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자, 미조, 인희. 그녀들의 귀환
가수 박인희. 경향신문 사진부
그녀들이 속속 귀환하고 있다. 미당 서정주의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 같은 꽃’이라는 시구처럼 그녀들이 거울 앞, 아니 무대 앞으로 귀환했다.
김추자와 정미조, 박인희. 사실 대중들로부터 한동안 잊혀졌던 그들이었다. 젊은날 각기 다른 색깔로 노래하면서 인기를 얻었던 이들 여가수들은 무려 30여년의 세월동안 대중들과 거리를 두고 각자의 길을 걸으면서 살아왔다.
세 사람 중에서 가장 먼저 컴백한 것은 김추자였다. 70년대 ‘담배는 청자, 노래는 추자’라는 말을 유행시킬 정도로 김추자의 인기는 대단했다. 소위 신중현 사단의 대표주자였던 김추자는 특유의 비음에서 우러나오는 노래는 물론, 파격적인 의상과 섹시한 춤으로 젊은층들을 사로잡았다. 그녀는 마치 흑인 소울여가수와 같은 창법으로 신중현의 주옥같은 노래들을 소화했다. ‘님은 먼곳에’‘무인도’‘늦기전에’‘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등 지금도 여전한 인기를 누리고 있는 그녀의 히트곡들은 김추자가 아니었다면 소화하기 힘든 곡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녀는 미8군에서 노래를 시작한 뒤 신중현의 발탁으로 여가수로서 정점을 찍고 있었다. 그러나 75년 터진 대마초파동으로 은퇴 아닌 은퇴를 해야 했다. 더군다나 김추자는 박정희 정권이 대마초파동을 일으켜 가요계에서 퇴출 시키고 싶은 신중현의 사단에 있는 가수였으니 피할 길이 없었다.
1978년 6월 서울 대한극장에서 5일간 열렸던 ‘78 김추자 리싸이틀’은 활동 금지 처분을 받았던 김추자가 3년 만에 연 재기의 콘서트였다. 그녀는 이 무대에서 “노래 못 하는 동안 정말 미칠 뻔했다”면서 무대의상이 흘러내리는 것도 모르고 춤과 노래에 몰입할 정도로 열정적인 공연을 보여줬다. 당대 최고의 밴드 ‘신중현과 엽전들’을 비롯, 조용필·고 최헌 등이 게스트로 나왔고, 명 DJ인 고 이종환씨가 사회를 봤다. 5일간 3만여명이 몰렸던 이 공연은 한국 대중음악사의 빛나는 한 장면으로 기록될만했다. 최근 이 실황앨범이 음원으로 발매되어 화제를 모으기도 했으며, 700장의 한정판 LP로도 발매되어 애호가들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지난해 열린 김추자 콘서트. 경향신문 사진부
이 공연을 마지막으로 3년 뒤 결혼과 함께 사라졌다. 그동안 부산에서 대학교수를 하는 남편과 생활하면서 자녀들을 키워왔다. 지난해 김추자는 많은 올드팬들의 성화에 못이겨 34년만에 새 앨범을 내고 두 차례에 걸쳐 공연을 펼쳤다. 그러나 너무나 기대가 컸던 탓일까? 예전의 김추자의 폭발력은 없었다. 그러나 우리가 그녀를 무대로 불러내 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크나큰 수확이었다.
올해 또 한 명의 여가수가 무대 복귀를 선언했다. 1970년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던 가수 정미조가 그 주인공이다. 정미조는 1972년 데뷔한 뒤 ‘휘파람을 부세요’ ‘불꽃’ ‘개여울’ 등을 부르며 톱가수의 반열에 올랐으나 1979년 갑작스런 은퇴 선언을 하고 가요계를 떠났다.
그녀는 팝적이면서도 서정적인 노래를 풍부한 성량으로 소화하던 대형 여가수 중의 한 명이었다. 뛰어난 미모는 아니었지만 긴 생머리를 전매특허로 많은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다.
정미조는 가수로서 은퇴한 뒤 프랑스 파리로 떠났다. 정미조는 프랑스 국립장식미술학교를 거쳐 파리7대학에서 미술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1992년 돌아왔다.
1993년 그녀가 수원대 미술대 서양화과 전임강사로 발령 받았다. 이후 지난해 정년퇴임할 때까지 정미조는 화가이자 대학교수로서 미술에 대한 열정을 드러내왔다.
컴백선언한 가수 정미조
그녀가 대학에 교수로 임용됐을 때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당시 경향신문 연예레저부(대중문화부) 소속 기자가 그녀를 인터뷰하기 위해 전화를 했다. 그러나 대답은 노였다. 화가로서 금의환향한 그녀에게 가수 정미조를 떠올리면서 인터뷰 요청을 하자 “가수 정미조는 잊어달라”면서 “화가 정미조로 나중에 인터뷰하겠다”는 응답이 왔다. 그러나 가수 정미조를 빼놓고 그녀를 인터뷰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한때 가수로 활동하면서 명성을 날렸는데 가수로서 호적을 팔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쨌든 그녀도 복귀앨범을 내고 팬들과 만나고 있으며 37년만의 무대복귀를 예고하고 있다.
1970년대 혼성듀엣 ‘뚜아에무아’ 출신인 1세대 여성 포크 가수 박인희(71)도 35년 만에 국내 무대에 컴백한다. 공연기획사 쇼플러스는 최근 “박인희씨가 올봄 ‘박인희 컴백 콘서트-그리운 사람끼리’를 개최한다”며 가수 활동을 재개하는 건 1981년 미국으로 건너간 이후 35년 만이라고 밝혔다.
숙명여대 불문과 출신인 박인희는 1970년대 초 혼성듀엣 뚜아에무아로 활동했으며 1972년 솔로로 독립했다. 그는 ‘모닥불’ ‘끝이 없는 길’ ‘그리운 사람끼리’ ‘세월이 가면’ ‘봄이 오는 길’ 등 직접 작사·작곡한 곡으로 큰 사랑을 받으며 여성 싱어송라이터로서 활약했다. 1980년대 미국으로 건너간 그녀는 그곳에서 한민방송 라디오 DJ로 활동하기도 했으나 고국에서 노래를 발표하거나 노래를 부른 적이 없었다. 간간이 체를 통해 미국에서 사는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했지만 대중들로부터 서서히 잊혀졌다. 1994년 KBS 2FM <박인희의 음악앨범> DJ로 3개월 정도 국내 방송 활동을 한 것이 전부였다. 올해 5월 공연을 가질 것으로 알려진 그녀가 어떤 모습을 보여줄 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러나 그 풋풋했던 20대의 그녀들이 70대 초로의 나이가 되어 무대로 복귀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수구초심(首丘初心)이란 사자성어가 떠오른다. 누가 그녀의 머리 위에 흰 눈을 뿌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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