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망할 놈의 TV

응팔의 ‘19금’ 버전은?

 

 

 

응팔의 ‘19금’ 버전은?

 

 

  <응답하라 1988>의 한장면.tvN 제공. 


 tvN의 <응답하라 1988>을 보면서 엉뚱하게도 ‘응팔 19금 버전’ 시절의 이야기가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드라마 속에서처럼 도봉구 쌍문동의 골목길에서 살아가던 서민들의 이야기도 있지만 우리들의 1988년은 좀더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 다른 시각은 하필 ‘19금’에 해당하는 이야기라서 TV드라마에서는 소화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1988년을 이야기하면서 ‘19금 스토리’를 빼놓으면 앙꼬없는 찐빵 같기에 ‘앙꼬 이야기’를 해야겠다.

 다 알다시피 총과 칼로 탄생한 정권은 1980년을 시작으로 전두환과 노태우 대통령으로 이어졌다. 결과적으로 우리들의 10년을 책임지게된 이들이 맨처음 들고나온 것이 3S정책(섹스와 스크린, 스포츠)이었다. 그 정책의 구체적인 실천을 위해 칼라TV를 도입하고, 국풍81을 개최했다. 통금을 해제하고 교복자율화를 단행했으며, 해외여행을 자유화했다. 프로야구의 도입과 86 아시안게임에 이은 88올림픽 개최 역시 같은 맥락에서 추진됐다.

 대학생들의 탈춤경연과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팔도 풍물장터, 디스코 경연대회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여의도를 놀이판으로 만들었던 국풍 81의 최대수혜자는 ‘바람이려오’의 이용이라는 건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대학생 노래경연대회의 대상은 서울대의 그룹사운드 갤럭시였으나 그들을 대신하여 입상자 중 한 명인 이용이 스타덤에 올랐다. 학생시위의 발원지인 서울대생들이 참가했다는 이유로 실력에 상관없이 대상을 안겨줬지만 그들이 방송에 출연하기에는 대학가 안팎에서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던 탓이다.

 또하나의 수혜자는 <응팔>에도 나오는 VTR이었다. 비디오테이프를 재생할 수 있는 VTR은 아이러니 하게도 미국과 유럽에서 흘러들어온 섹스테이프의 뒷거래를 타고 인기를 얻으면서 전 국민의 필수품이 됐다. 삼성이나 LG가 가전제품으로 지금의 대기업 기반을 만든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영화가에서 <애마부인> 열풍이 분 것도 3S정책의 산물이다. <애마부인> 이후 도색영화에 가까운 포르노물들이 극장에 내걸렸다. 여기에 86년 아시안게임과 88년 올림픽은 3S정책에 화룡점정의 기회를 제공했다.

 지나고 보면 80년대의 밤은 이 나라 놀기좋아하는 사내들에게 천국이었다. 지긋지긋하게 시민의 삶을 옭죄었던 통행금지가 해제되고 넘쳐나는 섹스산업을 수수방관한 정부의 정책이 있었기에 그당시 20대부터 40대 이르는 사내들은 정부의 의도대로 섹스산업의 노예가 돼갔다.

 신촌의 여관은 불법비디오 섹스테이프를 틀어주는 작은 영화관이었고, 풍류를 즐기던 다방들도 커튼을 쳐놓고 프로노물을 상영했다. 서울의 신사동, 구의동, 천호동, 장안동, 이태원 등 유흥가에는 우후죽순으로 생긴 성인디스코, 회관, 나이트클럽, 스탠드바 등에서 호객행위에 나섰다. 또 가는 곳마다 퇴폐이발소들이 삼색등을 깜박이며 사내들을 유혹했다. 그 사이사이 안마시술소의 간판이 야릇한 표정으로 취객들에게 손짓했다. 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야말로 지상 최대의 목표였던 정권에게 실물경기가 흥청망청해야 했기에 나서서 장려는 못했지만 방치는 가능했던 것이다.

 그당시 각종 밤무대 최고의 하이라이트는 쇼였다. 단순히 가수들이 나와서 노래를 부르는 쇼가 아니라 여체를 활용하여 사내들의 성욕을 자극하는 라이브쇼가 주류를 이뤘다.

유리로 된 팔각형의 샤워부스를 무대 한 가운데 마련해 놓고 나이트가운 차림의 댄서가 들어가서 흐느적거린다. 곧이어 또한명의 댄서가 샤워부스 속으로 들어가고 서서히 천정에 설치된 샤워기에서 물이 쏟아진다. 두 여성댄서는 요즘 걸그룹 뺨치는 몸짓으로 술취한 사내들의 관음증을 만족시켜 준다. 여기저기서 박수가 쏟아지고 샤워 부스를 나온 댄서는 전나의 몸으로 취객들의 자리를 돌면서 술 한잔씩 따른 뒤 두둑한 팁을 챙긴다.

 샤워쇼는 기본이었다. 호객을 위해 각종 쇼가 개발됐다. 뱀을 칭칭감고 나오는 뱀쇼부터 작은 새끼악어가 동원되는 악어쇼, 람보 복장을 한 여성댄서가 총을 들고 나와 군복을 하나씩 벗어던지는 람보쇼, 불을 내뿜는 불쇼에 이르기까지 참 쇼도 다양했다. 그것도 모자라 어우동쇼, 반금련쇼, 황진이쇼, 사치코쇼, 레즈비언쇼 등 쇼가 넘쳐났던 시절이었다. 기회가 되면 지금은 중년의 나이를 지났을 밤무대 쇼기획자(?)들과 댄서들을 만나보고 싶을 정도로 기발하면서도 화끈한 쇼가 많았다. 아마 '응팔'의 성동일도 쌍문동 어디에 있었던 스탠드바에서 맥주 한 잔 걸치면서 댄서의 현란한 몸놀림에 침을 흘리기도 했을 것이다.  

 소위 <88나이트>로 상징되는 밤문화는 올림픽이 끝난 뒤 서서히 그 인기를 잃어갔다. 퇴폐를 눈감았던 정부가 다시 단속에 나서면서 업주들을 구속하는 등 강경책을 썼던 것이다.  

 이처럼 권력의 속성은 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알게모르게 국민들의 삶을 지배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 역시 3S정책의 속내를 뻔히 알면서도 그 한가운데서 허우적대던 시절이 있었다. 오늘, 저녁이 있는 삶을  꿈꾸는 우리를 지배하는 건 또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