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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클랜드인이 사랑하는 섬, 와이헤케 뉴질랜드 최대 도시인 오클랜드에 사는 도시인들은 와이헤케 섬을 사랑한다. 도심에서 가장 가까운 섬이자 휴식처이기 때문이다. 최악의 미세먼지에 시달리는 우리에게 푸른 하늘과 깨끗한 공기, 청정한 바다가 있는 와이헤케 섬은 말 그대로 지상낙원이 아닐 수 없다. 오클랜드 시내의 페리터미널에서 와이헤케 섬으로 들어가는 페리를 타면 불과 40분만에 와이헤케 페리터미널에 닿는다. 페리터미널 창구에서 티켓을 사면 왕복 45불(약 34,000원), 뉴질랜드 교통카드인 홉카드를 태그하면 왕복 40불(약 30,000원) 정도다. 와이헤케 섬은 양질의 레드 와인 생산지로 이름이 높다. 뿐만 아니라 자연 풍광이 아름답고 기후가 따뜻하여 은퇴한 노부부나 예술가들이 많이 살고 있다. 총 해변의 길이가 19㎞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더보기
영화 〈피아노〉 촬영지, 오클랜드 피하(Piha) 비치 영화 는 오래 잔영이 남는 영화다. 제인 캠피온 감독과 홀리 헌터가 주연한 이 영화는 90년대 개봉한 영화지만 오늘날까지 사랑받고 있다. 19세기말 20대 미혼모 에이다(홀리 헌터 분)는 사생아 딸과 함께 얼굴도 모르는 남자와 결혼하기 위해 뉴질랜드 땅에 도착한다. 여섯 살 때부터 말하기를 그만두고 침묵을 선택한 에이다에게 세상과 소통하는 창구는 피아노와 딸 플로라 뿐이다. 그러나 모녀를 데려가기 위해 해변가에 온 남편 스튜어트는 피아노를 해변가에 버려둔다. 집에 피아노를 둘 자리가 없다는 이유다. 에이다는 피아노를 치고 싶을 때면 해변으로 나와 건반을 두드린다. 영화 속 촬영지가 바로 뉴질랜드의 최대 도시 오클랜드 서쪽에 위치한 피하 비치다. 오클랜드 주도로인 1번 하이웨이에서 벗어나 서쪽으로 방향을 .. 더보기
한국 대중문화의 결정적 사건들 3- 한국전쟁과 대중음악 전쟁은 많은 것을 바꾼다. 우리에게도 전쟁은 많은 상처를 남겼다. 수 많은 희생자와 이산가족이 생겼다. 그 상처는 반세기가 훨씬 지난 오늘날에도 좀체로 극복되지 않고 있다. 한국전쟁때 부산은 임시수도였다. 평소에는 서울에 이은 제2의 도시이며, 우리나라 제1의 항구도시다. 그런 도시가 전쟁 때문에 피난민으로 차고 넘치는 도시가 된 것이다. 부산은 평양이나 서울을 떠나 남으로 남으로 피난을 떠난 사람들이 임시로 정착했던 도시다. 기록에 의하면 피난시절 도미도레코드사, 미도파레코드사 등 서울에 있던 레코드사들이 부산이나 대구로 내려가서 음반을 제작했다. 전쟁으로 인해 전반적으로 문화는 침체됐지만 용케도 노래를 만들고, 레코드도 제작한 것이다. 당시의 노래들은 대부분 시대를 반영하고 있다. 대부분 전장으로 인.. 더보기
한국 대중문화의 결정적 사건들 2-일제강점기, 이난영과 남인수의 사랑과 노래 대중음악은 사회의 거울이다. 일제강점기에도 스타가 배출됐고, 대중들이 즐겨 부르던 노래가 있었다. 그러나 그 시절의 노래가 즐겁고 행복한 얘기를 담고 있을 리 없었다. 또 일본 엔카(演歌)의 영향을 받아 슬로풍의 단조에 이별을 노래한 곡들이 많았다. 일제강점기를 관통한 가수이자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가수가 이난영과 남인수다. 남녀 가수를 대표하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일제강점기 한국 대중음악을 일별해 볼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난영은 누구인가? 그녀는 일본강점기 기생 출신 가수들과는 달리 모던한 재즈풍의 음악으로 일찍이 한국 대중음악의 지평을 넓힌 여가수였다. 이난영이 활동하던 1930년대는 당연히 레코드회사가 스타를 발굴하고 배출하던 시기였다. 오케레코드, 콜럼비.. 더보기
