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수저? 어이없다고 전해라
청계천을 밝힌 트리, 경향신문 사진부
올해의 유행어에 대한 결산 기사가 한창이다. 메르스가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간 올해의 유행어들을 살펴보면서 씁쓸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유행어가 우리 사회의 단면을 반영하는 바로미터라고 한다면 올해의 유행어들은 예년에 비해서 훨씬 부정적이다. 유행어가 갖고 있는 함의들을 들여다보면 희망이나 행복과는 거리가 먼 절망이나 불행과 이웃하고 있다.
우선 SNS 등을 통해 확산된 ‘헬조선’이나 ‘금수저’라는 단어를 보자. 여기에는 극심한 취업난과 장기적인 경기침체로 인해 N포세대로 전락한 청년층들의 절망과 분노가 담겨있다. 갓 스무살의 청년이 “정신적 귀족이 되고 싶었지만, 생존을 결정하는 건 전두엽 색깔이 아닌 수저 색깔이었다”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시대는 결코 행복할 리 없다. 일부 기성세대들은 젊은이들을 향해 노력도 안하고 엄살부터 부린다지만 취업을 둘러싼 각종 경제지표가 오늘을 사는 젊은이들이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부의 세습은 이미 예고된 것인지 모른다. 부모의 경제력이 없으면 교육에서 소외되고, 시골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어도 본인이 노력만 있으면 검사, 판사가 되던 시절도 물 건너갔다. 심지어 학력에 따라 군대 가는 서열도 정해지는 나라가 돼버렸다.
세월호에 이어 메르스사태가 이어지면서 정부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에 관련된 유행어도 부정적이긴 마찬가지다. 이런 문제에 대해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행태를 비꼰 ‘아몰랑’은 우리 사회 불신의 극치를 보여준다. 올해 1천3백여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면서 흥행 신기록을 쓴 영화 <베테랑>의 재벌3세 조태오(유아인)는 420만원을 받기 위해 1인 시위를 하는 노동자를 죽음으로 몰아넣으면서 “어이가 없네”라는 유행어를 만들어 냈다. 따지고 보면 <베테랑>의 흥행은 대한항공 땅콩회항 사건 등 재벌의 갑질에 분노한 시민들이 만든 것이었다.
그와중에 오랜 무명생활 끝에 ‘백 세 인생’을 부른 이애란의 노래에서 기인한 ‘~한다고 전해라’가 유행어가 된 건 여전히 우리 사회의 유머가 살아있음을 보여준다. ‘전해라’를 둘러싸고 온갖 패러디가 양산되면서 그나마 우리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했다. 데뷔 17년차 개그맨 김영철이 <무한도전>에서 무심코 던진 응원의 한 마디 ‘힘을 내요 슈퍼 파월(power)~’ 역시 신산한 올해의 삶을 위로하는 유행어였다.
한 해를 정리하는 대학 교수들이 고른 사자성어가 세상이 온통 어지럽고 무도(無道)하다는 ‘혼용무도(昏庸無道)’였다. 희망을 담은 사자성어가 꼽힐 수 있는 날이 언제일까?
내년에는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 소환한 그 시절의 유행어 ‘반갑구만, 반가워요’처럼 신나는 유행어가 연달아 터져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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