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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도 빵도 안되는 시

오광수의 오솔길 1 기계




기계
                  -공광규



허겁지겁 출근하는 나를

앞집 개가 짖지도 않고

물끄러미 쳐다본다


“저 인간……

망가져서 달그락거리는……

감가상각이 끝나가는……

겨우 굴러가는 기계 아냐?”


개는 이렇게 생각을

더듬거리고 있나 보다


개도 거들떠보지 않는 나는

이 밀림의 누구인가

생산성과 헐떡이며

성교를 벌이고 있는 나는.


-공광규시집 ‘소주병’(실천문학)



불혹이 넘은 시인의 시집에서 지친 어깨가 보였다. 그는 ‘조심스럽고 깨끗한 연애를 꿈꾸다가도/끝내는 튼튼한 가정을 위해 건배’(흘러가는 실내 포장마차)하고, ‘신혼의 첫 다짐처럼 하얗던 벽지도/때가 탈대로 타고/방구석에 무관심이 거미줄을 친’(휴일, 권태) 집에서 산다. ‘나는 그게 안 되고/아내는 그것도 못하냐며 핀잔을 주고/나는 더 쪼그라들고/아내는 이내 돌아눕는다.’

한 일본 작가가 말했다. 불혹이 넘으면 어떻게 굴욕을 참고 견디느냐가 중요하다고. 한 평생 남부럽지 않은 이력을 자랑하던 사회유명인사들이 잇달아 자살을 택하는 안타까운 일이 계속되고 있다. 또 어떤 이들은 생활고를 견디지 못한 채 가족들과 함께 죽음을 택하는 경우도 자주 있다. 심장이 뛰고 있다는게 얼마나 고맙고 고마운 일인데….

월요일이다. 허겁지겁 출근하는 길, 앞집 개가 짖지도 않고 쳐다보면 어떤가. 오늘, 저 오월의 신록이 눈부시지 않은가.

〈오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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