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고, 김성근 감독
연패에 시달리고 있는 김성근 감독.
체육부에서 근무해본 적이 없어서 프로야구의 내부 시스템에 대해 자세히 들여다볼 기회가 없었다. 그러나 ‘김성근 신화’의 지나친 맹신이 화를 부르고 있는 작금의 현실을 보면서 몇 마디 쓰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프로야구 팀을 한화와 그밖의 팀으로 나눌만큼 열성팬이기 때문이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했던가. 올 시즌을 시작하기 전 한화는 소위 전문가들 사이에 우승 후보로 꼽히던 팀이다. 동계시즌에 큰 돈을 들여서 전력보강을 했기에 팬들의 기대는 어느해보다도 높았다. 실제로도 연봉만으로는 프로야구 10개팀 중 단연 1위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본 지금 한화는 마치 성적만으로는 왕년의 삼미슈퍼스타즈를 방불케 한다. 20게임 가까이 치룬 지금 고작 3승이다. 모르긴 몰라도 한화팬들이 롯데팬이나 기아팬처럼 다혈질 팬(?)들이었다면 벌써 선수단 차에 계란 투척이라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한화팬들은 가장 스트레스를 받는 이들이 김성근 감독이나 선수들일 것이라는 배려(?)로 화를 참고 있다.
그 중심에 김성근 감독의 아집이 있다. 김성근 감독은 평생 쌓아온 야구인생이 마치 마무리투수가 무너지듯 고꾸라지는 현실을 바라보며 참담할지도 모른다. 자신이 키운 선수들이 감독이 된 팀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으니 자존심도 무척 상할 것이다.
그러나 그의 부임 이후 한화는 프로팀이 아닌 고교팀이 됐다. 매일매일 일정 수준에 올라오지 않으면 나머지 공부를 하는 열등생들이 돼서 지옥의 펑고를 견뎌야 한다. 마치 초일류 기업의 사원들이 삭발을 한 채 머리띠를 두르고 ‘열공’하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안쓰럽기까지 하다. 실적이 나쁘니 퇴근하지 말고 일하라는 회장의 지시를 받은 임원들처럼 부들부들 떨고 있다. 물론 한화가 만년 꼴찌 팀이었기에 반등의 계기가 필요했지만 김성근 감독은 마치 야구 기초가 안돼있는 고등학교 선수들을 굴리듯 한화 선수들을 조련했다. 왕년에 만화가 이현세가 발표한 <공포의 외인구단>은 야구계에서 퇴출당한 퇴물들이 모여 신화를 창조한다. 그러나 그건 만화일 뿐이다. 그리고 한회선수들이 퇴물들도 아니다.
요즘 한화의 경기를 보면 패턴이 똑같다. 마치 재방송을 보는 것처럼 선발투수가 초반에 우르르 무너진 뒤 불펜투수들이 번갈아 나와 꾸역꾸역 막는다. 집중타는 터지지 않고 노아웃 만루에서 허무하게 끝나는 이닝들이 쌓인다. 그러다보니 덕아웃은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초상집 분위기다.
여기까지 오면서 몇몇 장면들이 생각난다. 우선 노장들의 영입이다. 김감독은 당장 오늘 쓰기 위해 미래의 자원들을 내주고 노장으로 분류되는 현재의 자원들을 데려왔다. 또 한화의 코치를 맡고 있던 장종훈이나 한용덕 등 프랜차이즈 스타들이 줄줄이 팀을 떠났다. 그 대신 김성근 감독의 아들이 전력분석팀장으로 왔다. 마치 대기업 회장이 자신의 자식을 요직에 기용하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또 팀의 주축투수인 로저스의 머리염색을 둘러싼 논란도 있었다. 아니 고등학교 야구선수도 아니고 프로야구팀에서 생긴 논란치고는 고약하다. 최근 일본인 코치의 이탈도 이례적이었다. 프로야구의 세계가 냉정한 실적의 세계라 해도 한동안 한화를 위해 헌신했던 한상훈 선수가 쓸쓸히 팀을 떠나기도 했다. 뭐 야구와 크게 상관이 없을 지도 모르지만 김성근 감독이 청와대 초청으로 청와대 사람들을 상대로 특강을 한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 장면이었다.
아직도 한화의 성적이 나쁜 건 선발진 구성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라고 얘기한다. 그렇다면 김성근 감독은 그동안 뭘 했다는 말인가? 시즌에 맞춰 선발진을 꾸리지 못한 것은 전적으로 감독의 책임이다. 모든 선수들의 상태를 최적의 상태에 맞춰 시즌을 준비하는 건 선부들이나 코치의 몫이기도 하지만 최종 책임은 감독이 져야 한다.
야구는 '팀워크'와 '신바람'의 경기다. 지금 한화야구엔 이 두 가지가 없다. 안되다보니 선발로 나오는 투수들은 지나치게 긴장하여 볼넷을 연발하고, 잘 치던 타자들의 방망이가 결정적일 때 헛돌고, 수비수들은 결정적인 실책을 저지른다.
감히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심정으로 애기하고 싶다. 앞으로 한 달간 감독 대행체제로 가자. 김성근 감독은 한 달 정도 쉬시면서 당신이 쌓아오신 야구에 대한 사색의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전적으로 당신의 방법이 틀리다고 말하는 것 아니다. 그러나 김감독이 덕어웃에 앉아 있는 한 팀워크와 신바람을 기대할 수 없다. 잘 웃고 떠드는 정근우의 농담이 되살아나고, 로사리오 같은 외국인 용병들의 제스처가 커져야 한화야구가 살아난다.
프로들은 자신의 가족들을 키워야하는 절대절명의 책임감이 있다. 젊은 혈기 때문에 야구 말고도 관심이 많은 고등학교 야구선수들을 다루듯 하면 절대로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수 없다. 언젠가 이 지옥같은 순간을 극복하고 한화가 반등하는 시기가 올 것이다. 그러나 시즌 초반 열성팬들이 받은 상처는 치유되기 힘들 것이다. 김성근 감독이 평생 쌓아온 야구에 대한 철학과 신념, 또 그가 보여준 성과보다 더 중요한 건 ‘팬심’이다. 이번주부터 마음껏 치고, 때리고, 달리는 신바람 나는 한화야구를 보고 싶다. 한 번 지고, 한 번 이기는 엎치락 뒤치락 하는 야구를 보고 싶다.
야구를 개뿔도 모르는 문외한이 지껄여서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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