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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전’에 희생당한 삶 새해는 휴대폰 알림음과 함께 왔다. 지인들이 보낸 메시지들이 주루룩 뜬다. 한 해 고마웠다, 복 많이 받으시라, 내년에는 자주 만나자. 대개 그런 내용이다. 보신각 종이 울리는 순간 ‘카카오톡’에서는 집단 채팅이 시작된다. ‘페이스북’에도 이런저런 메시지들이 올라왔다. 뉴욕에 있는 친구는 타임스퀘어 광장에서 찍은 사진을 올렸고, 오클랜드에 있는 지인은 스카이 타워의 화려한 불꽃놀이 동영상을 올린 뒤 안부를 물었다. 대신 내 책상 위에는 크리스마스 카드나 연하장이 거의 사라졌다. 얼리어답터도 못되는 중년 사내의 연말연시가 이랬으니 이 나라 많은 이들의 새해도 별반 다르지 않았으리라. 불과 1년 전만 해도 볼 수 없었던 풍경이다. 새해 신새벽 아들 녀석과 함께 해돋이를 보러 뒷산에 올랐다. 오르기 전 휴대폰.. 더보기
다시 ‘우상의 시대’에 서서 ‘하나, 하나! 왼발, 왼발! 오와 열, 오와 열!…중략…그는 반평생을 연병장 아니면 운동장에서 보낸 사나이답게 군중을 휘어잡는 재간을 터득하여 비상금처럼 휴대하고 다녔다.’ 70년대 발표된 소설가 윤흥길의 단편 ‘제식훈련변천약사(諸式訓練變遷略史)’는 방학기간을 이용해서 1급 정교사 강습을 받게 된 중·고교 체육교사들의 제식훈련을 소재로 당대의 야만성과 폭력성을 고발한 수작이다. 우연히 이 작품을 다시 읽다가 고교 시절 제식훈련에 얽힌 안 좋은 추억이 떠올랐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70년대에 고교 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남녀 불문하고 누구나 교련복을 입고 군사훈련을 받았을 것이다. ‘오와 열’이 생명인 제식훈련은 물론 총검술 16개 동작, M1소총 분해와 조립 등 일찌감치 ‘군대맛’을 봐야 했다. 그 시절.. 더보기
K형, 곧 겨울입니다 ‘요즘 어떻게 사느냐고 묻지 마라 / 폐사지처럼 산다 / 요즘 뭐하고 지내느냐고 묻지 마라 / 폐사지에 쓰러진 탑을 일으켜세우며 산다 / (중략) / 가끔 웃으면서 라면도 끓여먹고 / 바람과 풀도 뜯어먹고 / 부서진 석등에 불이나 켜며 산다 / 부디 어떻게 사느냐고 다정하게 묻지 마라 / 너를 용서하지 못하면 내가 죽는다고 / 거짓말도 자꾸 진지하게 하면 / 진지한 거짓말이 되는 일이 너무 부끄러워 / 입도 버리고 혀도 파묻고 / 폐사지처럼 산다’(정호승 ‘폐사지처럼 산다’ 일부) K형. 시인 정호승의 신작 시집 을 읽다가 시편마다 뚝뚝 묻어나는 비애와 상처의 무게를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정말 누군가에게 다정하게 어떻게 지내느냐고 묻기도 힘든 요즘입니다. 특히 이 나라 중장년들의 삶이란 게 대략 난감하기..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