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논쟁 끝에 2012년 1월 방송 3사가 공동기획하고, 종합일간지들이 후원하는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나는 대통령이다’가 시작됐다. 1월 방송을 시작해서 12월에 끝나는 연간 기획 프로그램. 시작은 단순했다. ‘가수, 아나운서, 탤런트도 오디션으로 뽑는데 대통령도 안될 게 없지 않으냐. 지난 시대 대통령선거로 인한 각종 병폐를 청산하고, 디지털 미디어시대에 걸맞은 대통령을 뽑아보자’는 취지였다. 여야 할 것 없이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 이 같은 선거방식에 이의를 제기했다. 대통령선거가 애들 장난이냐, 나라를 망치려고 작정을 했느냐, 임재범이나 이효리가 당선되면 어쩌려고 그러느냐 등등.
그러나 국민들은 현명했다. 그릇된 판단으로 이상한 대통령을 뽑고 후회했던 국민들이 가장 민주적이고, 오류가 적은 방식이 될 거라면서 찬성하고 나섰다. 총연출 프로듀서로는 ‘나는 가수다’의 산파역이었던 MBC 김영희 PD가 맡았다. 참가자격은 대통령 피선거권이 있는 대한민국 국민들로 병역기피자, 전과자, 세금체납자, 성범죄자, 환경파괴자 등은 제외됐다.
논의 끝에 지역예선을 거쳐 최종후보 30명을 선발해 하반기부터 결선을 진행하기로 했다. 매주 한 명씩 탈락하고 연말 결선에서는 단 두 명의 후보가 대결을 펼치는 구도였다. 지역예선을 포함해 결선에는 매번 각계를 대표하는 20명의 패널, 2000명의 청중투표단이 참여키로 했다. 패널들이 질문을 하고 각계각층을 망라한 청중투표단의 투표를 통해 탈락자를 결정하는 방식이었다. 물론 패널과 청중투표단은 연령별, 성별, 직업별 분포도를 고려해 매주 컴퓨터 추첨을 거쳐 구성했다. 10명이 남는 결선부터는 선거권이 있는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자동응답전화(ARS)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1인1표를 행사할 수 있도록 했다.
사실 대통령 선거관리위원회 측은 너무나 많은 지원자가 몰리지 않을까 우려했다. 그러나 100만명 이상의 지원자가 몰린 <슈퍼스타 K>에 비한다면 대통령 오디션 프로그램의 응모자는 초라했다. 고작 1만명 정도가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섰다. 대통령이 되는 순간부터 욕을 들어먹고, 퇴임 후에는 대부분 감옥에 가거나 스스로 목숨을 버려야 하는 운명을 짊어지겠다는 국민이 많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미 한 번쯤 대선주자로 거론됐던 정치인은 물론 청년백수, 노처녀 대표, 90대 촌로, 영화배우, 미스코리아, 퇴직군인과 택시기사, 노조 대표 등 실로 다양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또 ‘공중부양춤’으로 인기를 얻었던 허경영씨도 이번이야말로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면서 출사표를 냈다.
대통령을 서바이벌 오디션으로 뽑는다고 하자 전 세계 언론들도 비상한 관심을 기울였다. 초반 10%대의 시청률로 출발한 이 프로그램은 경쟁구도가 본격화되면서 50%가 넘는 경이적인 시청률을 기록했다. 매주 생방송이 진행되는 서울 여의도의 방송사 스튜디오에는 CNN, 뉴욕타임스 등 세계 유수 언론사 특파원들이 진을 쳤다. 심지어 북한 조선중앙방송도 매주 경선 결과를 긴급뉴스로 타전했다.
생방송으로 진행하다 보니 웃지 못할 촌극도 많았다. 한 후보는 20대 때 벌였던 사기행각이 드러나 탈락했고, 또 다른 후보는 남몰래 저지른 불륜이 들통나 분루를 삼켰다. 탁월한 미모로 지역예선을 통과한 20대 여성후보와 전 국민의 해외여행을 공약으로 내건 여행사 대표가 화제를 모았으나 중도탈락했다. 기승을 부리던 서바이벌 프로그램들도 ‘나는 대통령이다’의 기세에 눌려 하나둘 폐지됐다.
생방송으로 진행하다 보니 웃지 못할 촌극도 많았다. 한 후보는 20대 때 벌였던 사기행각이 드러나 탈락했고, 또 다른 후보는 남몰래 저지른 불륜이 들통나 분루를 삼켰다. 탁월한 미모로 지역예선을 통과한 20대 여성후보와 전 국민의 해외여행을 공약으로 내건 여행사 대표가 화제를 모았으나 중도탈락했다. 기승을 부리던 서바이벌 프로그램들도 ‘나는 대통령이다’의 기세에 눌려 하나둘 폐지됐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장면은 최종 10명의 후보가 벌이는 결선에 오른 유력후보의 탈락이었다. 이미 수년 전부터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 거론돼왔던 이 후보는 가족의 비리가 생방송에서 폭로돼 눈물을 삼켰다. 이 때문에 그 후보의 밑에 줄을 서서 다음 정권에서 한 자리를 꿈꾸던 참모와 국회의원, 기업인과 지지자들이 방송사 앞에서 항의시위를 벌였다. 불공정한 선거방식을 당장 때려치우고 예전처럼 직선제 선거를 하자는 거였다. 그러나 국민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대통령을 오디션으로 뽑는 것이야말로 가장 공정하고 믿을 만한 방식임을 눈으로 확인한 것이다. 대선 때마다 망국병으로 거론되던 지역색과 흑색선전, 선거비리도 찾아볼 수 없었다.
최종결선이 있던 날, 마지막 당선자가 호명되자 국민들은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비로소 사심없이 국민들을 위해 일할 수 있는 믿을 만한 대통령을 뽑았다는 안도감 때문이었다. 놀랍게도 오디션 프로그램의 광고수입은 방송사 수익분을 제외하고도 수천억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이 수익은 국민들의 합의로 새 대통령이 ‘반값 등록금’을 해결하는 데 쓰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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