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썸네일형 리스트형 이렇게 좋은 날 이렇게 좋은 날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습니다 / 이렇게 아름다운 날이 기어이 올 줄 알았습니다 가을하늘을 떠돌던 두 개의 별이 만나 / 초저녁 환한 달빛 아래 빛나는 이 날이 올 줄 알았습니다 참 먼 길 돌아왔습니다 / 그 사이 개나리는 피고지고, 단풍잎은 또 얼마나 얼굴을 붉혔는지요? / 몇 천의 붉은 노을이 서쪽 하늘을 물들였는지 다 알지도 못합니다. / 그 많은 날들을 보내면서 / 사랑은, 사랑한다고 말해야 시작된다는 걸 / 왜 이제야 알게 됐는지요? 하지만 어떻습니까? 이렇게 진득한 사랑 시작했으니…. / 모닥불처럼 훌훌 타오르고 이내 식어버리는 그런 사랑 말고 / 폭풍우처럼 밀려와 나무들을 뽑아버리는 그런 사랑도 말고 / 시골집 안방에 놓인 화롯불처럼 은근하고 뜨거운 사랑 / 막 쪄내서 콩고물에.. 더보기 [아이콘, 그때 그 시절]③흑백TV 시대의 영웅들 금성TV를 기억하는가. 1966년 이 땅에 첫선을 보인 요술상자의 이름이다. 지금의 LG가 만든 흑백TV는 고단한 시대를 살던 이들에게 마법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1970년 TV 보급대수가 30여 만대 뿐이었으니 한 동네에 한두대의 TV가 고작이었다. 집에 TV가 있다는 건 부의 상징이었고, 그것은 곧 권력이었다. 어린시절 어른이건 아이건 TV를 보기 위해 이웃집으로 마실을 갔다. TV가 있는 집의 아이는 평소 친한 친구만 ‘입장’시켰다. 여름날 저녁 시골마을의 안마당에 TV를 내놓고 온동네 사람들이 둘러앉아 TV를 보는건 그리 낯선 풍경이 아니었다. 코흘리개 아이들은 시골마을 중요한 프로레슬링 시합이 있는 날이면 동네 만화가게에서 돈을 내고 봐야만 했다. 타잔과 형사 콜롬보를 기억하는 독자라면 필시 .. 더보기 [아이콘, 그때 그시절]①1970년대의 이소룡 퀴퀴한 냄새가 진동하는 변두리극장, 이본동시상영관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1973)이라는 영화였지만 제목은 중요하지 않았다. 부르스 리, 이소룡을 그쯤에서 만났다. 바야흐로 이 땅에는 새마을운동으로 '잘 살아보세'라는 구호가 난무했지만, 여전히 보릿고개 넘기가 힘들었던 시기였다. 머리에 기계독이 오른 까까머리 중학생, 여드름 투성이의 고등학생들은 저마다 2편 동시상영관으로 몰려갔다. 당시만 해도 소위 개봉관에 학생들이 출입하는 건 자유롭지 못했기에 동시상영관이나 쇼도 보고 영화도 보는 극장은 학생들의 명소였다. 더군다나 이소룡의 영화는 미성년자입장불가 딱지가 붙은 영화가 대부분이었다. 150원만 내면 매일 체육선생에게 얻어터지고, 지긋지긋한 수학공식을 외워야 했던 현실에서 잠시라도 탈출할 수 있었다. .. 더보기 이전 1 ··· 28 29 30 31 32 33 34 ··· 4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