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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도 빵도 안되는 시

그냥

 

 사진 오광수

 

 

 그냥


 오광수

 

   봄꽃이란 봄꽃 모조리 다 피었을때

 우리네 생도 모조리 피었으면 좋겠네

 그늘 속 숨죽이던 이끼들까지

 연파랑으로 피어났으면 좋겠네

 산수유는 이미 노랗고, 개나리는 저리도 환한데

  화무십일홍, 화무십일홍

 울어버릴듯 고개 떨구고 지나가는 당신

 

  목련꽃 그늘 아래서 입맞춤하던 그 순간

  눈 앞을 뒤덮던 황홀한 꽃비는 사라지고

  추억하기엔 너무 잔인한 오월의 하루

  시나브로 청춘은 시들어 이제는 꽃 진 자리

  송홧가루가 버드나무 솜털 사이로 흩날릴 때

  푸른 소나무 사이로 하염없이 걸어가던 당신

  어디쯤 맨발로 걷고 계시는지요


  다시 시작한다면 그 어디쯤서

  그냥 이름없는 야생초로 피어나고 싶다네

  봄꽃이란 봄꽃 모조리 다 질 때

  우리네 생도 그냥 저물었으면 좋겠네

  노여움도 서러움도 없이 가는 봄이 아쉽지 않게

  당신과도 그냥 지나는 소문처럼 스쳐보냈으면 좋겠네

  이 봄, 맨 처음의 봄

  꽃 진 자리, 꽃 필 자리.   

   

  꽃은 처연해서 꽃이다. 그 비밀을 알게 되면 삶은 비로소 완성된다. 꽃이 지면 잎이 무성해지고, 그 잎들이 다시 낙엽이 되어 지상의 거름이 되는. 삶이란 그저 덧셈과 뺄셈만 알면 되는 것을. 사람들은 곱셈과 나눗셈, 인수분해와 미적분까지 동원하면서 복잡하게 살아간다. 산다는 건 하염없이 걷는 일. 다리가 아프고, 발가락이 짓물러도 그 마지막 정점을 향해 뚜벅뚜벅 걷는 일. 이런 날이면 제주도 올레길이 아니어도 좋다. 그냥 하염없이 걷고 싶다. 북한산 기슭이거나. 남산타워 아랫길이면 어떠랴. 그저 겸허하게 한 걸음씩 내딛고 싶은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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