한국 대중문화의 결정적 사건들 1 -윤심덕과 김우진의 현해탄 동반 자살 우리네 삶에서 어떤 사건은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든다. 그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바뀐다. 한순간에 천국과 지옥을 맛본다. 역사도 마찬가지다. 결정적인 사건이 역사의 흐름을 바꾼다. 역사의 흐름이 바뀌면 그 사회에 속한 모든 인간의 운명도 바뀐다.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한국 대중문화가 근래 들어서 전 세계인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어쩌면 그 역사 속에서 결정적 사건들이 우리를 여기까지 이끌고 왔을지도 모른다. 지난 100년 역사 속에 변곡점이 됐던 대중문화계 사건과 사고를 짚어본다. 단순한 사건으로 해석될 수도 있지만 이를 통해 대중들은 자극을 얻거나 변화를 택한다. 그 결정적 사건들의 이면을 들여다보았다. 1920대 발행되던 여성지 의 표지. 윤심덕은 당시 손꼽을 만한 신여성.. 더보기
짧아서 안타까운 봄 3월은 수줍고 설레는 계절이다. 난만한 봄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겨울의 마지막 자락이 남아 있다. 그러나 곳곳에서 기지개를 켜며 일제히 봄을 향해 고개를 내미는 것들이 봇물을 이룬다. 무릇 생명 있는 것들이 모두 앞다퉈서 봄맞이를 위해 새 단장 하기에 바쁘다. 우리네 삶 또한 시작하는 것들로 가득하다. 누구에게나 새로 시작한다는 건 마음 설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여름바람, 가을바람, 겨울바람이란 단어는 없어도 봄바람이라는 단어는 오랫동안 우리를 지배해왔다. 왜 처녀, 총각들이 하필 봄에 바람이 날까? 온갖 꽃들이 둘러 피고, 새들은 지저귀고, 봄바람은 살랑살랑 부는데 마음에 평정을 갖는 건 부처의 일이다. 어쩌면 봄바람은 당연하다. 누구든 봄이 되면 묵은 먼지를 털고 일어나듯 기지개를 켠다. 이런 봄에.. 더보기
나훈아, 조영남, 조용필이 한 무대에? 가수 조용필과 나훈아, 조영남이 한 무대에 선다면? 정말 꿈의 무대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미 가왕의 반열에 오른 세 가수가 한 무대에 서는 건 불가능 하다. 더군다나 나훈아와 조용필은 그들의 콘서트에서도 게스트를 세우는 법이 없다. 과거 라이브에이드 공연이나 위아더월드 같은 세계적인 프로젝트를 만들면 이들 대형가수들을 한 자리에 불러모을 수는 있겠지만 그마저도 지금으로서는 요원해 보인다. 여전히 현장에서 파워풀한 공연을 펼쳐보이는 스타들이지만 함께 무대에 서기에는 음악적 공통분모가 적고, 각자의 개성이 너무나도 뚜렷하다. 과거 사진들을 경향신문 데이터베이스에서 검색하다가 1982년 5월에 전남 광주에서 이들 세명의 스타가 함께 찍은 사진을 발견했다. 이리저리 확인해 본 결과 이 사진은 그 당시 광주.. 더보기
