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따라'의 왕따, 우리의 이중성
배우 김민희. 사진 경향신문 사진부
우리 사회에서 이름 석자를 내걸고 산다는 것은 참으로 위험한 일이다. 이름 석자에 대한 책임감이 어느 사회보다 높기 때문이다. 조영남을 시작으로 박유천, 홍상수와 김민희, 김성민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면서 ‘모 아니면 도’의 사회에 거부감이 느껴졌다.
한 사람이 일생을 살다보면 잘 한 일보다 실수하는 일이 더 많고, 남의 모범이 되는 일보다 지탄을 받을 일을 더 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인간이기 때문에 저지르는 실수와 잘못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나 역시 날이면 날마다 실수하면서 산다. 부모에게 불효하고, 아내에게 죄를 짓는다. 자식에게 떳떳한 아버지도 못된다. 술 먹고 실수하고, 교통법규를 위반하고, 친구들에게 못할 짓을 한다. 그러나 어느 정도 익명성을 보장받기에 법망에 걸려들어 경찰서에 끌려가거나 법정에 설 일을 하지 않는다면 대개 공자의 말씀처럼 하루 세 번 반성하고 살면 된다. 아니 일주일에 한 번만 반성하면 된다. 모르긴 몰라도 웬만한 사람들이 음주운전을 한다 해도 각종 미디어에 대서특필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름 석자를 내걸고 사는 사람들은 그러한 반성이 통하지 않는다. 그들이 실수나 잘못이 세상에 알려지는 순간 그들은 혹독한 여론재판에 시달린다. 특히 연예인의 경우는 그 정도가 심하다. 최근 조영남 사건이나 박유천 사건이 각종 미디어에 보도된 기사건수가 1,000건~3,000건에 이른다는 통계가 있다. 지면을 갖고 있거나 온라인미디어들이 앞다퉈 사건을 보도한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경찰이나 검찰의 조사도 시작되기 전에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는 기사들이 넘쳐난다. 심지어 마치 윤리선생이라도 된 듯이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죄를 묻는 기사들도 넘쳐난다. 김민희의 경우 ‘불륜녀’로 낙인찍혀서 더 이상의 연기생활을 이어나갈 수 없다고 단정 짓는다. 그녀의 ‘불륜’은 이미 간통죄 폐지로 고소할 수도 없고, 누군가가 넌 불륜녀이니 더이상 연기할 수 없다고 판결할 수도 없는데 말이다. 물론 '불륜'이 잘 한 일은 아니지만 그것을 이유로 그녀가 평생 다져온 일터를 빼앗을 수는 없다. 만일 피해 당사자 매일매일 넘쳐나는 온갖 기사를 스크랩하여 일괄적으로 명예훼손 등으로 고소한다면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보상금이 나오지 않을까.
이쯤 되니 이문열의 소설 <익명의 섬>의 여주인공인 여교사와 같은 비밀을 갖기에는 애시당초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 혹독한 여론재판이 세상의 모든 유명인에게 똑같이 적용되지 않는다. 가끔, 아니 자주 찌라시를 접한다. 그런데 그 찌라시에 보면서 실소를 금치 못할 때가 많다. 도대체 있지도 않은 이야기를 소설처럼 써서 올리는 그 누군가의 창작능력이 감탄스러울 정도다. 대개 그 피해자는 정치인이나 관리, 아니면 사회적으로 유명한 경제인들이 아닌 연예인들이다. 그런데 SNS 등을 통해 유포되는 연예인 찌라시를 본 사람들은 보는 순간 객관화 한다. 이틀이 멀다하고 “그게 사실이냐?”는 질문을 받는다. 미디어에 대서특필 되지 않아도 연예인들은 이상한 변태가 되어 있거나, 천하의 바람둥이가 돼 있거나, 파렴치범이 되기도 한다.
이상한 것은 우리 사회가 연예들에게 유독 높은 도덕적 기준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나는 높은 도덕적 기준을 요구할 사람은 정계, 재계, 관계 혹은 법조계의 고위직들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대개 우리가 내는 세금을 만지거나, 그 세금을 쓰는 일을 결정하거나, 그것들이 잘못 쓰였을 때 단죄를 해야할 사람들이다. 그들이 법을 어겼을 때 애먼 이들이게 큰 피해가 돌아온다. 그들이 정책적인 결정을 잘못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소위 재벌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불법적인 경영을 하면 고스란히 주주들, 더 넓게는 국민들의 주머니를 위협한다.
연예인들을 평소 ‘딴따라’라고 폄훼한다. 딴따라에는 유교적 사회에서 광대를 천시하던 시각이 반영돼 있다. 또 한편으로는 우리를 즐겁게 해주는 이들에 대한 친밀감이 반영된 표현이다. 그들이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는 그들의 삶이 자유롭고 즐거워야 한다. 그런데 지금 그들의 삶이 수많은 감시카메라와 파파라치에 둘러싸여 전혀 즐겁지가 않다. 누군가는 청소년들에게 모범이 돼야하는 사회적 책임감을 강조하면서 그들의 잘못을 꾸짖지만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다. 그들이 우리들의 윤리선생이나 도덕선생이 아니다. 내 경험으로 너무나 바른 생활을 하는 연예인은 좋은 연기도, 좋은 노래도 부르지 못한다. 사랑도 해보고, 이별도 해보고, 사업에 망해보고, 사람들 사이에서 부대껴봐야 좋은 노래도 부르고, 훌륭한 연기도 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딴따라’에게 높은 도덕적 기준을 적용하여 ‘왕따’ 시키는 재미에 빠져 있다. 한때는 노래가 좋다, 연기가 좋다, 한류에 이바지 한다고 박수를 치다가도 그들의 실수나 잘못이 생기면 한꺼번에 달려들어 만신창이를 만들어 놓는다. 너는 이제 절대로 우리와 더불어 살 수 없으니 꺼지라고 발길질을 한다. 그렇게 해야할 그룹들은 따로 있는데 말이다.
유명인들의 사생활이 궁금한 건 나도 마찬가지다. 내 나이 또래의 홍상수감독의 연애와 불륜 기사를 접하면서 ‘부럽거나 욕하면 지는거다’라고 생각했다. 자, 지금부터라도 우리가 그들을 심판하거나 단죄하지 말자. 그냥 있는 그대로 그들을 받아들이자. 조영남이 대작을 그려서 팔았다면 그걸 모르고 속아서 샀다고 생각한 사람과 해결하면 될 일이다. 조영남이 얄밉다면 술자리에서 즐겁게(?) 씹고서 끝낼 일이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장차 우리의 자식들이 살아갈 세상을 망가뜨리는 거대 자본, 거대 권력과 싸우는 일이다. 우리의 숨구멍을 막는 미세먼지의 주범들과 싸우고, 내 호주머니를 축내는 세금도둑들을 몰아내는데 열중하고, 국민들의 녹을 먹으면서 뒤로 딴주머니를 채우는 도둑들과 싸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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