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천하 나훈아
사진 경향신문 사진부
11년 만에 펼쳐지는 나훈아 콘서트가 코 앞이다. 여기저기서 티켓 구할 수 없냐는 문의가 쇄도하지만 순식간에 매진된 티켓이 남아있을 리 없다. 오래 전 일이지만 나훈아와는 여러 차례 만나 인터뷰도 하고, 공연도 보러가면서 친분을 쌓은 적이 있다. 그러나 세상의 관계가 그렇듯이 기자와 취재원으로 만나던 시절의 일이지 그 이후엔 소원해 졌다. 게다가 나훈아의 잠적이 강산이 변하는 시간만큼 흘렀으니 나 역시 나훈아의 무대와 근황이 궁금할 수밖에 없다. 또 나훈아를 둘러싼 세간의 호기심 때문에 생긴 여러 가지 루머에 대해 한 번쯤 만나서 물어보고 싶다. 적어도 내가 아는 나훈아는 기자한테 구차한 변명을 하거나 대답을 회피하면서 있는 사실을 숨길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더더욱 만나고 싶다. 갑자기 ‘천상천하 나훈아’를 꺼내 든 것은 대한민국 가수로서 그가 얼마나 큰 자긍심과 자존심을 가진 사람인가를 설명하기 위해서다.
벌써 10년도 더 지난 일이다. 그때도 나훈아를 직접 인터뷰 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긴 연예계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자랑하던 방송3사의 예능국장이나 간부들도 명절 때면 나훈아를 알현(?)하여 특집 쇼를 따내기 위해 사무실 앞에서 무작정 기다리곤 했으니 단독인터뷰 또한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찌어찌 하여 지금은 문을 담은 남산밑 아라기획 사무실에서 나훈아와 마주 않았다. 그 당시 아라기획 사무실 사람들은 그를 최 회장(본명 최홍기)으로 불렀다.
당시 50대 후반의 나훈아는 중년을 한참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같은 ‘수컷’이 부러울 정도로 충분히 매력이 있었다. 구릿빛으로 그을린 듯 한 까무잡잡합 피부에 잘 차려입은 슈트가 너무나 잘 어울렸고, 말 할 때마다 넘쳐흐르는 자신감은 인터뷰어도 주눅 들게 할 정도였다. 청바지에 러닝셔츠 차림으로 노래하면서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그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충분히 수긍이 갈 것이다. 그날 어쩐 일인지 나훈아는 미디어와 대중음악 종사자들한테 작심한 듯 불만을 토로했다.
“오 기자. 마이클 잭슨을 ‘팝의 황제’라고 부르지 않소? 그렇다면 나도 세계적인 가수요. 마이클 잭슨이 트로트를 나보다 잘 불러요? 전 세계를 통틀어 트로트를 나보다 잘 부르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어요. 그런데 나보고 세계적인 가수라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어요. 그리고 나는 뽕짝 가수나 트로트 가수라는 호칭이 마음에 안 들어요. 그게 마치 같은 가수인데 한 길 아래로 깔보는 느낌이란 말이요. 기자나 평론가들이 뭐하는 거요? 우리 같이 노래하는 사람들이 자긍심을 가질 만한 멋진 이름을 지어 줘야지.”
인터뷰가 끝나고 여담처럼 시작됐다가 나온 얘기지만 내 기억으로는 인터뷰 기사에 반영하여 그의 주장을 녹여낸 기억이 있다. 사실 마이클 잭슨이 팝의 황제이고, 나는 트로트의 황제이니 나와 마이클 잭슨은 동급이다, 또 트로트는 마이클 잭슨보다 내가 더 잘 부르니 나는 세계적인 가수다. 논리를 비약한 그의 주장이었지만 묘한 설득력이 있었다. 그것도 나훈아의 주장이 아니던가.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면서 ‘천상천하 나훈아’로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그로부터 얼마 뒤 나훈아의 매니저로부터 연락이 왔다. 최 회장께서 경향신문에 칼럼을 쓰고 싶다는 거였다. 편집자의 입장에서 나훈아가 칼럼을 싣고 싶다는 데 마다할 리 없었다. 이리저리 검색을 하다 보니 그때 보내왔던 나훈아의 칼럼의 원천소스가 있었다. 바로 다음 글이다.
