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과 김은숙, 이순재와 송중기 사이
송중기, 사진 KBS
김수현과 김은숙을 같은 반열에 올려놓고 이야기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김수현 작가가 인기 드라마 작가로 군림하기 시작한 1960년대는 1973년생인 김은숙 작가가 태어나기도 전이다. 그런가 하면 이순재 선생과 송중기를 같은 반열에 올려 놓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이제 갓 서른살이 된 송중기에게 80세의 이순재 선생은 거의 할아버지 뻘이다.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는 KBS 드라마 <태양의 후예>를 얘기하려고 보니 큰 대조를 이루고 있는 SBS 주말극 <그래, 그런거야>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김은숙과 송중기의 드라마 <태양의 후예>, 김수현과 이순재의 드라마 <그래, 그런거야>는 정통과 모던의 충돌, 구세대와 신세대의 극단적 대비, 영화적 기법의 드라마와 전통적인 안방극장용 드라마의 전형들이어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롭다. 이 두 드라마는 작가와 배우의 무게감과는 달리 무려 20% 가까운 시청률 차이를 보이고 있다. <태양의 후예>는 30%를 넘어서 35%를 내다보고 있고, <그래 그런거야>는 이제 막 10%의 시청률을 넘어섰다. 작가와 배우의 무게감이 시청률과 결코 비례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다.
사족부터 달고 시작해야겠다. 최근 방송 관계자와 영화 관계자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태양의 후예>가 처음 기획되어 처음 문을 두드린 건 김은숙 작가의 출세작인 <파리의 연인>과 <시크릿가든>으로 재미를 본 SBS였다. 그러나 SBS는 총 제작비 160억원의 대작인 데다가 처음 시놉시스가 현재 방영되는 내용과 달리 민감한 군문제를 다루고 있어 부담스러웠다. 결국 고민 끝에 <태양의 후예> 카드를 버렸다. 이 때문에 요즘 SBS 간부들은 경영진들로부터 <태양의 후예>를 놓친 데 대한 추궁을 당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결국 <태양의 후예> 제작사는 다시 MBC로 발길을 돌렸다. 그러나 MBC로서도 만만치 않은 제작비 등을 이유로 결국 포기했다.
그사이 반전이 생겼다. 영화 <변호인들>로 천만영화 신화를 만든 영화사 뉴가 이 드라마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고 노무현 대통령을 연상케 하는 인권변호사를 전면에 내세워 대박영화를 만든 영화사 뉴는 정권으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었다. 영화사 뉴가 잡은 건 투자를 받지 못하고 굴러 다니던 영화 <연평해전>이었다. 어떻게 하든 정권의 입맛에 맞는 영화를 해서 <변호인들>로 인해 생긴 곱지않은 시선(?)을 피해야 했다. 어쨌든 <연평해전>은 보수우파정권의 전폭적인 지지와 조선일보 등의 아낌없는 기사 후원(?)에 힘입어 크게 성공한 영화가 됐다.
그런 영화사가 <태양의 후예>를 집어든 뒤 당연히 정치색을 지우고 멜로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시작부터 중국이 투자한 영화이기에 중국당국의 검열에 걸릴만한 민감한 내용은 처음부터 지워나가야 했다. 그러다보니 송중기의, 중중기에 의한, 중중기를 위한 드라마가 됐다. 첫 시놉이 어땠는지 보지 않아서 짐작하기 힘들지만 처음 김은숙 작가의 의도와는 사뭇 다른 드라마가 된 것은 사실인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은숙 작가가 전작에서 보여준 오글거림은 이 드라마에서도 여전하다. <파리의 연인>에서 박신양이 말끝마다 “애기야. 가자”를 외쳤을 때 얼마나 오글거렸나. 독신남녀들의 사랑얘기를 다룬 <신사의 품격>도 현실과는 동떨어진 로맨틱 판타지였다. 영화사 뉴는 이 드라마 한 편으로 <변호인들>로 인해 지고있던 멍에(?)를 벋어던졌다. 또 드라마에 영화적인 기법이 많이 배어들어가는 바람에 충분한 볼거리를 만들어 내면서 드라마가 다이내믹해진 것도 사실이다.
