린 마당/정갈히 쓸어놓은 푸르른 하늘에/푸른 별이 돋기 시작한다/쓸면 쓸수록 별이 더 많이 돋고/쓸면 쓸수록 물소리가 더 많아진다'-이성선 `백담사'

동해바다 가고 오는 길 도처에 걸리는 시와 노래가 어디 그뿐일까. 양희은이 청아하게 부른 `한계령'이나 정태춘의 속 깊은 노래 `북한강에서'도 절창이다. 시간이 많지 않다면 김현철과 함께 `춘천가는 기차'에 올라도 괜찮다.

남도 어디쯤 갈 예정이라면 아름다운 섬진강 기슭에 앉아 김용택 시인의 '섬진강'을 떠올려볼 일이다. '영산강으로 가는 물줄기를 불러/뼈 으스러지게 그리워 얼싸안고/지리산 뭉툭한 허리를 감고 돌아가는/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섬진강물이 어디 몇 놈이 달려들어/퍼낸다고 마를 강물이더냐고(하략)'

섬진강 어디쯤서 은어낚시라도 하는 강태공을 만난다면 고기들의 안부도 물어보자. 강물이 휘돌아 가는 어디쯤서 물질하는 아낙을 만나 세상사는 얘기 나눠볼 일이다. 좀더 내려가서 남쪽바다 가까운 남해금산에 가면 시인 이성복이 반갑게 맞는다.

'한 여자 돌속에 묻혀 있었네/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어느 여름비 많이 오고/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갔네/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주었네/남해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네/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

정겨운 남도의 길을 따라 달리다 보면 떠오르는듯 다시 가라앉는 풍경들. 그 풍경들 사이로 보이는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를 반추하다 보면 바다는 더욱 파랗고 생은 다시 연초록으로 빛날 것이다.

혹 여유가 있어 바다 건너 제주도로 건너갈 거라면 성산포에 가볼 일이다. `성산포에서는/교장도 바다를 보고/지서장도 바다를 본다/부엌으로 들어온 바다가/아내랑 나갔는데 /냉큰 돌아오지 않는다(하략)' 제주의 시인 이생진의 시가 성산포를 더욱 아름답게 빛나게 한다. 제주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성산 일출봉에 올라가면 사람도 바다도 다 하나다. 요즘 제주도를 더욱 그립게 하는 노래는 아무래도 최성원의 `제주도 푸른 밤이 아닐까. 성시경이 리메이크하지 않았다면 몇몇 사람들의 애창곡으로 남아있는 추억 속의 노래였을 뿐이리라.

`떠나요 제주도 모든 걸 훌훌 버리고/제주도 푸른밤 그 별 아래/이제는 더이상 얽메이긴 우리 싫어요/신문에 TV에 월급봉투에/아파트 담벼락 보다는/바달 볼 수 있는 창문이 좋아요/깡깡 밭 일구고 감귤도 우리 둘이 가꿔봐요/정말로 그대가 외롭다고 느껴진다면/떠나요 제주도 푸른밤 하늘 아래로'

귓전을 때리는 파도소리가 시원한 노래 한 곡만으로도 잠시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다. 휴가가 휴가 답기 위해서는 말 그대로 편안한 휴식의 시간이 돼야 한다. 갈수록 남루해지는 우리네 삶을 한탄하기보다는 남루함 속에서 여유를 찾는 지혜가 필요할 때다.

삶이 지루하다고 느껴지는가. 자, 그럼 베낭에 시 한편 노래 한 곡 넣고 훌쩍 떠나보자. 마음 맞는 친구가 있다면 더욱 행복할 것이다. 아니면 이제 생각이 여물기 시작한 자녀들에게 시끌벅적한 피서가 아닌 진정한 휴가가 무엇인지를 가르쳐주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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