'아리랑 가수’라 불러 주십시오. ' 아리랑 소리꾼’이면 더 좋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나훈아입니다. 저는 우리 전통 가요를 ‘아리랑’이라 정하고 싶다는 생각의 결론을 얻었기에 펜을 들었습니다. 우선 이렇게 글로 대신함을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물론 저 혼자서 ‘이렇다’하고 결론을 내린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다만, 누군가가 나서서 불을 지펴야 된다는 생각에, 긴 세월 전통 가요를 불러온 대중 가수의 한 사람으로서, ‘뽕짝’이라든지 ‘트로트’라는 호칭은 하루 빨리 다른 이름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걸 통감하면서도 ‘어쩌면 누군가가, 아니면 우리나라에도 훌륭한 국어 학자나 교수님들이 계시기에 행여 좋은 전통 가요에 걸맞은 이름을 지어 주시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분들은 전통 가요의 이름을 짓는 데는 별 관심이 없는 듯했습니다. ‘누군가 하겠지....’하는 막연함에 기대어 기다리기에는 너무, ‘뽕짝’이나 ‘트로트’라는 이름은 말도 되지 않는 호칭이기에 하루라도 빨리 바뀌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저를 포함한 대중가요의 관계자, 모든 사람들의 소원이며 희망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즉 한 국가를 대표하는 대중음악의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요. 그 이름은 그야말로 순수한 우리말이어야 하기에 더욱 더 쉽지가 않은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아리랑'이라 정하면 좋겠다는 결론을 얻는 데는 많은 시간과 고민이 필요했었습니다.
그럼 ‘왜 아리랑이 좋은지! 왜 '아리랑이어야 하는지!’에 대하여 저의 소견을 피력하고자 합니다. 요컨대, 우리 전통 가요의 중심에서, 또는 앞장 서 계신 여러 임들께서 혹 저의 의견에 대해 이해와 뜻을 같이 하신다면, '아리랑이라 호칭하기 운동’에 힘을 모아 주시어 다음 세대가 아닌 우리 세대, 즉 전통 가요를 부르는 지금의 우리 후배 가수들부터라도 ‘'아리랑 가수’, '아리랑 소리꾼’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면 이 또한 우리 모두의 큰 기쁨이 아닐련지요.
잘 아시겠지만.....우리 전통 가요가 ‘뽕짝’ 이나 ‘트로트’라 불리면 안 되는 이유,
1. 뽕짝이라 함은 그냥 2/4박자의 리듬을 나타내는 소리이지 뜻을 가진 말이 아니며, 소리의 어감이 전통 가요를 비하하는 듯한 뜻이 담겨져 있고, 또한 한 나라를 대표하는 음악의 호칭으로는 적합하지 못하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같이 인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2. 트로트는 어원이 영어 ‘Trot’에서 비롯된 말이며 이것 역시 음악의 2/4박자의 리듬의 뜻을 나타내며 더구나 외국어이기에 우리나라 음악을 대표하는 호칭으로 불리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3. 우리의 전통 가요는 모든 리듬이 폭 넓게 사용되고 있기에 2/4박자를 지정하는 뽕짝이나 트로트의 한정된 리듬이 이름으로 호칭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4. 어느 나라든 각 나라마다 그 나라의 전통 가요가 있기 마련입니다.
예) 미 국 - 팝(Pop) . 프랑스 - 샹송 (Chanson)
이탈리아 - 칸소네(Canzone), 일 본 - 엔카 (演歌) 등등
만약 외국인이 “당신 나라의 전통가요를 무엇이라 합니까?“ 라고 물어 왔을 때, ”뽕짝이오“라 하겠습니까? 아니면 영어로 ”트로트입니다“라고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에게 적절하고 그리고 자신 있게 대답할 말이 없다면 이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가 없지요.
