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추억공화국
퇴행적인 추억이 유행하는 건 오늘이 불행하기 때문이다.
사진 경향신문 사진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쓴 프랑스의 소설가 마르셀 프로스트는 ‘추억은 잔인한 것이다’라고 이야기 했다. 기억을 가진 모든 인간들에게 추억은 존재한다. 그러나 추억은 마냥 행복하고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서울 일원의 위성도시에 사는 초등학교 3학년과 초등학교 2학년이 어느날 처음 만나 대화를 나눴다.
“얘, 너는 몇 학년이니?”
“2학년인데.”
“음 아직 천국에 살고 있구나. 3학년이 돼봐라. 너는 지옥을 경험하게 될 거야.”
“지옥? 뭐가 지옥인데”
“흐흐, 그건 네가 3학년이 되면 바로 알게 될거야.”
3학년인 초등학생에게 학원에 다니지 않아도 되는 1~2학년은 천국이었다. 본격적으로 영어학원과 수학학원에 다니면서 하루를 쪼개야 하는 3학년에게 2학년 시절까지는 천국이었던 셈이다.
요즘 대한민국은 ‘추억공화국’이다. 미디어가 만들어내는 추억상품은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tvN의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은 10여년 저쪽 쌍문동을 불러냈다. 드라마에서 나오는 그당시 노래들이 음원차트의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으며, 그당시 유행어까지 다시 유행시킬 조짐이다. 유통업계에서는 80년대 잘팔리던 과자들도 다시 팔려나간다니 그 영향력이 대단하다.
드라마 뿐이 아니다. 가요와 예능 프로그램이 만들어내는 추억상품도 만만치 않다. <무한도전><7080콘서트><불후의 명곡><복면가왕><히든싱어>에 이르기까지 10년, 20년된 노래와 가수들을 불러내서 부활시킨다.
맥락은 다르지만 박근혜정부는 숨만 쉬고 있던 새마을 운동을 부활시켜서 개발도상국 등에 전파하겠다고 나선다. 역사교과서를 국정화 시키겠다는 발상이나 예술검열 등도 어찌보면 ‘나쁜 추억’을 되살리고 싶은 의지가 반영된 게 아닐까.
이처럼 추억상품이 우리 시대의 화두가 된 가장 큰 이유는 당대의 어둠 때문이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경제형편 때문에 청년들은 청년들대로 중년들은 중년들대로 추억에 매달리는 것이다. 당대가 행복하고 행복하다면 추억상품들이 히트칠만한 여지를 남겨두지 않겠지만 오늘 우리는 어느 누구 하나 행복한 얼굴을 찾아보기 힘들다.
예전보다 인간냄새 나는 공간은 자꾸만 좁아진다. 쌍문동 뒷골목에서 옹기종기 모여서 정을 나누던 시대보다 미디어는 진화하고, 삶의 공간은 세련돼 졌지만 그것과 반비례하여 인정은 각박해졌다. 페이스북을 통해서 서로 교감하고 꾹꾹 좋아요를 누른들 그 공허함이 채워지지 않는다. 정치나 경제도 좋은 소식보다는 나쁜 소식들이 줄을 이으면서 우리를 짓누른다. 그러나 저 80년대나 90년대 희망과 열정이 불타올랐던 시대로 돌아갈 수는 없다. 크리스마스 캐롤이 실종된 연말, 지옥을 경험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희망이라는 단어가 찾아왔으면 좋겠다. 이 잔인한 추억공화국에서 벗어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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