슬로슬로우 퀴퀵 - 오광수 어느 가을날 지리산 등성 어디쯤서 반달곰과 딱 눈이 맞는다면 마늘 몇 쪽 갖고 동굴 속으로 들어가 녀석과 살림 차려야지. 그 계곡 어디쯤서 날다람쥐 한 마리 만난다면 쳇바퀴 굴리듯 한세상 돌고 돌아야지. 가을 햇볕에 천천히 가슴을 데우다가 마침내 비등점에 오르면 붉게 붉게 타올라야지. 붉은 마음이 식어 하얀 재로 남으면 팔랑거리며 눈이 되어 내려야지. 사람도 한 그루 나무인 그 산에서 네 편 내 편도 없이 한세상 환하게 살아야지. 어느 날 또 내가 마침내 죽음과 눈이 딱 맞는다면 슬로슬로우 퀴퀵 춤을 춰야지. 반달곰 가슴을 팍팍 치면서 나 없어도 잘 살아 얘기해야지 도토리 점심을 주면서 다람쥐한테도 안녕 해야지. 사는 일이 슬로슬로우 퀴퀵이라고 계곡물에게도 알려줘야지. 모두들, 서두를 것 없이.. 더보기
김제동을 함부로 차지 마라 김제동이 여전히 뜨겁다. 김제동을 좀 아는 한 사람으로서 논란이 계속되는 현 상황을 마냥 지켜보기 어려웠다. 최근 보도된 기사의 제목들을 보자. -[단독] 김제동, 도봉ㆍ강동서도 1500만ㆍ1200만원…서울서도 ‘고액강연 논란. -김제동 쫓아 논란 판 키운 이언주 “1500만원 강연, 혈세로 특혜 줬다”. -김제동 또 '지자체 고액 강연료' 논란… 확인된 강연 수익만 1억원 육박. 기사를 열심히 읽지 않고 제목만 봐도 어떤 내용인지 알 수 있다. 말하자면 입만 열면 서민과 청년의 열악한 삶에 대해 정치적인 발언을 하는 김제동이 재능기부를 하지 않고, 고액(?)의 출연료를 받고 강연을 하러 다녔다는 것이다. 우선 어른들 때문에 김제동 강연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한 대덕구 내 고등학생들에게 심심한 위.. 더보기
이제 와서 사랑을 말하는 건 미친 짓이야? 오광수. 좀 나이 먹고 가요에 대해 관심있는 독자라면 친숙한 이름이다. 환갑을 바라보는 지금까지 삶의 대부분을 문화부 전문기자로 지내면서 경향신문을 통해 오랜 세월 독자들과 교감했으니 그럴만도 하다. 대중들과의 소통이 원활한 신문기자라서 그 이름 석자가 알려진 것만도 아니다. 그는 기자가 되기 전에 시인이었다. 그것도 지난 1986년 동인지 ‘대중시’로 데뷔한 중견시인이다. 지난해 12월에는 월간 ‘시인동네’가 발굴시인 특집으로 오광수를 소개하기도 했다. 30년 넘는 세월을 기자와 시인으로 번갈아 살아온 그가 시인으로서 ‘이제 와서 사랑을 말하는 건 미친 짓이야’라는 표제의 시집을 내놨다. 출판사 ‘애지’의 여든한번째 시집이다. 그의 첫 시집이기도 하다. 표제만 보면 언뜻 파릇파릇한 스무살 청춘의 심장을.. 더보기
서울의 봄, 조용필 창밖의 여자 노래의 탄생 / 조용필 창밖의 여자 1980년 서울은 희망과 좌절이 교차하던 땅이었다. 박정희의 퇴장으로 서울의 봄이 오는가 했지만 신군부의 등장으로 다시 암울한 시간이 찾아왔다. 올해로 노래 인생 50주년을 맞은 조용필에게 1980년은 격동의 역사 만큼이나 극적인 한 해였다. 미8군 시절 대기실에서 피웠던 대마초가 문제가 되어 ‘돌아와요 부산항에’의 히트로 긴 무명의 터널에서 벗어나온 노력이 물거품이 됐다. 남산에 끌려가 뭇매를 맞던 기억을 그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러나 조용필은 좌절하지 않고 전국 명찰을 다니면서 판소리를 공부하면서 목소리를 단련했다. 1979년말 대마초 가수의 해금 조치와 동시에 동아방송 안평선 PD가 연락해 왔다. 곧 시작할 라디오극 의 주제가를 만들고 불러달라는 요청이었다. .. 더보기