그럼 왜 '아리랑'이 좋다고 생각했는가!
1. '아리랑'하면 무엇이 떠오를까요? 답은 노래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리랑'이라는 말 이 들어간 제목의 이름으로 6000여곡 이상의 노래가 있다고 하니까요.
2. '아리랑'의 뜻은 무엇일까요? 답은 “모릅니다”입니다. 혹시 아시는 분이 계신지요?
아리랑 대해 이런 저런 자료를 수집해 보면,
ㄱ) '아리랑'은 일제에 항거 노래이기도 했고,
ㄴ) '아리랑'은 독제 시대 운동권의 노래이기도 했고,
ㄷ) '아리랑'은 88 올림픽 때에는 공식 음악으로 지정되어 개회식과 폐막식에 '아리랑'
이 세계의 지구촌 곳곳의 안방까지 전파를 통해 울려 퍼졌던 노래였습니다.
심지어는 1989년 북경 아시안 게임에서 남북 단일팀의 단가로 채택되어 남과 북이
함께 불렀던 노래이기도 했지요.
물론 옛날옛날 그 옛날부터 농부들, 어부들 우리의 서민들의 노래였던 것은 두말할 것도 없습니다.
ㄹ) 통일 후를 생각하여도, 삼팔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아리랑'은 꿋꿋하게도 남과 북에서 뜻을 같이하는, 그야말로 우리 민족 음악의 대명사이기도 하지요.
ㅁ) '아리랑'은 그야말로 순수한 우리말입니다.
ㅂ) '아리랑'을 연구한 여러 학자들의 결론은 하나같이 ‘그럴 것이다’라는 피상적인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확실한 건 모른다는 이야기가 되겠지요. 다만 확실한 것은, ‘아리랑’은 그 옛 날부터 내려오는 순수한 우리말이며, '아리랑'은 그 쓰임새에 따라서 뜻이 달라진다는 것이지요.
어느 교수의 '아리랑'연구 자료에서 말했듯이 아리랑은,
“슬플 때 만지면 슬픔이 되고, 기쁠 때 만지면 기쁨이 된다.”
그야말로 우리의 일이며 기쁨이요, 한이요, 우리말 중에서도 정말 멋진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 어떤 학자는, '아리랑'은 낱말의 뜻을 나타내기보다는 음악적으로 리듬을 이루고 흥을 돋우는 무의미한 사설에 가깝다고도 말합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가 '아리랑'에 또 하나의 의미를 부여해서 낱말로 쓰면 어떨련지요. 대개 '아리랑'은 단어의 뒤에 붙을 때 앞의 뜻과 말을 도와주며 강조해 주는 역할을 하지요.
여기서 '아리랑'이 단어의 앞에 붙을 때와 뒤에 붙을 때 역할의 차이점에 대한 설명은 생략 하겠습니다.
예) 진도 아리랑,
강원도 아리랑.
밀양 아리랑,
정선 아리랑 등등....
그래서 저는 '아리랑‘ 단어 앞에 붙여서 뒤의 낱말이 가수나 소리꾼등 음악에 관련된 단어가 붙을 때는 ‘전통가요’, ‘한국가요’, ‘성인가요’ 라는 뜻으로 쓰자는 것이지요.
예) ‘뽕짝 가수’ 혹은 ‘트로트 가수’를 ㅡ> '아리랑 가수', '아리랑 소리꾼’
KBS ‘가요무대’를 ㅡ> '아리랑무대’
‘전국 노래자랑’을 ㅡ> ‘전국 아리랑 노래 자랑’
‘가요 퍼레이드’를 ㅡ>'아리랑 퍼레이드’
‘트로트 뉴스’를 ㅡ> '아리랑 뉴스’ 등등.....
