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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라, 조덕배 일어나라, 조덕배 사진 경향신문 사진부 tvN드라마 의 한 장면. 덕선과 택이가 키스신을 연출한다.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몽환적 분위기에서 펼쳐진 사랑하는 사람들의 입맞춤이 보는 이들의 가슴을 애틋하게 만들었다. 그 장면에서 흐르는 노래가 조덕배의 명곡 ‘꿈에’였다. ‘꿈에 어제 꿈에 보았던 / 이름 모를 너를 나는 못잊어 / 본 적도 없고 이름도 모르는 / 지난 꿈 스쳐간 여인이여 / 이 밤에 곰곰히 생각 해보니 / 어디선가 본 듯한 바로 그 모습 / 떠오르는 모습 잊었었던 사랑 / 어느 해 만났던 연인이여 / 어느 가을 만났던 사람이여 / 난 눈을 뜨면 꿈에서 깰까봐 / 나 눈 못뜨고 그대를 보네 / 물거품처럼 깨져버린 내 꿈이여 / 오늘 밤에 그대여 와요.‘ 나는 젊은 청춘 남녀의 키스신 때문이 아.. 더보기
김광석과의 마지막 인터뷰 김광석과의 마지막 인터뷰 대구 김광석거리, 고 김광석의 동상. 경향신문 사진부 1995년 8월, 대학로 학전소극장. 불과 200석 남짓의 소극장에 발디딜 틈없이 관객들로 가득찼다. 보조의자에 앉아서라도 공연을 보겠다는 팬들의 성화에 작은 소극장의 계단에도 보조의자가 놓여졌다. 객석의 관객들은 20대와 30대 초반이 주류를 이뤘고, 남성팬보다는 여성팬들이 훨씬 많았다. 그때 김광석은 소극장 1천회 공연이라는 대기록을 앞두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서서히 조명이 밝아지면서 그가 하모니카 전주를 시작했다. 술렁이던 객석은 이내 조용해지고 하모니카 소리보다 더 슬프고, 아름답고, 때로는 힘이 넘치는 김광석의 노래가 이어졌다. 대부분 김광석의 열혈팬이었지만 처음 그의 라이브를 지켜보는 관객들은 숨소리조차 음악으로 .. 더보기
최인호세대와 ‘이생망’ 사이 최인호세대와 ‘이생망’ 사이 영화 포스터 요즘 유행어 중 하나가 ‘이생망’(이번 생애는 망했어)이란다. 그런데 이 유행어의 근원지가 20대 청년이라는 점에서 문제는 심각하다. ‘보이스 비 엠비셔스(Boys be ambitious)’를 외쳐도 모자랄 젊은층들 사이에서 이처럼 자괴적인 말이 유행한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슬픈 일이다. 그 대부분의 책임은 나와 같은 기성세대에 있다는 건 피할 수 없다.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위로를 한들 ‘삼포세대’인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통할 수 있겠는가. 그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빛나는 청춘의 한때를 구가했던, 지금은 고인이 됐거나 장년층에 접어든 그네들의 이야기가 하고 싶어졌다. 밥 세끼 먹기가 쉽지 않았던 70년대에 불같은 열정으로 그들의 생애에서 가장 빛나는 한때를 구가했던.. 더보기
스토리가 사라진 드라마들 스토리가 사라진 드라마들 사진 제공 MBC 한때 드라마 한 편 때문에 장안의 차량통행이 줄던 시절이 있었다. 나 등등 드라마가 한창 히트할 때는 무려 60%를 넘나드는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올 한 해 방송가 드라마를 일별해보니 그런 드라마를 능가하거나 비슷하게 열풍을 일으킨 드라마가 한 편도 없다. 지상파는 전멸이고 그나마 케이블에서 정도의 히트작이 나왔다. 시청률 40%를 넘나들던 욕하면서 보는 막장 드라마도 작가 임성한의 은퇴선언(?)으로 시들해졌다. 그 이유를 여러 갈래로 분석할 수 있겠다. 우선 컨텐츠의 다양화에 있다. 모바일로 상징되는 컨텐츠 시장이 TV를 대중들로부터 밀어내고 있다. 또 영화도 예전보다 훨씬 쉽고 간편하게 볼 수 있을 정도로 동네마다 멀티플렉스 극장이 많아졌다. 또.. 더보기