천상천하 나훈아 천상천하 나훈아 사진 경향신문 사진부 11년 만에 펼쳐지는 나훈아 콘서트가 코 앞이다. 여기저기서 티켓 구할 수 없냐는 문의가 쇄도하지만 순식간에 매진된 티켓이 남아있을 리 없다. 오래 전 일이지만 나훈아와는 여러 차례 만나 인터뷰도 하고, 공연도 보러가면서 친분을 쌓은 적이 있다. 그러나 세상의 관계가 그렇듯이 기자와 취재원으로 만나던 시절의 일이지 그 이후엔 소원해 졌다. 게다가 나훈아의 잠적이 강산이 변하는 시간만큼 흘렀으니 나 역시 나훈아의 무대와 근황이 궁금할 수밖에 없다. 또 나훈아를 둘러싼 세간의 호기심 때문에 생긴 여러 가지 루머에 대해 한 번쯤 만나서 물어보고 싶다. 적어도 내가 아는 나훈아는 기자한테 구차한 변명을 하거나 대답을 회피하면서 있는 사실을 숨길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더.. 더보기
<나는 자연인이다>가 중년을 사로잡는 이유? 사진 경향신문 사진부 가 중년을 사로잡는 이유? 저녁 공양을 마친 스님이 / 절 마당을 쓴다 / 마당 구석에 나앉은 큰 산 작은 산이 / 빗자루에 쓸려 나간다 / 산에 걸린 달도 / 빗자루 끝에 쓸려 나간다 / 조그만 마당 하늘에 걸린 마당 / 정갈히 쓸어놓은 푸르른 하늘에 / 푸른 별이 돋기 시작한다 / 쓸면 쓸수록 별이 더 많이 돋고 / 쓸면 쓸수록 물소리가 더 많아진다. - 이성선, 백담사. 산촌의 밤은 일찍 온다. 여름철은 그대도 좀 낫지만 겨울에는 오후 네 시만 돼도 어둑어둑 해진다. 깊은 산중은 산그림자가 깊어서 더욱더 빨리 밤이 찾아온다. 그래서 산촌은 양지보다는 음지, 낮보다는 밤이 친숙하다. 어쩌면 그곳에 사는 사람들 역시 밝고, 시끄러운 것과는 정 반대로 어둡고, 조용한 것들과 더 친하.. 더보기
다시 활판이 그립다 다시 활판이 그립다 사진 경향신문 사진부 1980년대 중반 내가 처음 신문사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모든 것이 낯설고 새로웠다. 그 당시 신문사의 많은 부서 중에서 가장 눈길을 사로잡은 곳이 문선부(文選部)였다. 문장을 고르는 부서인가? 그러나 문선부의 풍경은 보통의 사무실과는 사뭇 달랐다. 켜켜이 쌓여 있는 납활자들과 그 사이사이 부지런히 손을 놀려 납활자를 고르는 문선공 형님들. 문선부는 신문이나 인쇄공장 등에서 원고대로 활자를 골라내는 부서였다. 무협지 풍으로 얘기하면 칼로 바람을 가르듯 활자를 골라내서 순식간에 목판에 조판을 해서 문장을 완성하는 문선공 형님들의 신공(神功)은 정말 놀라웠다. 기자가 쓴 원고의 속도보다 활자를 골라내서 조판을 하는 문선공들의 손놀림이 더 빨랐다. 세종대왕께서 만드신 .. 더보기
그녀가 떠났다 그녀가 떠났다 사진 경향신문 사진부 욕망이란 이름이 전차를 타고 -연극배우 윤소정 태초에 그녀를 장미라고 이름하고 신은 가시를 심어주었다. 가시 뒤에 욕망을 숨겨 놓았다 사막 위에 홀로 피어 도도하게 살도록 운명을 주고 그 이름과 분위기에 걸맞게 인생의 무대를 사랑하라 말했다 때론 수녀도 되고, 창녀도 되면서 신이 주신 사막 위의 생을 가시 끝에 달린 욕망을 온몸으로 뜨겁게 사랑했다 붉은 장미가 욕망의 힘으로 불타서 검은 장미가 될 때까지 그 장미가 뜨겁게 부서져 모래알이 될 때까지 그녀는 장미의 이름으로 살아갈 것이다 이제 기억도 가물가물 하지만 배우를 인터뷰 하고 기사 대신 시를 썼다. 그 칼럼을 위해 윤소정을 만났다. 오늘 장미가 부서져 모래알이 되었다. 우리 모두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더보기
