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과의 마지막 인터뷰
대구 김광석거리, 고 김광석의 동상. 경향신문 사진부
1995년 8월, 대학로 학전소극장. 불과 200석 남짓의 소극장에 발디딜 틈없이 관객들로 가득찼다. 보조의자에 앉아서라도 공연을 보겠다는 팬들의 성화에 작은 소극장의 계단에도 보조의자가 놓여졌다. 객석의 관객들은 20대와 30대 초반이 주류를 이뤘고, 남성팬보다는 여성팬들이 훨씬 많았다. 그때 김광석은 소극장 1천회 공연이라는 대기록을 앞두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서서히 조명이 밝아지면서 그가 하모니카 전주를 시작했다. 술렁이던 객석은 이내 조용해지고 하모니카 소리보다 더 슬프고, 아름답고, 때로는 힘이 넘치는 김광석의 노래가 이어졌다. 대부분 김광석의 열혈팬이었지만 처음 그의 라이브를 지켜보는 관객들은 숨소리조차 음악으로 만들어내는 김광석의 무대 카리스마에 질려 연신 탄성을 내지른다. 그가 떠난지 스무해. 때로는 턴테이블에 LP를 얹고, 때로는 CD로 그의 음악을 수도 없이 들었지만 라이브무대서 듣던 그의 노래를 결코 잊을 수 없다. 1천회의 대기록이 말해주듯 김광석은 라이브 무대에서 관객들을 휘어잡는 법을 이미 터득하고 있었다. 마치 혁명 전야처럼 조용하고 부드럽게 시작하여 폭풍처럼 몰아치는 그의 노래를 듣다보면 피가 뜨거워지면서 가슴이 뛰곤 했다. 가수도 아니면서 김광석이 아니면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그의 목소리를 질투하기도 했다. 그가 다시부르기 시리즈를 통해 되살려낸 노래들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그가 부르면 곧 역사가 됐다.
벌써 20주년. 20년 전에 기자는 공연을 끝내고 땀범벅이 된 김광석을 학전 소극장의 좁은 대기실에서 만났다. 그것이 그와 가졌던 마지막 인터뷰였다. 그날 김광석은 참 씩씩했다. 1천회 공연이라는 대기록을 눈앞에 두고 스스로 해냈다는 만족감에 들떠 있었다. 그날 인터뷰 내내 했던 이야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전인미답의 2천회 기록에 도전하겠다”는 것이었다. 1천회를 무사히 마친 그였기에 그의 도전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연신 흐르는 땀을 닦아가면서도 음악얘기나 무대얘기를 할 때면 눈을 빛내면서 목소리 톤이 높아졌다. 그런 김광석이었다.
1996년 1월. 그의 부음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믿을 수가 없었다. 그것도 사고사나 병사가 아닌 자살이라니. 그와 친분이 있던 가수나 매니저, 혹은 음악동네 사람들은 그의 장례식장에 와서 절대 자살할 리가 없다면서 울부짖었다. 김광석은 죽기 전날 저녁 친구 박학기와 술을 마셨다. 김광석이 한 잔 더하자고 했지만 박학기가 다른 약속이 있어 아쉽게 헤어졌다. 그가 마포구 서교동에 있던 집에 귀가한 시간은 자정이 넘은 0시 30분. 그는 부인 서모씨와 맥주 4병을 나눠마셨다. 그리고 부인이 안방에 들어가 비디오를 보는 사이 전깃줄로 목을 맨 것이다. 그당시 김광석은 대학로 라이브극장에서 20여일에 걸친 콘서트를 앞두고 있었다. 여러 가지 정황상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 이유를 전혀 찾을 수 없었기에 주변 사람들이 더 안타까워 했다. 어쨌든 경찰은 자살로 최종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20년이 세월이 ‘연꽃 스치고 가는 바람’ 같이 빠르게 흘러갔다. 해를 더할수록 김광석이 더 뚜렷하게 우리 시대의 선굵은 벽화로 각인되는 것을 보면 하늘나라의 그가 결코 외롭지 않을 것이다.
생각해보니 1996년은 가요담당 기자로서 정신 없는 1월을 보냈다. 벽두부터 가수 서지원이 자살했으며 이어 김광석이 자살소긱이 이어졌고, 숨도 돌리기도 전에 서태지가 은퇴선언을 했다. 그 때문에 그들의 죽음이나 은퇴를 둘러싼 제보들과 정황들을 확인하느라 정신없이 전화기를 돌렸던 기억이 새롭다. 하루는 장례식장으로 하루는 은퇴 기자회견 장으로 뛰어 다녔다.
그러나 이미 그 많은 이야기들이 벽화 속으로 걸어들어가 신화가 돼가고 있다. 김광석의 노래처럼 점점 더 멀어져 가고있지 않은가. 그래도 그의 노래는 더욱 선명해지고 있는 것을 보면 김광석은 축복받은 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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