이런 식으로 '아리랑'을 앞에 두어 전통 가요라는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자는 것이지요. 그래서 외국인이 “당신 나라 전통 가요는 무엇이오?”라 물으면 “우리는 아리랑이 있지요” 라고 자신 있게 대답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은 말이지만 슬플 때 만지면 슬픔이 되고 기쁠 때 만지면 기쁨이 되는 것이 '아리랑'이라면, 우리 가슴에 늘 슬플 때나 기쁠 때나 흥얼거리며 불러왔던 우리의 전통 가요의 이름을 '아리랑'이라 정한다면 잘 어울어지겠다는 것이 저의 결론입니다.
사실, 더 논리 정연해야 되며 더 세밀하여야 한다는 점은 잘 압니다. 이 몇 장의 글로써는 이해를 돕기에 부족한 점이 많다고 생각되오나 전통 가요를 불러 왔던 저로서 충정과 사명감, 그리고 책임감이라 할까요. 아무튼 이 결론을 얻는데 결코 쉽지는 않았습니다. 언제 소주 한 잔에 아리랑 얘기할 날을 기대하며 끝까지 읽어주신 임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행복하시고 하시는 일에 축복이 있으시길 빌며 이만 줄입니다.
아리랑 소리꾼 나훈아 드림
(아리랑 가수)
그런데 문제는 한정된 지면에 이렇게 긴 글을 싣는 건 불가능하다는 점이었다. 요즘처럼 온라인이 있어 전문을 실을 수 있는 시스템이 있었던 시절도 아니었다. 하여 몇 차례의 논의 끝에 오피니언면 칼럼 분량으로 대폭 축소하여 게재할 수 있었다.
난 '뽕짝가수'가 아닙니다
- “‘아리랑 가수’라 불러 달라. ‘아리랑 소리꾼’이면 더 좋다.”
긴 세월 전통가요를 불러온 가수의 한 사람으로서, ‘뽕짝’이나 ‘트로트’라는 호칭은 하루 빨리 다른 이름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걸 통감하고 있다. 훌륭한 국어학자가 그럴듯한 이름을 지어주면 좋겠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분들은 전통가요의 이름을 짓는 데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중음악의 이름을 짓는 일이 결코 쉽지는 않다. 그 이름이 순수한 우리말이어야 하기에 더욱 어렵다. 뽕짝이나 트로트가 아닌 ‘아리랑’으로 부르면 좋겠다는 결론에 이르기까지 많은 시간과 고민이 필요했다.
우리 전통가요를 ‘뽕짝’이나 ‘트로트’로 칭하면 안 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선 ‘뽕짝’이라는 것은 4분의 2 박자 리듬을 나타내는 말이다. 어떤 다른 뜻을 가진 말이 아니다. 또 그 어감도 전통가요를 깔보는 느낌이 강하다. ‘트로트’의 어원인 영어 ‘Trot’도 역시 4분의 2 박자를 뜻한다. 더구나 외국어이기 때문에 우리 음악을 대표하는 호칭으로 사용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우리 전통가요는 4분의 2 박자는 물론 모든 리듬을 폭 넓게 사용한다. 결국 특정 박자를 지칭하는 ‘뽕짝’이나 ‘트로트’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것은 가당치 않다.
그렇다면 어떤 말이 좋을까. 어느 나라든 그 나라의 전통가요가 있다. 미국의 팝, 프랑스의 샹송, 이탈리아의 칸초네, 일본의 엔카 등이 그것이다. 만약 외국인이 “당신 나라의 전통가요를 무엇이라고 부릅니까”라고 물을 때 “뽕짝입니다” “트로트입니다”라고 대답할 것인가.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 전통가요를 지칭하는 단어로는 ‘아리랑’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왜 ‘아리랑’인가. 일단 ‘아리랑’이라고 하면 우리 모두 자연스럽게 ‘노래’를 떠올린다. 그도 그럴 것이 ‘아리랑’이라는 단어가 제목에 들어간 노래가 자그마치 6,000여곡이나 된다.
그렇다면 ‘아리랑’의 뜻은 무엇인가. 아직까지 어느 누구도 정확한 뜻을 제시하지는 못하는 듯하다. 어느 학자는 뜻을 가진 단어라기보다는 음악적으로 리듬을 이루고 흥을 돋우는 무의미한 사설에 가깝다고 지적한다.