결혼식 축시의 어떤 예 결혼식 축시의 어떤 예 이렇게 좋은 날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날이 기어이 올 줄 알았습니다 가을 하늘을 떠돌던 두 개의 별이 만나 초저녁 달빛 사이로 빛나는 이 날이 올 줄 알았습니다 참 먼 길 돌아왔습니다 그 사이 개나리는 수 없이 피고 지고, 단풍잎은 또 얼마나 얼굴을 붉혔는지요 몇 천의 붉을 노을이 서쪽 하늘을 물들였는지 다 알지도 못합니다 그 많은 날들을 보내면서 사랑은 사랑한다고 말해야 시작된다는 걸 왜 이제야 알았는지요? 하지만 어떻습니까? 이렇게 진득한 사랑을 시작했으니 모닥불처럼 타오르다 이내 식어버리는 그런 사랑 말고 폭풍우처럼 밀려와 나무를 뽑는 그런 사랑 말고 시골집 안방에 놓인 화로처럼 은근하고도 뜨거운 사랑 막 쪄낸 콩고물에 무친 인절미처럼 쫀득한 사랑 오늘.. 더보기
가을은 늙지 않는다 가을은 늙지 않는다 오광수 사진 경향신문 사진부 가을저녁 마음을 다쳐 끝내 몸살이다까치밥으로 남은 홍시 하나늑골 근처서 달랑거리다 툭,온몸 적시며 식은땀으로 흥건하다 가을은 하필 늙지도 않고 찾아와서 내 낡은 관절을 쑤시며 콕,첫사랑을 배신한 죄를 묻는가 모과향 나던 젖가슴을 가진 여자가마른 기침으로 찾아온 새벽거봐라 하며 지나가던 가을이아직 푸른 처녀의 허리에 손을 감아 콱,붉디 붉은 단풍들로 숨이 막힌다 절정에 오른 나무들이 얼굴 붉히며 흰눈 같은 혁명을 기다리는 새벽늙지도 않는 가을 때문에 마음 다친 사내가 폭설에 갇혀 길을 잃는다 젊은 가을 때문에 사무치면 지는 거라고비루한 몸들이 소리치지만 속 빨간 단풍을 어찌할 수 없다어느새 흰눈이 머리를 덮고 첫사랑의 화인(火印)도 천천히 지워진다. 더보기
호박 사진 경향신문 사진부 호박 오광수 밥솥에서 쪄 낸 호박잎에 보리밥을 올리고 강된장 한 숟가락 척 얹어서 입에 넣는다. 까슬까슬한 감촉이 혀끝에 머물더니 사박사박 씹히면서 목넘김이 부드럽다. 전해오는 식감을 따라 마음밭은 한달음에 고향집 뒤꼍 장독대까지 내닫는다. 할머니가 심은 호박씨에 할아버지가 똥지게 몇 번 져 나르면 씩씩한 호박순들이 투덜거리며 올라왔다. 그땐 몰랐다. 냄새 나는 똥 속에서 뒹굴어야 새순이 돋고 열매가 맺힌다는 걸. 벌들이 아양 떨면서 노란 호박잎에 입맞춤하면 잘생긴 애호박 하나 뚝딱 만들어졌다. 호박잎 사이 숨바꼭질 하면서 용케도 살아남은 호박들은 노랗고 탐스런 호박으로 늙었다. 나중에 알았다. 별 일 없이 늙어간다는 게 호박에게도 쉽지 않다는 걸. 호박잎에 모이는 빗소리가 탐스런 .. 더보기
'딴따라'의 왕따, 우리의 이중성 '딴따라'의 왕따, 우리의 이중성 배우 김민희. 사진 경향신문 사진부 우리 사회에서 이름 석자를 내걸고 산다는 것은 참으로 위험한 일이다. 이름 석자에 대한 책임감이 어느 사회보다 높기 때문이다. 조영남을 시작으로 박유천, 홍상수와 김민희, 김성민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면서 ‘모 아니면 도’의 사회에 거부감이 느껴졌다. 한 사람이 일생을 살다보면 잘 한 일보다 실수하는 일이 더 많고, 남의 모범이 되는 일보다 지탄을 받을 일을 더 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인간이기 때문에 저지르는 실수와 잘못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나 역시 날이면 날마다 실수하면서 산다. 부모에게 불효하고, 아내에게 죄를 짓는다. 자식에게 떳떳한 아버지도 못된다. 술 먹고 실수하고, 교통법규를 위반하고, 친구들에게 못할.. 더보기
