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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다방은 어디로 갔을까?

정태춘·박은옥 “세상의 명랑함이 불편해” 10년 만에 새 앨범

정태춘(58)의 노래는 서사(敍事)의 다른 이름이다. 한때 그의 노래는 투쟁이었고, 반동이었다. 가슴을 뜨겁게 달구는 북소리였다. 그러나 그의 이름에 박은옥(55)이 더해지면 정겨워진다. 30년 넘게 기타를 들고 세상을 노래해온 부부 가수. 마치 호수 위를 가로지르는 원앙새 한 쌍을 닮았다. 

<다시 첫차를 기다리며> 이후 10년 만에 이들 부부가 11집 앨범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를 내놓았다. 2002년 “더 이상 노래를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하여 많은 사람들을 아쉽게 했던 정태춘이 다시 기타를 고쳐잡고 쏟아낸 노래들이어서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앨범이다.
지난 주말 서울 마포구 합정동 다음기획 사무실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정태춘은 진지함 속에 여유가 묻어났고, 박은옥은 ‘명랑소녀’ 같았다. 정태춘은 다시 노래를 쓰게 된 배경에 대해 순전히 “박은옥을 위해서”라고 말했다.

“창작을 재개했다기보다는…. 이 사람(박은옥)이 ‘당신 노래 안 만들 거면 내 노래라도 만들어달라’고 했어요. 처음엔 결국 내 이야기를 쓰게 된다면서 버텼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래 한번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들더군요.”(정태춘)
“처음엔 제 앨범을 내기 위해 노래를 만들었죠. 그런데 노래들을 보니 태춘씨가 불러야 더 어울리는 노래들이 많은 거예요. 내친김에 함께 앨범을 내자고 졸랐고, 공연까지 하게 됐어요.”(박은옥)

정태춘은 10년 전 <다시 첫차…>가 현장에서 만든 앨범이라면 <바다로…>는 현장을 떠나 만든 앨범이라고 정의했다. 그사이 시집 <노독일처>(2004)를 통해 세상에 대한 분노를 쏟아낸 것이 유일한 창작활동이었다.
흰고무신을 신고 노동현장을 누비며 노래하고, 음반 사전검열 철폐를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미군기지가 건설되는 고향 대추리를 위해 거리공연을 하던 ‘투사’ 정태춘은 이번 앨범에 없다. 대신 샹그릴라를 찾아 바다의 끝에까지 가서 유토피아를 꿈꾸는 머리 희끗희끗한 음유시인이 거기 서 있다. 


정태춘(오른쪽)은 “30여년을 함께해준 아내 박은옥을 위해 다시 노래를 만들게 됐다”면서 “하루하루 살기 위해 애를 쓰는 우리 이웃의 이야기들을 앨범에 담았다”고 말했다. | 이상훈 선임기자 



“저는 좀 완고한 이상주의자입니다. 그러다보니 내 삶의 투쟁과제들이 대중 앞에 내놓기엔 과격하거나 너무 이상적이었어요. 제 삶 자체가 대중 앞에 드러내기에 부끄러운 부분도 많았고요.”(정태춘)
“정태춘이 하고 싶은 이야기와 현실 사이에 거리가 너무 멀었어요. 그러다보니 곡을 안 쓴 거죠. 정작 본인은 (현장을) 떠났다고 하지만 여전히 시선은 현실을 보고 있어요. 이번 앨범에 그런 흔적들이 여기저기 묻어나 있죠.”(박은옥)

정태춘은 지난 10년의 절반쯤은 분노하고 좌절했고, 나머지 절반은 나의 유토피아를 찾기 위해 매달린 시간이었다고 했다. 2010년 집중적으로 만든 이번 앨범의 노래들에도 그 흔적들이 역력하다.

‘여기 다시 돌아오시지는 마세요 / 꿈꾸는 그대, 그리운 여행자’(꿈꾸는 여행자)라고 노래하거나, ‘강이 그리워, 네가 그리워 / 저문날 네 노래 들으려 여기까지 왔지’(강이 그리워)라고 말한다. 정태춘에게 강을 따라 걸어서 바다의 끝까지 나가는 건 유토피아를 찾아가는 여정인 셈이다.

“제가 부른 타이틀곡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에 ‘모든 시계들이 깊은 잠에 빠져도 / 네 먼 바다는 아직 일렁이고 있겠지 / 여기 끝 모를 어둠 깊어진대도 / 누군가 거기 작은 배를 띄우고’라는 구절이 있어요.
태춘씨가 고통 속에서도 결코 사는 걸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견뎌내는 이 땅의 많은 현장활동가들에게 띄우는 편지라고 할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 노래를 부르면서 쌍용차 해고 노동자나 크레인 투쟁을 벌인 김진숙씨 같은 분들이 떠올라서 많이 울었죠.”(박은옥)

정태춘이 부른 ‘서울역 이씨’는 8곡의 노래 중 유일하게 2006년 만들어졌다. 서울역 노숙자 추모제에서 부르기 위해 만든 노래로 ‘저 고속전철을 타고 천국으로 떠나간다 / 바코드도 없는 몸뚱이를 거기에다 두고’라는 노랫말이 듣는 이의 가슴을 철렁하게 한다.