금수저? 어이없다고 전해라 금수저? 어이없다고 전해라 청계천을 밝힌 트리, 경향신문 사진부 올해의 유행어에 대한 결산 기사가 한창이다. 메르스가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간 올해의 유행어들을 살펴보면서 씁쓸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유행어가 우리 사회의 단면을 반영하는 바로미터라고 한다면 올해의 유행어들은 예년에 비해서 훨씬 부정적이다. 유행어가 갖고 있는 함의들을 들여다보면 희망이나 행복과는 거리가 먼 절망이나 불행과 이웃하고 있다. 우선 SNS 등을 통해 확산된 ‘헬조선’이나 ‘금수저’라는 단어를 보자. 여기에는 극심한 취업난과 장기적인 경기침체로 인해 N포세대로 전락한 청년층들의 절망과 분노가 담겨있다. 갓 스무살의 청년이 “정신적 귀족이 되고 싶었지만, 생존을 결정하는 건 전두엽 색깔이 아닌 수저 색깔이었다”는 유서를 남기고 .. 더보기
잔인한 추억공화국 잔인한 추억공화국 퇴행적인 추억이 유행하는 건 오늘이 불행하기 때문이다. 사진 경향신문 사진부 를 쓴 프랑스의 소설가 마르셀 프로스트는 ‘추억은 잔인한 것이다’라고 이야기 했다. 기억을 가진 모든 인간들에게 추억은 존재한다. 그러나 추억은 마냥 행복하고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서울 일원의 위성도시에 사는 초등학교 3학년과 초등학교 2학년이 어느날 처음 만나 대화를 나눴다. “얘, 너는 몇 학년이니?” “2학년인데.” “음 아직 천국에 살고 있구나. 3학년이 돼봐라. 너는 지옥을 경험하게 될 거야.” “지옥? 뭐가 지옥인데” “흐흐, 그건 네가 3학년이 되면 바로 알게 될거야.” 3학년인 초등학생에게 학원에 다니지 않아도 되는 1~2학년은 천국이었다. 본격적으로 영어학원과 수학학원에 다니면서 하루를 쪼개야.. 더보기
조영남의 ‘여친용갱’ 조영남의 ‘여친용갱’ 조영남 작 조영남은 가수들 중에서도 인문학적 스팩트럼이 넓은 사람이다. 그의 청담동 집을 채우고 있는 물건들 중에 유독 눈에 띄는 건 책이다. 또 한 편에는 그가 그린 수많은 그림들이 자리잡고 있다. 그의 본업이 가수라는 걸 지운다면 마치 인문학을 전공한 대학교수의 서재를 방불케한다. 그의 서재를 채우고 있는 수천권의 책을 일별해보면 주로 인문학 서적이 주류를 이루지만 어느 특정분야에 한정돼 있지 않다. 그가 단순히 장식용으로 그 책을 쌓아놓은 게 아니라는 건 이미 그가 쓴 많은 책들로 증명되었다. 예수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담은 책부터 그림에 대한 에세이, 시인 이상의 시를 분석한 책에 이르기까지 웬만한 저술가들의 그것을 뛰어넘는 책들을 펴냈고 그때마다 세상의 반향을 이끌어냈다. .. 더보기
다시 겨울공화국에서 다시 겨울공화국에서 -시를 사랑하는 딸에게 2 활활타고 있는 연탄. 사진 경향신문 사진부. 네가 있는 태평양 한 가운데 나라는 이제 본격적으로 여름이 시작되는 날씨겠구나. 여름바다는 늘 젊음의 기운으로 뜨겁지. 늘 사람들로 넘쳐나고 파도는 그 기운을 받아 더욱 거침없이 몰아치면서 싱싱한 근육들을 자랑하겠지. 예전에 캘리포니아 앞바다에서 서핑을 하는 청춘들을 보면서 한 없이 부러웠던게 생각나는구나. 서울은 여전히 지지부진한 겨울이 계속되고 있다. 겨울바다라도 가고 싶지만 충동적으로 바다로 달려가던 혈기가 나에게서 떠나갔는지 마음만 있고 몸이 따라주지 않는구나. 안타깝게도 철이 든 건지도 모르지만. 청춘의 한 시절 술 한 잔 하다가 충동적으로 부산행 심야기차에 몸을 싣고 광안리와 해운대까지 내달렸던 시절도 .. 더보기