홍만표와 조들호, 현실과 판타지 사이 홍만표와 조들호, 현실과 판타지 사이 의 주인공 박신양 KBS2 월화드라마 를 보면서 갑자기 욕지거리가 나왔다. 작가나 프로듀서, 열연한 배우들에게 미안한 이야기지만 시청자들에게 이런 판타지를 보여줘서 뭘 어쩌겠다는건지? 화가 났다. 말하자면 변호사 조들호(박신양)가 재벌총수와 지검장의 검은 고리를 밝혀내면서 그들을 통쾌하게 단죄한다는 뻔한 이야기가 이 드라마의 근간이다. 드라마의 외양은 분명 리얼리티를 앞세운 현실고발 드라마처럼 보이지만 드라마의 맥락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초극강 판타지일 뿐이다. 드라마가 현실 세상을 반영하는 리얼리티는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이 드라마는 설정 자체가 세상에 없는 이야기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공허하다 못해 어처구니가 없다 우선 이런 드라마를 공영방송에서 방영하고 있다는 .. 더보기
안성기, 배우로서의 시간 59년째 안성기, 배우로서의 시간 59년째 배우 안성기 / 사진 경향신문 사진부 배우 안성기(64)를 도형으로 표현한다면 정육각면체 같은 사람이 아닐까. 변의 길이와 내각의 크기가 모두 같은 정육각면체처럼 안성기는 어디 하나 흠잡을 데 없는 반듯한 인간의 전형이다. 모든 후배들이 본받고 싶어하는 배우의 멘토이자 한 시대를 모범적으로 살아가는 초로의 사내로서도 흠결이 없다. 배우로서도 삼각형이나 사각형보다 더 다채로운 이미지를 품고 있어서 보는 이들을 지루하지 않게 하는 마력도 있다. 마치 정육각면체를 이루고 있는 벌집처럼 늘 달콤한 꿀을 품고 있어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배우로서의 시간 59년째. 1957년 영화 에서 아역으로 데뷔한 이후 13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해왔다. 이나 의 젊은 안성기부터 나 .. 더보기
김완선, "이장희 선배가 내 인생의 멘토죠." "이장희 선배가 내 인생의 멘토죠." 사진 경향신문 사진부 그녀에게 붙어다니는 수식어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원조 섹시디바’는 엄정화나 이효리, 현아와 같은 걸출한 후배 섹시 여가수가 탄생할 때마다 그녀에게 붙어다니는 수식어였다. ‘한국판 마돈나’ 역시 춤과 노래를 겸비한 댄스여가수인 그녀를 설명하는데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또 그녀는 ‘10대 댄스여가수의 효시’였다. 데뷔가 열일곱살이었으니 그 나이 또래 가수 중에는 단연 으뜸이었다. 80년대부터 90년대 군생활을 했던 대한민국 남자들이라면 그녀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군통령’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요즘 들어서는 그녀의 이름 앞에 ‘방부제 미모’라는 수식어도 따라다닌다. 한창 바쁠 때는 스케줄을 맞추기 위해 헬기를 띄웠던 핫한 여가수였고,.. 더보기
한화고, 김성근 감독 한화고, 김성근 감독 연패에 시달리고 있는 김성근 감독. 체육부에서 근무해본 적이 없어서 프로야구의 내부 시스템에 대해 자세히 들여다볼 기회가 없었다. 그러나 ‘김성근 신화’의 지나친 맹신이 화를 부르고 있는 작금의 현실을 보면서 몇 마디 쓰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프로야구 팀을 한화와 그밖의 팀으로 나눌만큼 열성팬이기 때문이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했던가. 올 시즌을 시작하기 전 한화는 소위 전문가들 사이에 우승 후보로 꼽히던 팀이다. 동계시즌에 큰 돈을 들여서 전력보강을 했기에 팬들의 기대는 어느해보다도 높았다. 실제로도 연봉만으로는 프로야구 10개팀 중 단연 1위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본 지금 한화는 마치 성적만으로는 왕년의 삼미슈퍼스타즈를 방불케 한다. 20게임 가까이 치룬 지금 고작 .. 더보기