“문학과 철학, 담론이 사라진 시대에 시장엔 상품만 남았어요. 저에게 지난 10년간 가장 불편했던 것은 세상의 명랑함이었죠. ‘서울역 이씨’는 명랑함에 대한 불편함을 드러낸 노래입니다. 바닥까지 절망하지 않고는 이 세상을 잘 이해할 수 없겠다는 생각에서 앨범 맨 처음에 넣었고요.”(정태춘)

앨범의 맨 마지막엔 ‘92년 장마, 종로에서’를 현장활동가들에게 헌정하는 마음으로 다시 녹음해서 수록했다. 유일한 듀엣곡이다. 세상의 불의와 맞서면서 생존을 위해 싸우는 많은 이들에 대한 부채감을 조금이라도 덜어보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이 앨범을 듣다보면 정·박 부부가 지난 수년간 교유해온 사람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간다. 시인 도종환, 만화가 박재동, 판화가 이철수 등은 앨범을 내라고 부추기고, 녹음실까지 찾아와 응원해준 문화예술인들. 여기에 지리산 시인 박남준을 소재로 한 ‘섬진강 박 시인’을 비롯해 시인 백무산의 안내로 가게 된 울산 반구대를 소재로 한 ‘저녁 숲 고래여’도 있다. 

“사진작가 김홍희씨의 사진전에 갔다가 황량한 몽골사막 풍경을 보고 ‘꿈꾸는 여행자’를 만들었고, 지리산에 이원규 시인을 만나러 갔다가 ‘강이 그리워’라는 노래를 만들었어요. ‘날자, 오리배’는 친하게 지내는 후배 소설가 박민규씨의 단편 ‘아, 하세요 펠리컨’을 읽고 쓴 곡이죠.”(정태춘)

특히 ‘날자, 오리배’에는 강산에, 김C, 윤도현 등 후배 가수들이 코러스로 참여했다. 이들 외에도 또 한 명의 조력자는 딸이다. 미술을 전공했지만 음악에도 관심이 많아서 부모의 노래에 일일이 평을 한다. 최근에는 딸이 직접 노래도 만들었는데 ‘꽤 쓸 만하다’는 게 정·박 부부의 평가다. 내친김에 음반을 낼지도 모른다니 대를 잇는 가수 탄생도 기대할 만하다.

1979년부터 정태춘의 곡을 받아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박은옥에게 남편은 음악적으로 존경하는 선배이자 현실감각이 없어 아내를 고생시키는 가장이기도 하다. 

“누군가 음악적 동지라고 표현했는데 정태춘의 뛰어난 재능 앞에서는 제가 초라해져요. 글만 잘 쓰는 게 아니라 곡도 만들고, 노래도 부르고…. 가끔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생각도 해요. 그렇지만 남편으로서는 높은 점수를 줄 수 없죠(하하).”(박은옥) 

정태춘은 스스로를 “만드는 것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했다. 시집도 내고, 사진도 찍고, 가죽공예를 하는가 하면 요즘엔 천자문을 공부하면서 붓글씨에도 손을 댔다. 

“시는 한 편 한 편 쓰고 났을 때의 성취감 때문에 썼어요. 그게 무슨 대단한 작품으로서의 성취라기보다는 내가 살아가는 과정에서 뭔가를 만들었다는 의미의 성취죠. 사진은 내가 무엇에 시선을 주로 두는지 드러나는 작업이라 재미있어요. 천자문을 공부하면서 짧은 한시를 짓는 재미에 빠져서 꽤 써놨는데 아직 누구한테 보여줄 만한 것은 못돼요.”(정태춘)

정태춘은 아내를 위해 앨범만 만들어주고 빠지려던 계획이 무산됐다면서 투덜댄다. 작곡가이기 이전에 ‘공처가’인 그가 내친김에 인터뷰도 하고 공연도 하자는 박은옥의 요청을 거절하지 못한 것이다.

3월6일부터 11일까지 서울 강남 삼성역 KT&G 상상아트홀에서 열리는 이들 부부의 공연은 새 앨범 발표를 겸한다. 

“두 사람이 걷고 걸어서 이제 막 강의 끝, 바다 앞에 선 느낌이랄까요. 거기쯤 서서 그 너머로 가고 싶은 욕망을 불사르고 있는 중이죠. 이번 공연은 강을 따라 걸어서 바다 앞에 서기까지의 도정을 담은 공연이 될 겁니다. 앨범 후기에 사실 ‘나는 이제 배를 사야 한다’고 쓰고 싶었어요. 그런데 배는 사지 못하고 17년된 차를 버리고 새 차를 샀어요.”(정태춘)


■ 정태춘·박은옥은

1978년 첫 앨범 <시인의 마을>로 데뷔한 정태춘은 이듬해 MBC, TBC 등에서 신인가수상을 차지하며 대중적인 인기를 누렸다. 박은옥은 1979년 ‘회상’으로 가요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1980년 결혼한 이들은 이후 부부가수로 활동했다. 아름다운 노랫말과 감미로운 멜로디로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던 이들은 1980년대 중반부터 노동현장을 누비면서 저항가수이자 투사로 변신했다. 대중적인 매체인 TV 출연 등을 자제하면서 노동자들을 위한 노래들을 만들고 불렀다.
1990년 내놓은 음반 <아 대한민국>은 검열을 전제로 한 음반사전심의 철폐를 위해 반기를 든 문화사적인 작품이었다. 정태춘은 고향 평택에 미군기지가 건설되는 것을 반대하면서 수개월간 거리공연을 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