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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도 빵도 안되는 시

선창술집

 

 

 

충남 서천 마량포구. 경향신문 사진부 

 

 

 

선창 술집


김명수


앵미리 굽는 연기가 술집 안에 자욱하다

오징엇배를 탔던 사내 장화를 신은 채

목로에 들어와 소주를 마신다

주모는 술손님과 너나들이로 스스럼이 없다

남편도 옛날에 오징엇배를 탔다 한다

사내들이 주모에게 소주잔을 건네고

주모가 서슴없이 술잔을 받는다

진눈깨비 몰아치고 날씨가 사납다

술청 안에 욕설이 뒤섞이고

멱살잡이가 벌어진다

자정이 넘어서야 술집 불이 꺼지고

비틀대며 사내들이 선술집을 나선다

동이 트자 환한 해가 술청으로 쏟아진다

어느새 주모가 선창으로 나선다

안줏감을 흥정하는 그녀의 얼굴에

싱싱한 아침해가 환하게 빛난다


  -계간 `사람의 문학' 여름호


브레히트의 희곡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이나 막심 고리키의 소설 `어머니'를 읽다보면

이땅의 어머니들이 자연스레 겹쳐진다. 강원도 산비탈에서 밭을 일구고, 충청도 천수답에서 모내기를 하고, 노량진 산동네서 두부장수로 나섰던 억척어멈들. 여자이기에 앞서 부끄럽지 않은 어머니이길 원했던 그네들의 희생은 눈물겹다.      

선창가 목로주점 주모 또한 억척어멈이었을게다. 순식간에 횟감을 뜨고 솜씨좋게 매운탕 끓여내는 주모 앞에서 험한 뱃사람들조차 꼼짝하지 못했으리라. 멱살잡이 하던 사내들에게 눈 한 번 부릅뜨면 슬슬 꼬리 감추며 자리 털고 일어났으리라. 너무 예쁜 엄마들이 넘쳐나는 오늘, 문득 억척어멈이 그리워지는건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  오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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