이같은 해석을 떠나 ‘아리랑’의 쓰임새를 보면 그 뜻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우선 ‘아리랑’은 일제에 항거하는 노래였다. 독재 시대엔 운동권의 노래였다. 88올림픽 때 공식음악으로 지정돼 지구촌 곳곳의 안방까지 전파를 통해 울려 퍼졌다.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에서도 남북 단일팀의 단가로 채택돼 남과 북이 함께 불렀다.
옛적부터 농부나 어부할 것 없이 우리 서민들의 노래였던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통일 후를 생각해도 우리의 ‘아리랑’은 남과 북에서 뜻을 같이하는, 그야말로 우리 민족노래의 대명사라 할 수 있다.
‘아리랑’은 “슬플 때 만지면 슬픔이 되고, 기쁠 때 만지면 기쁨이 된다”는 말이 있다. 그야말로 우리의 얼이며 기쁨인 동시에 한(恨)이다. 우리말 중에서도 가장 멋진 말이다. 우리가 이런 ‘아리랑’에 또 하나의 의미를 부여해서 사용하면 어떨까. ‘아리랑’을 가수나 소리꾼 등 음악과 관련된 단어의 앞에 붙여 전통가요, 한국가요, 성인가요의 뜻으로 쓰자는 것이다. ‘뽕짝 가수’ ‘트로트 가수’를 ‘아리랑 가수’ ‘아리랑 소리꾼’으로, ‘가요무대’를 ‘아리랑 무대’로, ‘전국 노래자랑’을 ‘전국 아리랑 노래자랑’으로 부르자.
그러면 어느 외국인이 물었을 때 “우리의 전통가요는 아리랑입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슬플 때나 기쁠 때나 흥얼거리며 부른 우리 전통가요의 이름을 ‘아리랑’이라고 칭한다면 얼마나 잘 어울리겠는가.
주장이 그리 논리정연하지는 않다고 생각하지만 평생을 전통가요를 노래한 충정과 사명감, 책임감에서 어렵게 내린 결론이다. 앞으로 나훈아와 뜻을 같이하셔서 ‘아리랑이라 호칭하기 운동’에 힘을 모아주시길 간절히 바란다. 소주 한 잔에 아리랑 얘기를 할 날을 기대하며.
나훈아(아리랑 소리꾼)
2004년 12월경 이 칼럼이 신문에 게재되자 여기저기서 문의가 쇄도했다. 나훈아가 직접 쓴 글이 맞느냐? 왜 갑자기 나훈아 칼럼을 게재한 것이냐? 앞으로 나훈아가 경향신문 고정필진으로 활동하는 거냐? 등등. 그러나 정작 트로트나 뽕짝이라는 말 대신 뭔가 다른 말로 우리 전통가요를 부를 수 있도록 하자는 나훈아의 주장은 그의 주장으로 끝나고 말았다. 나는 이후 나훈아의 잠적에는 모처럼 세상을 향해 마음먹고 제안을 했는데 본격적인 논의조차 없었던 이 사건이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하는 객쩍은 생각도 해봤다.
각설하고, 10여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천상천하 나훈아’가 우리 앞으로 돌아왔다. 그동안 가요계는 ‘한류가수’라는 신조어가 어색하지 않고, 노래는 몰라도 스타는 살아남으며, 아이돌그룹이나 힙합가수가 대세가 된 세상으로 변했다. 음반은 사라진 지 오래고 음원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으며, 아이돌그룹의 공연티켓 구하기 전쟁이 코리안 시리즈의 그것을 능가하고 있다. 새삼스럽지만 나훈아가 그토록 바라는 ‘뽕짝가수’ 혹은 ‘트로트가수’라는 이름 대신 뭔가 새롭고 발전적인 이름 만들기 운동이라도 펼쳐야 하지 않을까?
다시 노래를 위해 무대로 돌아온 나훈아를 위한 우리들의 화답이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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