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희 선배가 내 인생의 멘토죠."
사진 경향신문 사진부
그녀에게 붙어다니는 수식어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원조 섹시디바’는 엄정화나 이효리, 현아와 같은 걸출한 후배 섹시 여가수가 탄생할 때마다 그녀에게 붙어다니는 수식어였다. ‘한국판 마돈나’ 역시 춤과 노래를 겸비한 댄스여가수인 그녀를 설명하는데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또 그녀는 ‘10대 댄스여가수의 효시’였다. 데뷔가 열일곱살이었으니 그 나이 또래 가수 중에는 단연 으뜸이었다. 80년대부터 90년대 군생활을 했던 대한민국 남자들이라면 그녀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군통령’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요즘 들어서는 그녀의 이름 앞에 ‘방부제 미모’라는 수식어도 따라다닌다. 한창 바쁠 때는 스케줄을 맞추기 위해 헬기를 띄웠던 핫한 여가수였고, 한때는 ‘루머’조차도 메가톤급으로 따라다녔던 그녀였다.
올해로 데뷔 30주년을 맞은 중견가수 김완선(47). 그녀가 헐렁한 체크무늬 티셔츠 차림으로 나타났다. ‘방부제 미모’라는 찬사가 그저 나이 든 중년들에게 던지는 수식어이기 십상이지만 그녀에겐 전혀 어색함이 없었다. 음악적으로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가수이자 몸매와 춤솜씨 또한 녹슬지 않은 그녀는 요즘 그녀가 출연하는 프로그램의 제목처럼 ‘불타는 청춘’(SBS)을 보내고 있었다.
촬영장에서는 늘 도발적이고 섹시한 표정으로 도도한 느낌의 표정 연출에서 벗어나 발랄하고 상큼하면서도 활달하게 웃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래서인지 촬영 내내 그녀에게서 웃음이 떠나지 않았고, 참 편안하고 여유롭게 보였 다.
-데뷔 30주년을 맞았는데 감회가 새롭겠어요? 잘 믿겨지지 않네요.
“한 3년 밖에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30년이라니 실감이 나지 않아요. 열일곱살 소녀가 축지법을 서서 내일모레면 오십세가 되는 중년으로 날아온 느낌이랄까. 저 스스로가 30주년 맞은 가수라고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이 슬퍼요. 30년이란 세월 동안 한 가지 일을 했으면 엄청난 내공을 쌓았어야 할텐데 저는 뭐 해놓은 게 없거든요. ‘일신우일신’이라고 해마다 조금씩 발전한 모습을 팬 여러분께 보여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서 안타까워요.”
-아날로그 시대에 가수를 시작해서 디지털 시대까지 온 셈이네요. 디지털시대엔 잘 적응하고 계신지요?
“세상이 많이 달라졌죠. 제가 처음 데뷔할 때 LP 음반을 냈는데 지금은 CD를 지나서 디지털 싱글 시대가 됐어요. 바둑 최고수를 인공지능 로봇이 꺾는 세상이잖아요. 그런데 저는 여전히 아날로그인 것 같아요. 아날로그가 정감 있고 따뜻해요. 아직까지 컴퓨터를 쓰지 않고 노트를 쓰고 있어요. 노트에 메모도 하고 곡도 쓰고.”
-요즘엔 중고등학교 시절에 데뷔하는 후배 가수들이 대부분인데 격세지감을 느끼겠어요. 김완선씨가 데뷔할 당시만 해도 좀체로 없었잖아요?
“저는 연습생 가수 1호였어요. 이모이자 매니저였던 한백희 사장님 덕분에 중고등학교 때부터 철저하게 만들어졌어요. 노래도 부르고, 춤도 연습하고.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개인교습으로 작곡 공부까지 했거든요.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저희 이모가 확실히 시대를 앞서 가셨던 분인 것 같아요. 요즘 10대 후배 가수들은 부모님의 지원 아래 가수 준비를 하니까 훨씬 편하겠지만 한편으로는 치열한 경쟁 속에 내몰리고 있는 것 같아 안쓰러울 때도 많아요.”
