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1, 비정상적인 실용음악과 경쟁률
스타가 된다는 것, 밤하늘의 축포만은 아니다. 사진 경향신문 사진부
지난 주말 <K팝스타>를 보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수많은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각 방송사마다 시즌을 거듭하면서 끊이지 않는데 어디서 저렇게 노래 잘하는 인재들이 끊임없이 나오는지? 그리고 각 방송사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입상하여 가수들의 반열에 오른 친구들은 지금 다 뭘 하는지? 지구가 생겨난 이래로 우리나라처럼 가수지망생이 많은 나라가 또 있을까? 하긴 한 집 건너 하나씩 전국에 노래방이 있는 나라도 우리나라 밖에 없다. 게다가 대통령부터 장관, 국회의원에 이르기까지 미래의 먹거리가 문화콘텐츠이고, K팝이야말로 먹거리가 떨어져가는 우리나라를 먹여 살릴 새로운 먹거리가 될 거라고 얘기하고 있다. 이쯤 되니 미래산업에 인재들이 모이는 건 당연한 게 아닐까? 하지만 과연 그럴까?
궁금해서 찾아봤다. 불과 몇 년 사이 각 대학이 경쟁적으로 신설한 학과가 있다. 바로 실용음악과다. 과거에 클래식을 기조로 하는 음대가 있어서 작곡과, 피아노과, 성악과, 기악과 등이 주를 이뤘지만 이젠 전통적인 음대보다 실용음악과가 압도적으로 많아졌다. 올해 각 대학의 실용음악과 수시 입시경쟁률을 보니 300:1, 400:1 정도는 기본이었다. 낙타가 바늘구멍 뚫고 들어가기보다 더 어렵다. 물론 우리 사회가 날이갈수록 경쟁률이 치열해지고 있으니 꼭 실용음악과만 경쟁이 유난하다고 볼 수만은 없다. 유명대학의 연극영화과 역시 서울법대 들어가는 것만큼이나 어려운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과연 실용음악과에 간다고 조용필이나 이문세, 빅뱅이나 동방신기 같은 가수가 될 수 있을까?
4년제 대학, 2년제 대학, 전문학원 등 실용음악을 가르치는 교육기관만 줄잡아 500여곳 안팎쯤 돼 보인다. 적게는 수십대일, 많게는 수백대일의 경쟁률을 뚫고 들어온 학생수만 해도 줄잡아 한 해 만여명이 훌쩍 넘을 것이다. 그들은 짧게는 1년부터 길게는 4년동안 가수가 되기 위해, 연주자가 되기 위해, 작곡가가 되기 위해, 엔지니어가 되기 위해 절치부심할 것이다. 요즘 음악동네 사람들을 만나다보면 가수나 작곡가 직함 외에 실용음악과 겸임교수, 초빙교수 등 새로운 간판을 단 사람들도 자주 만난다.
문제는 공급에 비해 수요는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K팝 열풍이 만들어놓은 음악시장에는 생전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보이그룹과 걸그룹, 수많은 신인가수들이 경쟁하고 있다. 기획사들의 수도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졌다. 소위 프로무대에 데뷔한 친구들 중에도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당당하게 한 사람의 가수나 연예인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극소수다. 또 문화콘텐츠로 넉넉히 밥벌이를 하면서 살아가는 회사도 손으로 꼽을 정도다.
한때 가요담당 기자로 활약한 이력 때문에 주변에서 “우리 애가 연예인이 되려 하는데 방법이 없겠냐?”는 질문을 아주 많이 받는다. 그런데 대개의 경우 자녀가 부모들도 말릴 수 없는 ‘연예인병’에 걸린 경우가 대부분이다. 심지어 ‘될성 부른 싹’이 아닌 자식을 연예인으로 만들겠다고 백방으로 뛰는 부모들도 많다. 현명한 방법으로 그 꿈을 빨리 포기하게 만들어주는게 상책이다. 그러나 지상파는 물론 종편이나 케이블, 포털 사이트나 신문, 잡지에 이르기까지 연예인이라는 직업에 대한 찬사가 난무한다. 감수성 예민한 청소년들에게 스타가 된다는 건 그 어떤 일보다 멋진 신세계가 아닐 수 없다. 하긴 장래 희망이 공무원이나 어부, 농부, 음식점 주인일 수는 없지만 모두가 다 스타가 되면 누가 지구를 구할까?
우선 네이버 등 포털 사이트의 기사배열부터 뜯어고야 한다. 원래 전통적인 분류법으로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연예, 스포츠, 레저, 생활 순이어야 한다. 아직도 종합일간지들은 이러한 분류법에 충실-하긴 그래서 전통 미디어가 갈수록 대중들로부터 외면받고 있을 지도 모른다-하고 있다. 문제는 모든 뉴스를 검색을 통해 소화하고 있는 요즘-특히 청소년들-에는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연예인이나 스포츠인 기사다. 매일매일 검색에 상위를 차지하는건 가수나 배우들이다. 모든 포털 사이트들이 연예기사와 스포츠 기사가 검색에 용이하도록 배치하고 있다. 또 연예기사와 스포츠 기사가 다른 기사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누가 얼마를 벌고 또 누가 벼락스타가 됐는지 실시간으로 중계방송 된다. 하여 팬들은 부모님 생일은 안챙겨도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들의 생일은 꼬박꼬박 챙긴다. 심지어 버스나 지하철에 광고까지 내건다.
연예인을 인터뷰하고 기사를 써왔던 기자로서 이율배반적인 주장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부터라도 이나라 스타지망생들의 공급을 줄여야 한다. 그 방법은 자라나는 아이들한테 꿈을 포기하라고 강요하는 것으로는 안된다. 그들에게 스타보다 훨씬 좋은 직업이 세상에 얼마든지 많다고 가르치는 것이다.
정부가 교과서의 국정화에 매달릴 게 아니라 갈수록 실력이 좋아지고 똑똑해지는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 줄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시청률 때문에 방송사가 경쟁적으로 오디션 프로그램을 만들고, 연예기사가 우리네 생존과 직결되는 기사보다 우위에 있는 건 비정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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