그만하라고 전해라 그만하라고 전해라 신은경. 사진 스포츠경향 사진부 도도맘, 육흥복, 신은경. 이제 웬만한 사람들은 이름 뒤에 숨은 스토리를 줄줄이 꿸 정도다. 최근 몇 달 동안 굵직 굵직한 사회적 이슈들을 제치고 포탈사이트 검색에 상위를 차지했던 이름 들이다. 굳이 설명하자만 도도맘은 전 국회의원이자 방송진행자인 강용석과의 스캔들에 연루된 김미나의 블로그 닉네임이다. 육흥복은 트로트가수 장윤정의 어머니 이름이다. 신은경이야 대한민국 모든 이들이 아는 배우이자 최근 전 소속사와 전 남편과의 관계 속에서 불거진 돈문제와 자녀양육을 둘러싼 도덕성 문제로 시끄럽다. 도도맘의 경우 처음 시작은 ‘익명의 그녀’로 시작됐다가 도도맘이라는 닉네임이 공개되고, 급기야는 김미나라는 이름과 얼굴이 공개됐다. 게다가 방송출연 등으로 지명도(.. 더보기
신중현의 탁월한 여가수들 신중현의 탁월한 여가수들 신중현, 사진 경향신문 사진부 비틀즈가 서양 팝음악 역사의 분기점이라면 신중현은 한국 대중음악사의 분기점이었다. 한국 대중음악은 신중현 이전의 음악과 신중현 이후의 음악으로 뚜렷이 구분된다. 여명기 한국대중음악은 신중현으로 인해 눈뜨고, 신중현으로 인해 발아했다. 비틀즈와 롤링스톤즈가 선풍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전세계 음악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60년대 한국땅에도 신중현과 같은 싱어송라이터가 있었다는 건 기이한 일이다. 신중현의 출발은 소위 미8군 무대에서였다. 한국전쟁이 끝난 뒤 한국에 주둔해오던 미군들은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훈련만 하고 있기에는 피가 뜨거웠다. 그러나 불모지나 다름없던 한국대중음악으로는 그들의 욕구를 달래기엔 턱없이 모자랐다. 주한 미군들이 여가를 위해 출입했던.. 더보기
300:1, 비정상적인 실용음악과 경쟁률 300:1, 비정상적인 실용음악과 경쟁률 스타가 된다는 것, 밤하늘의 축포만은 아니다. 사진 경향신문 사진부 지난 주말 를 보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수많은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각 방송사마다 시즌을 거듭하면서 끊이지 않는데 어디서 저렇게 노래 잘하는 인재들이 끊임없이 나오는지? 그리고 각 방송사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입상하여 가수들의 반열에 오른 친구들은 지금 다 뭘 하는지? 지구가 생겨난 이래로 우리나라처럼 가수지망생이 많은 나라가 또 있을까? 하긴 한 집 건너 하나씩 전국에 노래방이 있는 나라도 우리나라 밖에 없다. 게다가 대통령부터 장관, 국회의원에 이르기까지 미래의 먹거리가 문화콘텐츠이고, K팝이야말로 먹거리가 떨어져가는 우리나라를 먹여 살릴 새로운 먹거리가 될 거라고 얘기하고 있다. 이쯤 되니 미.. 더보기
박진영, ‘춤에 미쳐 인생 조진 녀석’ 박진영, ‘춤에 미쳐 인생 조진 녀석’ 박진영, 사진 경향신문 사진부 지금은 JYP엔터테인먼트를 이끌면서 가수이자, 제작자, 프로듀서, 작사가, 직곡가, 방송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박진영이 '춤에 미쳐 인생 조진 녀석'이었다면 의아할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이력을 보면 무명시절 그런 말을 들었던 것이 당연할 지도 모른다. 박진영은 소위 스카이로 불리는 대학에 입학한 수재였다. 90년초 우수한 성적으로 연대 지질학과에 입학했으니 요즘 말하는 ‘엄친아’였다. 그러나 고교시절부터 박진영은 넘치는 끼를 주체하지 못하는 팔방미인이었다. 고등학교때 전교 학생회장에 출마한 박진영은 각 반을 돌면서 춤을 추는 유세로 학생회장에 당선되기도 했다. 일찌감치 이태원의 클럽에 출근하면서 익힌 춤솜씨를 학생회장 .. 더보기
