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가 사라진 드라마들
사진 제공 MBC
한때 드라마 한 편 때문에 장안의 차량통행이 줄던 시절이 있었다. <모래시계>나 <사랑이 뭐길래> 등등 드라마가 한창 히트할 때는 무려 60%를 넘나드는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올 한 해 방송가 드라마를 일별해보니 그런 드라마를 능가하거나 비슷하게 열풍을 일으킨 드라마가 한 편도 없다. 지상파는 전멸이고 그나마 케이블에서 <응답하라 1988> 정도의 히트작이 나왔다. 시청률 40%를 넘나들던 욕하면서 보는 막장 드라마도 작가 임성한의 은퇴선언(?)으로 시들해졌다.
그 이유를 여러 갈래로 분석할 수 있겠다. 우선 컨텐츠의 다양화에 있다. 모바일로 상징되는 컨텐츠 시장이 TV를 대중들로부터 밀어내고 있다. 또 영화도 예전보다 훨씬 쉽고 간편하게 볼 수 있을 정도로 동네마다 멀티플렉스 극장이 많아졌다. 또다른 이유 중의 하나는 지상파 편성을 담당하는 선수들의 실력(?)이다. 그때그때 시대의 트렌드를 읽고 적절한 드라마를 선별하는 것이야말로 편성담당자들의 선구안일 터인데 그 선구안이 케이블의 그것만도 못하다.
영화계가 시대의 흐름을 읽어내서 <암살>, <베테랑>, <내부자들>을 잇따라 히트시키면 천만영화를 양산하는 배경에는 제작자들의 선구안이 크게 작용했다. 그러나 지상파가 주도하는 드라마 시장은 이런저런 제약에 묶여서인지 좋은 드라마를 찾기 힘들다. 하긴 외주제작사들의 치열한 경쟁장으로 변한 지상파의 편성전쟁은 콘텐츠 중심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어떤 인기작가가 쓰고, 어떤 톱스타를 캐스팅했는지가 편성의 제일 요건이다. 스토리나 완성도는 그 다음이다. 게다가 수지타산을 맞추려는 외주사들은 무분별하게 PPL을 남발한다. 이쯤되니 좋은 드라마를 만나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최근 한 중견작가가 쓰는 외주드라마가 지상파 방송사와 편성 직전까지 갔다가 톱스타들을 거느리고 있는 대형제작사의 작품에 내몰렸다는 얘기를 들었다. 작품이 완성도보다는 톱스타 캐스팅이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방송사의 ‘갑질’에 당한 것이다.
오히려 케이블 tVN의 <응답하라 1988>이 두드러지는 스타도 없이 성공한 것이 무척 신선해 보인다. 지상파들은 어느 방송사 할 것 없이 현실을 반영한 소재에 둔감해졌다. <송곳>과 같은 드라마가 지상파에서 방영됐다면 그 반향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요즈음의 지상파 드라마에서 시의적절하고 몰입할만한 스토리를 가진 드라마는 멸종됐다. 지나친 자기검열의 결과가 아닐 수 없다.
그 결과로 코미디인지 드라마인지 모르는 드라마들이 판을 친다. 한 편에서는 여전히 불륜, 복수, 출생비밀, 재벌암투 등이 판치는 드라마가 방영 중이다. 일부 사극들은 마치 씹던 껌을 다시 씹는 기분을 들게 한다. 정통사극은 사라지고 드라마 단골인 태조 이성계와 같은 인물이 배역만 바뀌어 재등장한다. 그 결과로 지상파들은 하루하루 살기가 힘든 우리 사회에서 그나마 집으로 돌아가 드라마를 보는 재미를 박탈하고 있다.
이도저도 재미없어서 드라마를 밀어낸 요즘 그래도 놓치지 않고 본방사수하는 드라마가 한 편 있기는 하다. MBC주말극 <내 딸 금사월>이다. 김순옥 작가가 전작인 <왔다 장보리>의 시놉을 가져다놓고 재탕드라마를 만든 느낌의 이 드라마는 출생비밀, 불륜, 복수, 신데렐라 주인공 등이 골고루 등장한다. 그런데 마치 드라마의 내용은 마치 한 편의 시트콤처럼 어이가 없다. 유재석이 까메오로 등장하여 코믹 연기를 펼쳐도 드라마의 흐름에 전혀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다. 극중 손창민은 자신의 부인인 전인화가 1인2역으로 등장하는데도 전혀 알아보지 못한다. 매일 얼굴을 맞대고 한 이불을 덮고 자면서 구박을 일삼던 부인이 변장만 하고 나오면 그 앞에서 굽신거린다. 사고로 정신이상자가 됐던 여주인공은 다시 사고가 나서 제정신으로 돌아온다. 드라마를 보다보면 모든 등장인물들의 아이큐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어이가 없는 상황들이 이어진다. 출연하는 연기자들도 드라마 촬영을 하면서 ‘썩소’를 날릴 드라마가 아닐 수 없지만 어디까지 가는지 궁금해서 자꾸 보게된다. 그 덕분에 이 드라마는 시청률 30%를 넘기면서 인기를 얻고 있다.
내년에는 과연 드라마를 보기위해 귀가를 서두르게 하는 명작이 탄생할 수 있을까? 본방을 사수하라는 하소연이 아니더라도 새로 장만한 와이드 TV 앞에 앉게 만드는 드라마가 보고 싶다. 할머니의 구수한 옛날 이야기가 사라진 요즘 흥미진진한 스토리와 연기자들의 굵직한 연기가 어우러진 드라마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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