김수현과 김은숙, 이순재와 송중기 사이 김수현과 김은숙, 이순재와 송중기 사이 송중기, 사진 KBS 김수현과 김은숙을 같은 반열에 올려놓고 이야기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김수현 작가가 인기 드라마 작가로 군림하기 시작한 1960년대는 1973년생인 김은숙 작가가 태어나기도 전이다. 그런가 하면 이순재 선생과 송중기를 같은 반열에 올려 놓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이제 갓 서른살이 된 송중기에게 80세의 이순재 선생은 거의 할아버지 뻘이다.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는 KBS 드라마 를 얘기하려고 보니 큰 대조를 이루고 있는 SBS 주말극 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김은숙과 송중기의 드라마 , 김수현과 이순재의 드라마 는 정통과 모던의 충돌, 구세대와 신세대의 극단적 대비, 영화적 기법의 드라마와 전통적인 안방극장용 드라마의 전형들이어서 지켜보는 것.. 더보기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이원규(시인) 지리산 노고단. 경향신문 사진부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천왕봉 일출을 보러오시라삼대째 내리 적선한 사람만 볼 수 있으니아무나 오지 마시고 노고단 구름바다에 빠지려면원추리 꽃무리에 흑심을 품지 않는이슬의 눈으로 오시라 행여 반야봉 저녁노을을 품으려면 여인의 둔부를 스치는 흑심을 품지 않는이슬의 눈으로 오시라 굳이 지리산에 오려거든불일폭포의 물 방망이를 맞으러벌 받는 아이처럼 등짝 시퍼렇게 오고벽소령의 눈 시린 달빛을 받으려면뼈마저 부스러지는 회한으로 오시라 그래도 지리산에 오려거든세석평전의 철쭉꽃 길을 따라온몸 불사르는 혁명의 이름으로 오고최후의 처녀림 칠선계곡에는아무 죄도 없는 나무꾼으로만 오시라 진실로 진실로 오려거든섬진강 푸른 산 그림자 속으로백사장의 모래알처럼.. 더보기
말입니다. 너무 거슬리지 말입니다 말입니다. 너무 거슬리지 말입니다 군에서 제대한 송중기를 앞세운 KBS 2TV 수목드라마 가 여심을 사로잡으면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6회 방영만에 30% 가까운 시청률을 올리면서 의 시청률을 넘어섰다. 그런데 이 드라마를 보면서 유난히 거슬리는 말이 있다. 바로 “말입니다”다. “그때 허락 없이 키스한 거 말입니다. 뭘 할까요 내가. 사과할까요?, 고백할까요?” 극중 특전사 대위 유시진 역을 맡아 열연 중인 송중기가 상대 역인 송혜교(강모연 역)한테 했던 대사다. 이뿐 아니라 드라마에 수도 없이 등장하는 모든 군인 배역들은 툭하면 “말입니다”를 남발한다. “말입니다”는 군대에서 쓰이는 매우 특수한 은어 중 하나다. 대한민국 남자들이면 다 아는 사실이지만 군대에서 어미에 ‘다’와 ‘까’만을 쓰도록 되어있다.. 더보기