이순재. 사진 tvN
각설하고 김은숙에 비해 <그래, 그런거야>의 김수현은 리얼리티 드라마의 표준이다. 또 20명 가까운 대가족이 모두 다 주인공인 드라마이다 보니 원로와 중견, 신인에 이르기까지 투입된 배우들의 면면도 엄청나다. 이순재와 강부자를 비롯하여 김해숙, 송승환, 홍요섭, 노주현, 정재순 등 중견들. 게다가 남규리와 왕지혜, 서지혜, 신소율, 윤소이 등 젊은 배우들과 임예진과 양희경, 김정난 등의 감초들까지 풍성한 한정식집 메뉴 같다.
드라마 속에서 다루는 사회문제도 거의 종합 일간지를 방불케 한다. 구직포기자를 내세워 N포세대의 비극을 이야기하고, 데릴사위, 맞벌이 문제를 통해 가족의 의미를 되새겨보는가 하면 딩크족을 통해 신세대들의 사랑법도 파헤친다. 여기에 저출산, 중년 재혼 문제, 노인 문제에 이르기까지 안 건드리는 부분이 없다. 또 김수현 특유의 재치 넘치는 대사는 물론 구구절절이 공감을 자아내는 속사포 대사까지 ‘역시 김수현’이라는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에 대해 누군가가 ‘식상한 가족드라마’라고 얘기한다면 그리 틀린 말이 아니다. 20년전 시청률 50%를 넘나들면서 안방에서 히트한 김수현 드라마와 크게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김수현의 유머는 예전보다 조금 더 깊어졌으며 잔잔한 감동도 예전 드라마들에 비해 농도가 짙어진 건 사실이다. 또 틈만나면 ‘모자란 사내들’을 등장시켜서 은근히 면박을 주던 김수현식 까칠함도 사라졌다.
원로배우 반열에 오른 이순재는 또 어떤가. 예나 지금이나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연기로 보는 사람들을 감탄케 한다. 후배 연기자들에게 “연기는 이렇게 하는 거야”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러나 우리가 안방에서 익숙하게 봐왔던 이순재와 다른 점을 찾아보라면 선뜻 찾기가 어렵다.
<태양의 후예>로 돌아와 보자. 극중 송중기의 연기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건 어쩌면 돌 맞을지 모르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 경직돼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군제대 후 오랜만에 돌아와 연기를 하려니 긴장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힘을 줄 때와 뺄 때를 구분하지 못한 연기가 잘생긴 얼굴과 캐릭터로 볼 때 옥의 티다. 거기에 상대 배역이 받쳐줘야 하는데 송혜교의 연기가 송중기를 받쳐주기엔 아직 미흡한 게 사실이다. 물론 회를 거듭하면서 조금씩 나아지긴 하지만 말이다.
드라마가 지나친 애국주의를 부추기고 군생활과 동떨어진 로맨스를 그리고 있다는 점이야 드라마니까 이해를 하고 넘어가자. 그라나 드라마를 보다보면 개연성 없는 전개와 실소를 금치 못하는 장면들이 자주 눈에 띈다. 슈퍼군인 송중기를 위해서 멀쩡한 도로에서 사고 내는 송혜교를 만들기도 하고, 낭떠러지에서 차와 함께 추락하고도 멀쩡하게 송혜교를 구해서 살아나온다. 극중 청춘남녀들이 하는 대사들을 듣다보면 순정만화에 나오는 대사와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어쩌랴. 세상 일은 대세를 거스를 수 없다. 이미 순풍에 올라탄 돛단배를 멈추게 하는 방법도 없고, 그럴 이유도 없다. 이 드라마가 국민 소득을 높이는 데 기여하는 킬러콘텐츠가 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것이다.
그러나 드라마를 만드는 이들의 입장에서 헷갈릴 수도 있겠다. 앞으로 어떤 드라마를 만들어야 할 것인가. 그 해답이 자꾸만 모호해 질 수밖에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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