-30주년을 맞는 해여서 음악활동에 박차를 가하고 계시는데요? 싱글로 발표하신 록발라드곡 ‘강아지’는 정말 편안하게 들을 수 있었어요.
“가사 내용은 헤어진 연인이 그리워서 잊지 못하는 내용이죠. 그런데 실상은 이 땅의 유기견들을 위해 만든 노래죠. 뮤직비디오도 제 팬이 그런 내용을 담아 만화로 제작했는데 의외로 주변 반응이 좋았어요.”
-댄스곡도 발표하셨죠?
“네 ‘유즈 미’라고. 킹캔이라는 젊은 친구가 쓴 곡이죠. 예전에 해왔던 제 댄스곡들이 어두운 면이 있었다면 이번에는 밝고 경쾌한 댄스곡입니다. 그렇다고 예전처럼 격렬한 댄스가 곁들여지는 곡은 아니죠, 저도 나이가 있잖아요. 요즘 10대들의 빌랄함을 제가 어떻게 따라가겠어요. 하하.”
김완선 앨범 재킷
-2011년 컴백하면서 매년 거르지 않고 디지털싱글과 미니앨범을 내셨는데 음악적 변화가 느껴져요.
“매번 실력 있는 후배가수들과 함께 작업했어요. 인디그룹이나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는 가수들 하구요. 그룹 ‘비스트’의 용준형이랑 함께 부른 ‘비콰이어트’도 있었구요. 힙합풍의 노래 ‘굿바이 마이 러브’도 발표했어요. 미니앨범 속에 있는 에피톤 프로젝트와 작업한 ‘오늘’, 클래지콰이와 함께 만든 ‘캔 온리 필’도 아끼는 노래죠. 댄스에 집중하기 보다는 음악과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노력했어요. 이제 팬들이 저에게 춤을 기대하지 않는 것 같아요. 또 더 이상 섹시하지가 않잖아요. 하하.”
-얘기를 듣다보니 음악에 대한 욕심이 점점 커지는 것 같군요?
“잘 나가는 스타작곡가들과 할 수도 있었는데 안전하고 익숙한 음악을 저까지 할 필요는 없잖아요. 데뷔 무렵에도 저에게 음악은 늘 중요한 요소였어요. 1집과 2집은 생전 다른 사람에게 곡을 주지 않았던 산울림 김창훈 선배 곡이었고, 3집은 그당시 미국에 계시면서 활동을 쉬고 계셨던 이장희 선생님 곡이었어요. 또 신중현 선생님 곡도 받았구요. 5집과 6집은 그당시 한 번도 곡을 써본 적이 없는 손무현과 작업했잖아요? 1백만장 이상 팔리는 앨범도 내봤으니 이제 좋은 노래를 부르는 가수도 해봐야죠.”
-요즘 들어서 복고풍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80년대와 90년대 노래들이 많이 리메이크 되면서 사랑받는데 어떠신가요?
“예전 노래가 다시 나오는 건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어요. 제 노래 뿐 아니라 저랑 같이 활동하던 시대에 유행하던 노래들이 나오잖아요. 저도 어릴 때 스팅이나 킹 크림슨, 이글스, 퀸의 노래를 들으면서 음악을 좋아하게 됐는데 요즘 젊은 친구들도 그럴 것 같아요. 저의 20대는 영광도 있었지만 상처도 많았죠. 댄스가수는 노래를 못한다는 편견, 또 지나치게 선정적이라는 편견 등이 저를 막아섰죠. 데뷔 때부터 주목 받았지만 5년만에야 순위 프로그램에서 1등을 해봤거든요. ‘나만의 것’,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 ‘가장무도회’가 잇달아 1등을 했죠. 보수적인 어른들 때문에 평가절하 된 부분도 없지 않아요.”
-6월부터는 30주년 기념공연도 하신다구요?
“네. 6월 11일 서울공연을 시작으로 대전과 대구, 부산과 광주에서도 공연할 예정입니다. 제가 해온 30년을 총 결산하는 무대라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떨리고 기대돼요. 연말에는 그동안 냈던 싱글들을 모아서 기념앨범도 계획하고 있어요.”