추자, 미조, 인희. 그녀들의 귀환 추자, 미조, 인희. 그녀들의 귀환 가수 박인희. 경향신문 사진부 그녀들이 속속 귀환하고 있다. 미당 서정주의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 같은 꽃’이라는 시구처럼 그녀들이 거울 앞, 아니 무대 앞으로 귀환했다. 김추자와 정미조, 박인희. 사실 대중들로부터 한동안 잊혀졌던 그들이었다. 젊은날 각기 다른 색깔로 노래하면서 인기를 얻었던 이들 여가수들은 무려 30여년의 세월동안 대중들과 거리를 두고 각자의 길을 걸으면서 살아왔다. 세 사람 중에서 가장 먼저 컴백한 것은 김추자였다. 70년대 ‘담배는 청자, 노래는 추자’라는 말을 유행시킬 정도로 김추자의 인기는 대단했다. 소위 신중현 사단의 대표주자였던 김추자는 특유의 비음에서 우러나오는 노래는 물론, 파격적인 의상과 섹시한 춤으로 젊은층들을 사로.. 더보기
신중현이 말하는 '미인' 탄생 비화 신중현이 말하는 '미인' 탄생 비화 검열에 저항한 신중현과 엽전들의 2집앨범 재킷사진. 왼쪽부터 이남이, 신중현, 권용남 “그 당시에 전국을 돌면서 공연을 자주 다녔어요. 공연장마다 미인들이 많이 왔죠. 한창 젊을 때니까 그쪽으로 눈길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잖아요. 미인은 예나 지금이나 남자들의 로망이죠. 내가 자꾸 보게 되는데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겠구나 해서 노랫말로 쓰게 됐어요.” 일흔살이 훨씬 넘은 노가수는 청춘의 한때 공연장을 찾아와 눈길을 끌던 미인들을 기억 속에서 불러냈다. 그렇게 쓰여진 노랫말은 상식을 뛰어넘는 파격이었다.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자꾸만 보고 싶네’를 끊임없이 반복하는 노랫말이라니. 74년 8월 신중현과 엽전들을 결성해 발표한 첫앨범의 수록곡 ‘미인’은 한국 록의 역사를 .. 더보기
결국 ‘마돈나’를 못보고 말았다 결국 ‘마돈나’를 못보고 말았다 허브 릿츠의 사진 마돈나. 허브릿츠 재단 제공 팝스타 마돈나가 지난 4일(현지시간) 대만 타이베이에서 월드투어의 일정으로 펼쳐진 공연 도중 앙코르곡을 부르면서 대만 국기를 어깨에 걸쳤다가 논란을 불러왔다는 외신을 접했다. 일부 언론은 제2의 ‘쯔위사태’로 비견하기도 했다. 지난해 마돈나가 새 앨범 발표를 기념하며 10번째 월드투어에 나서면서 “오세아니아, 아시아 지역 일정도 곧 공개할 것”이라고 밝힐 때만 해도 그녀의 첫 내한공연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녀는 대만까지 오면서도 한국땅에는 오지 못했다. 마돈나는 록그룹 U2와 더불어 ‘내한공연을 하지 않은 마지막 팝스타’로 꼽힌다. 그는 1985년 ‘더 버진 투어’ 이후 9번의 월드투어를 펼쳤으며, 이중에.. 더보기
창고에서 잠자는 영화를 만든 까닭은? 창고에서 잠자는 영화를 만든 까닭은? 영화 의 포스터 내가 아는 후배 영화감독은 2년 전 아주 어렵게 영화 한 편을 찍었다. 그동안 총 4편의 영화를 세상에 내놓은 바 있으니 영화감독의 이력으로는 크게 모자랄 게 없는 중견감독이다. 총 제작비 8천만원. 그것도 악전고투하여 모은 돈으로 제작한 영화다. 그런데 그의 영화는 영화제에 잠깐 선보인 것 외에는 세상 사람들과 대면할 기회가 없었다. 물론 그의 영화가 수백억의 자본이 투입되어 빵빵한 스타가 나오는 그런 영화는 절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의 영화를 좋아한다. 우선 메이저시장에서 유통되는 영화들과는 분명히 다른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여전히 실험적이다. 또 세상을 바라보는 삐딱한 시선도 마음에 든다. 그의 영화가 창고에서 썩어야 하는 이유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