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썸네일형 리스트형 결혼식 축시의 어떤 예 결혼식 축시의 어떤 예 이렇게 좋은 날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날이 기어이 올 줄 알았습니다 가을 하늘을 떠돌던 두 개의 별이 만나 초저녁 달빛 사이로 빛나는 이 날이 올 줄 알았습니다 참 먼 길 돌아왔습니다 그 사이 개나리는 수 없이 피고 지고, 단풍잎은 또 얼마나 얼굴을 붉혔는지요 몇 천의 붉을 노을이 서쪽 하늘을 물들였는지 다 알지도 못합니다 그 많은 날들을 보내면서 사랑은 사랑한다고 말해야 시작된다는 걸 왜 이제야 알았는지요? 하지만 어떻습니까? 이렇게 진득한 사랑을 시작했으니 모닥불처럼 타오르다 이내 식어버리는 그런 사랑 말고 폭풍우처럼 밀려와 나무를 뽑는 그런 사랑 말고 시골집 안방에 놓인 화로처럼 은근하고도 뜨거운 사랑 막 쪄낸 콩고물에 무친 인절미처럼 쫀득한 사랑 오늘.. 더보기 가을은 늙지 않는다 가을은 늙지 않는다 오광수 사진 경향신문 사진부 가을저녁 마음을 다쳐 끝내 몸살이다까치밥으로 남은 홍시 하나늑골 근처서 달랑거리다 툭,온몸 적시며 식은땀으로 흥건하다 가을은 하필 늙지도 않고 찾아와서 내 낡은 관절을 쑤시며 콕,첫사랑을 배신한 죄를 묻는가 모과향 나던 젖가슴을 가진 여자가마른 기침으로 찾아온 새벽거봐라 하며 지나가던 가을이아직 푸른 처녀의 허리에 손을 감아 콱,붉디 붉은 단풍들로 숨이 막힌다 절정에 오른 나무들이 얼굴 붉히며 흰눈 같은 혁명을 기다리는 새벽늙지도 않는 가을 때문에 마음 다친 사내가 폭설에 갇혀 길을 잃는다 젊은 가을 때문에 사무치면 지는 거라고비루한 몸들이 소리치지만 속 빨간 단풍을 어찌할 수 없다어느새 흰눈이 머리를 덮고 첫사랑의 화인(火印)도 천천히 지워진다. 더보기 호박 사진 경향신문 사진부 호박 오광수 밥솥에서 쪄 낸 호박잎에 보리밥을 올리고 강된장 한 숟가락 척 얹어서 입에 넣는다. 까슬까슬한 감촉이 혀끝에 머물더니 사박사박 씹히면서 목넘김이 부드럽다. 전해오는 식감을 따라 마음밭은 한달음에 고향집 뒤꼍 장독대까지 내닫는다. 할머니가 심은 호박씨에 할아버지가 똥지게 몇 번 져 나르면 씩씩한 호박순들이 투덜거리며 올라왔다. 그땐 몰랐다. 냄새 나는 똥 속에서 뒹굴어야 새순이 돋고 열매가 맺힌다는 걸. 벌들이 아양 떨면서 노란 호박잎에 입맞춤하면 잘생긴 애호박 하나 뚝딱 만들어졌다. 호박잎 사이 숨바꼭질 하면서 용케도 살아남은 호박들은 노랗고 탐스런 호박으로 늙었다. 나중에 알았다. 별 일 없이 늙어간다는 게 호박에게도 쉽지 않다는 걸. 호박잎에 모이는 빗소리가 탐스런 .. 더보기 이전 1 ··· 3 4 5 6 7 8 9 ··· 4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