유인경 기자를 보내며 유인경 기자를 보내며 어느날 편집국에서. 사진 경향신문 사진부 오늘 아침 출근하니 옆자리가 허전하다. 유인경 선임기자가 어제 날짜로 정년퇴직을 해서 경향신문을 떠났다. 몇 차례 이별의 자리를 마련하면서 마음의 준비를 했는데 닥치고 보니 마치 첫사랑 여자를 떠나보낸 기분이다. 아침마다 '하이, 광수'라며 반기던 여성동지의 부재는 한동안 내 마음을 시리게 할 것 같다. 어제 저녁 가수 조영남 형이 그녀의 정년퇴임을 기념하는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짜기로(?) 소문난 조영남 형이 자신의 여친그룹 중 최고령인 유인경 기자를 위해서 거한 자리를 마련했다. 평소 출연료 없이는 노래를 안하는 분이 김세환, 남궁옥분 등 가수들을 불러내서 노래도 부르고, 100여명의 초청객들이 암소 등심 스테이크를 배불리 먹도록 해줬다.. 더보기
SM 이수만의 흑역사 이수만과 현진영, 빛과 그림자 이수만, 사진 경향신문 사진부 tvN의 드라마 의 무대가 됐던 88올림픽이 열리던 해. 미국 유학에서 돌아와서 카페 를 경영하다가 조용하게 가요기획사 SM기획을 차린 이수만은 한국 대중음악계의 판도를 뒤집을 만한 그 ‘어떤 것’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가 찾고 있었던 것은 고 휘트니 휴스턴의 남편인 바비 브라운 같은 가수였다. 힙합을 기반으로한 소울풍의 노래를 소화하면서 다양한 춤도 능숙하게 출 수 있는 신인이 필요했다. 그는 춤꾼들의 성소로 알려진 이태원의 문 나이트 등을 돌면서 쓸만한 신인을 물색했다. 그때 눈에 띈 사람이 현진영이었다. 그는 이미 이태원에서는 탁월한 춤꾼으로 소문난 존재였다. 그러나 노래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춤꾼 현진영에게서 이수만은 가수로서도 탁.. 더보기
무미건조한 도시?, 서울의 시(詩) 무미건조한 도시?, 서울의 시(詩)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의 시인 김수영이 걸어나왔을 창경궁. 경향신문 사진부 따지고 보면 서울은 시적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공간이 아니다. 무릇 도시에서의 삶이란 매일매일 치열한 전투와 같아서 그 공간에서 시를 건져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시와 달리 대중음악은 서울 곳곳의 아이콘이 될만한 노래들이 꽤 있다.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나 동물원의 ‘시청앞 지하철 역에서’라는 노래에서부터 혜화동에 가면 역시 동물원의 ‘혜화동’이 있다. 패티김도 ‘서울의 찬가’를 불렀고, 조용필도 ‘서울 서울 서울’을 노래했다. 왕년에 정수라는 종로에 사과나무를 심고, 을지로에 감나무를 심자고 주장한 ‘아 대한민국’도 불렀다. 혜은이가 부른 ‘제3한강교’ 역시 한강을 건널때면 가끔 떠오르.. 더보기
'히트곡 제조기’ 김수현, 필 꽂히면 띄운다 '히트곡 제조기’ 김수현, 필 꽂히면 띄운다 김수현 작가, 경향신문 사진부 드라마작가 김수현이 ‘히트곡 제조기’라면 언뜻 이해가 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뇌리 속에 남아있는 몇몇 노래들은 작가 김수현의 힘으로 온국민이 따라 부르는 스테디송이 된 건 사실이다.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지만 그 시작은 문성재의 ‘부산갈매기’였다. 롯데 자이언츠의 공식 응원가로 일년 내내 프로야구장을 뒤덮는 그 노래 말이다. 대전 유성의 나이트클럽에서 밴드로 활동하던 문성재는 한밭기획 양승국 대표의 권유로 데뷔했다. 양대표는 구창모, 소방차, 심신, 전유나 등 80년대와 90년대를 풍미한 가수들을 키워낸 굵직한 가요제작자였다. 그러나 문성재는 본인도 인정하듯이 뛰어난 노래실력을 가진 가수가 아니었다. 80년대초 ‘사나이 울.. 더보기
