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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똑 군, 페북 양

창고에서 잠자는 영화를 만든 까닭은?

창고에서 잠자는 영화를 만든 까닭은?

 

 

 

  영화 <쿵푸팬더>의 포스터

 

내가 아는 후배 영화감독은 2년 전 아주 어렵게 영화 한 편을 찍었다. 그동안 총 4편의 영화를 세상에 내놓은 바 있으니 영화감독의 이력으로는 크게 모자랄 게 없는 중견감독이다. 총 제작비 8천만원. 그것도 악전고투하여 모은 돈으로 제작한 영화다. 그런데 그의 영화는 영화제에 잠깐 선보인 것 외에는 세상 사람들과 대면할 기회가 없었다.

물론 그의 영화가 수백억의 자본이 투입되어 빵빵한 스타가 나오는 그런 영화는 절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의 영화를 좋아한다. 우선 메이저시장에서 유통되는 영화들과는 분명히 다른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여전히 실험적이다. 또 세상을 바라보는 삐딱한 시선도 마음에 든다. 그의 영화가 창고에서 썩어야 하는 이유가 전혀 없어 보지지만 현실은 결코 녹록치 않다. 경향신문 212일자 기사를 보자.

 

 

< 설 연휴 기간 CGV 영화관 일부가 아이맥스로 <쿵푸팬더3>를 예매한 고객들에게 전화를 걸어 예매를 취소케 한 것으로 확인됐다.

영화관 측은 극장 사정으로 인해 <쿵푸팬더3> 상영이 어렵다고 말하며 취소를 요구했으나, 같은 시간 해당 상영관에선 <쿵푸팬더3> 대신 <검사외전>이 상영됐다.

11CGV 등에 따르면 지난 설 연휴 기간에 CGV 서울 상암, 천호, 경기 판교, 대구점 등에서 아이맥스관 상영 예정이었던 <쿵푸팬더3>를 취소하고 대신 같은 상영관에서 <검사외전>을 틀었다.

상영관들은 해당 시간대에 미리 <쿵푸팬더3>를 예매한 고객들에게 전화를 걸어 극장 사정으로 인해 <쿵푸팬더> 상영이 어려워졌으니 예매를 취소해달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씨는 설날 당일인 지난 8CGV 대구지점에 <쿵푸팬더3> 아이맥스 관을 예매했으나 상영 시간 전에 영화관 측으로부터 예매를 취소해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극장 사정으로 인해 상영이 취소됐다는 내용의 전화였다.

씨는 지난 9일 한 영화 관련 사이트에 글을 올려 상영관에 문제가 생겼나 싶어서 취소해줬는데 나중에 보니까 월요일 하루종일 아이맥스관에서 <검사외전>을 틀었더라덕분에 아이맥스 이벤트도 놓치게 되고 <쿵푸팬더3>를 아이맥스관에서 못보게 될 것 같아 짜증이 난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같은날 오후 610CGV 경기 판교에서 아이맥스 <쿵푸팬더3>를 예매했던 씨도 상영 시간 전에 비슷한 내용의 전화를 받았다.

씨는 영화관 측에서 그 시간대 이후 아이맥스관 점검이 있다며 예매 취소를 종용했다하지만 오후6시 이후로 검사외전을 틀더라. 정말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CGV 관계자는 11일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지난해 12월부터 올 1월까지 영화시장이 계속 안좋았다. 극장으로서는 <검사외전>에 관객들이 몰리니까 상대적으로 관객이 적은 <쿵푸팬더3> 상영관을 취소하고 아이맥스에서도 <검사외전>을 걸어 수익을 내려 한 것으로 보인다“(상영관을 바꾼 것은) 본사의 결정이 아닌 각 지점의 결정이다. 고객들에게 사죄드린다고 말했다.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을 보면, 황정민·강동원 주연의 <‘검사외전>은 설 연휴 기간인 6~10일 닷새간 전국1806개 상영관에서 45147회 상영되면서 4764038명이 관람해 매출액 점유율 71.5%를 기록했다. >

 

한 영화가 점유율 70%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내 후배감독이 만든 제작비 8천만원짜리 영화가 극장에 걸린다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 뚫기보다 어렵다. 하긴 이땅에 영화감독들 중에는 데뷔작이 유작이 디는 감독이 수두룩하고, 이름만 영화감독도 수두룩하다. 지난해 가을에 그래도 이름 석자 알만한 영화감독이 3년간 극장에 걸지 못하고 창고에 방치됐던 영화를 개봉한다고 해서 즐거운 마음으로 시사회에 간 적이 있다. 시사회를 보면서 극중 배우들이 스마트폰 대신 폴더폰을 쓰는 등 다소 어색한 장면들과 조우했지만 영화는 감독의 색깔을 분명히 보여줄만한 수작이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시사화 이후 그 영화를 내건 멀티플렉스 영화관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다양성이 실종된 영화계 풍토를 한탄해야 할까. 아니면 블록버스터와 스타만 선호하는 관객들의 취향을 탓해야 할까. 아니다. 이는 천박한 자본논리에 빠져있는 영화계의 현실 때문에 고나객들은 다양한 영화를 감상할 기회조차 빼앗긴 것이다. 그 때문에 그저 멀티플렉스가 골라준 영화를 보면서 똑같은 맛이 팝콘이나 먹어야 한다. 어쩌다가 보고 싶은 영화가 있으면

헤매고 헤매면서 예술상영관을 찾거나 그도저도 안되면 다운로드라도 해서 스마트폰으로 감상해야 한다.

이미 몇몇 영화배우들은 권력이 됐다. 투자자나 제작자, 영화감독은 그들의 앞에서 처분만 기다린다. 그들에게 점지돼야 비로소 신천지가 열린다. 언제까지 이런 악순환을 계속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