-30주년을 결산하고 나면 결혼도 생각하셔야죠?
“재미 있는 사람, 같이 있으면 즐거운 사람이 있다면 결혼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은 있어요. 그렇지만 꼭 해야겠다는 의무감은 없어요. 또 결혼은 인간의 의지로 할 수 있는 게 아닌 거 같아요. 하늘의 뜻이고, 신의 영역처럼 느껴져요.”
-부모님들이 서두르지는 않나요?
“제 부모님들은 울릉도에 놀러가셨다가 너무 좋다면서 몇 년간 눌러 사시는 분들이죠. 그만큼 낙천적이고 낭만적인 분들이거든요. 최근에 제 집 근처로 이사오셨는데 언니들이 다 결혼해서인지 다행히 결혼 얘기는 잘 안하시죠. 제가 딸 다섯 중에서 셋째딸이잖아요. 왜 보지도 않고 데려간다는. 제 막내 동생도 결혼해서 제 옆집에 살아요. 제 조카만 6명이다보니 아이에 대한 갈증도 좀 덜하죠.”
-예전에 집공개 하는 프로그램에서 보니까 경기도 용인 집이 아주 깔끔하고 세련됐던데요?
“고양이가 여섯마리여서 대식구죠. 버려진 고양이를 주워서 키우다보니 그렇게 됐어요. 첫째가 레이, 둘째가 흰둥이, 셋째가 꼬맹이, 그리고 야들이 라크리 복덩이 이렇게 돼요. 처음엔 너무 애처로워서 돌려보내지 못하고 키우기 시작했는데 이젠 식구 같아서 너무 좋아요. 그런대 애 키우는 것 맡큼이나 힘들죠. 털도 치우고 목욕도 시켜야하고 배변도 치워야 하거든요. 집은 제가 하와이에서 디자인 공부한 실력으로 직접 꾸몄어요. 제가 인테리어는 관심이 많은데 요리는 영 젬병이에요.”
-요즘 출연 중인 SBS <불타는 청춘> 때문에 완선씨에 대한 대중의 시각이 좀 바뀌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네. 예전에는 참 접근하기 힘든 도도한 여자라는 생각들을 많이 하셨던 거 같아요. 또 한창 인기가 있었을 때 대만과 홍콩으로 건너가서 4년 동안 활동했고, 2년 넘는 시간 동안 디자인 공부하느라 하와이에서 살았잖아요. 그러다보니 저에 대한 이미지가 10년 저 너머에 머물러 있었어요. 근데 예능 프로그램에서 제가 털털하고 편안한 데다 이미지에 허당 이미지로 나오니까 요즘엔 다들 스스럼없이 대해주세요.”
-그러고보니 완선씨에 대해 한때 꼬리표처럼 악성루머가 떠돌아다녔죠? 왜 재벌의 아이를 가졌다느니 하던 소문요. 그것 때문에 상처를 받지는 않았나요?
“제가 대만과 홍콩에 나가있는 동안에 그 소문이 크게 돌았던 거 같아요. 그런데 저는 정작 그런 소문이 돌고 있는지 몰랐어요. 그때만 해도 인터넷이 지금처럼 활성화 돼있던 시절이 아니었거든요. 귀국해서야 그런 소문을 접했는데 그냥 웃고 넘겼어요.”
-예능, 그것도 ‘나 중년이고, 아직 싱글입니다’라고 얘기하는 프로그램에 나가는게 망설여지지 않았나요?
“전혀 없지는 않았는데 저는 이 프로그램이 너무 고마워요. 매주 제가 난생 처음 가보는 여행지에 가서 편안하게 옛 선후배들과 맛있는 걸 먹고 놀이도 하면서 스트레스 없이 프로그램을 찍거든요. 제가 생각보다 여행을 많이 못해봤어요. 얼마 전에 쵤영차 가본 진안 마이산은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뭔가 영험한 느낌을 받았거든요. 어떨 때는 만약 일찍 결혼해서 애를 낳았다면 이 프로그램에 출연할 수 없었을텐데 하면서 안도하기도 해요.”
-프로그램 속에서 강수지씨와 스스럼없는 선후배로 지내시면서 친하신 것 같던데요.
“수지 언니는 한창 활동하던 시절에는 그냥 스쳐 지나가기만 해서 친하지 않았어요. 다시 한국에 들어와서 만나기 시작했고 최근 프로그램을 같이 하면서 더 친해졌죠. 근데 처음엔 언니 소리가 잘 안나왔어요. 도대체 언니처럼 보이지 않았거든요. 어떻게 그런 외모를 가진 여자를 열두살짜리 엄마이자 오십이 된 아줌마로 보겠어요. 저도 좀 어려보이는 편이지만 그 언니는 ‘방부제 미모’라는 표현이 딱 맞아요.”
-성악가 김동규씨와 탤런트 김광규씨가 완선씨를 사이에 두고 묘한 삼각관계가 형성되는 것 같던데요? 둘 중에 누가 더 이상형에 가까운가요?
“아빠가 좋은 지 엄마가 좋은 지 묻는 거 같아요. 동규 오빠랑 광규 오빠는 두 분 모두 따뜻하고 듬직하고 재미있어요. 차이가 있다면 동규 오빠는 장남이고 광규 오빠는 막내라는 정도? 그리고 동규 오빠는 프로그램을 하기 전부터 쭉 만나왔던 사이고, 광규 오삐는 프로그램 하면서 처음 봤어요. 제가 재미있는 사람을 좋아하는데 그런 면에서 둘 다 마음에 들어요. 아, 조금 차이가 있다면 동규 오빠에겐 없는 애교가 광규 오빠에게 있다는 정도죠.”
-방송 프로그램에서 JYJ 같은 남자가수 후배들에게 사심을 보이기도 하셨는데 연하남이 데쉬한다면 어떨 거 같아요?
“에이. JYJ를 좋아하는 거야말로 그냥 이모팬들이 젊은 남자가수들을 좋아하는 팬심과 다를 바가 없어요. 너무 나이 차이가 나면 저도 감당이 안될 것 같아요. 제 주변에 있는 친구들은 대개 남자친구라기보다는 남자인 친구들 뿐이죠. 손무현이나 이태윤 같은 또래 남자뮤지션들요. 후배가수한테 사심을 가졌다 해도 제가 데쉬하는 성격이 못돼서 거의 불가능해요.”
-어떤 경우에 나이가 느껴지나요?
“보통 때는 나이를 잊고 살아요. 그런데 숫자라는게 묘해서 문득 그 숫자를 확인하면 어쩌다 내가 벌써 이런 나이가 됐을까 한숨도 나와요. 그리고 가끔 거울을 보다가 내 얼굴에서도 이제 세월이 느껴지는구나 생각해요. 그런데 결혼을 안하고 자식도 없어서인지 아직 철이 없어요, 또 철들고 싶지도 않구요. 영원히 철부지로 살았으면 좋겠어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싶으세요? 특별히 인생의 멘토로 꼽는 분이 있다면?
“저는 이장희 선생님을 참 좋아해요. 평소에 참 따뜻하게 대해주시면서 이런저런 조언도 많이 해주시죠. 그런데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인생은 이렇게 사는거야 라고 몸소 보여주시잖아요. 이장희 선배님처럼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갖추면서 자신의 삶 앞에서 늘 당당한 모습을 보이면서 살아가는 것이 제 꿈이죠.”
-스스로 완선씨의 전성기를 꼽는다면?
“제 팬들은 제가 한창 활동하던 90년대를 전성기로 꼽으시겠죠. 그런데 저는 ‘지금 이 순간’이 전성기인 것 같아요. 나이가 주는 선물은 편안함인 것 같아요. 젊었을 때 사소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소중해지고, 안보이던 것들이 보이는 지금의 제가 너무 좋아요. 음악이나 무대도 제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서 좋구요.”
그녀의 외모는 데뷔 때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그녀의 내면은 어느새 꽉찬 석류처럼 원숙한 경지에 올라 있었다. 그녀가 시작한 인생 2막의 화려한 퍼포먼스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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