응팔의 ‘19금’ 버전은? 응팔의 ‘19금’ 버전은? 의 한장면.tvN 제공. tvN의 을 보면서 엉뚱하게도 ‘응팔 19금 버전’ 시절의 이야기가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드라마 속에서처럼 도봉구 쌍문동의 골목길에서 살아가던 서민들의 이야기도 있지만 우리들의 1988년은 좀더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 다른 시각은 하필 ‘19금’에 해당하는 이야기라서 TV드라마에서는 소화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1988년을 이야기하면서 ‘19금 스토리’를 빼놓으면 앙꼬없는 찐빵 같기에 ‘앙꼬 이야기’를 해야겠다. 다 알다시피 총과 칼로 탄생한 정권은 1980년을 시작으로 전두환과 노태우 대통령으로 이어졌다. 결과적으로 우리들의 10년을 책임지게된 이들이 맨처음 들고나온 것이 3S정책(섹스와 스크린, 스포츠)이었다. 그 정책의 구체적인 .. 더보기
신승훈은 원래 ‘얼굴없는 가수’였다 신승훈은 원래 ‘얼굴없는 가수’였다 사진 경향신문 사진부 가수 신승훈이 11집 의 수록곡 프리뷰 영상을 공개하면서 오랜 침묵에서 깨어났다. 발라드 가수의 대명사가 된 신승훈이 원래 ‘얼굴없는 가수’였다면 믿기지 않을 것이다. 그는 1990년 내놓은 첫앨범 가 KBS 에서 5주 연속 1위로 골든컵을 차지하는 등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또 데뷔앨범이 70여만장의 판매고를 올리면서 데뷔와 함께 90년대를 화려하게 수놓은 스타가수로 발돋움했는데 얼굴없는 가수라니…. 신승훈은 대전의 다운타운가에서 노래하던 통기타 가수였다. 무명시절 그는 다운타운가에서 인정받기 위해서 팝송은 물론 가요에 이르기까지 800여곡의 레파토리를 준비할만큼 철저한 가수였다. 여성팬들에게 최적화된 목소리로 많은 ‘광팬’들을 몰고 다녔다. .. 더보기
'근혜'와 '영자' 사이 ‘근혜’와 ‘영자’ 사이 영화 , 사진 경향신문 사진부 ‘빨간꽃 노란꽃 꽃밭 가득 피어도 / 하얀나비 꽃나비 담장 위에 날아도 / 따스한 봄바람이 불고 또 불어도 /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 흰구름 솜구름 탐스런 애기구름 / 짧은셔츠 짧은치마 뜨거운 여름 / 소금땀 비지땀 흐르고 또 흘러도 /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이 불러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던 이 ‘사계’는 빠르고 경쾌한 멜로디와 리듬 속에 노랫말이 주는 무게 때문에 슬픔이 듬뿍 묻어나오는 노래다. 70년대 ‘잘살아보세’라는 구호 아래 시골에서 올라온 우리의 누이들은 청계천과 구로공단에서 매일 계속되는 잔업에 시달리면서 미싱을 돌렸다. 전태일의 분신이나 YH사건 등 굵직한 노동사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개발독재의 깃발 아래 우리 누이들과.. 더보기
시를 사랑하는 딸에게 사진 경향신문 사진부 시를 사랑하는 딸에게 딸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 저 켠에 환한 등불이 켜지는 딸아. 어느덧 십일월이다. 시월의 마지막 밤에 젊은 친구들은 할로윈축제로 시끌벅쩍 했다는데 대략 인생의 가을쯤에서 어정쩡하게 서 있는 아빠는 쓸쓸함이 절반이었다. 그래서 한 잔 했다. 다시 못올 것들을 호명하면서 말이다. 요즘 시집 읽는 재미에 푹 빠졌다고 했지? 지내놓고 보니 시(詩)는 마치 첫사랑 같은 것이더구나. 기쁠 때나 슬플 때, 비가 오거나 눈이 내릴 때, 꽃이 지고 황혼이 걸릴 때 문득문득 떠올라 목울대에 걸리는…. 그때마다 울컥하고, 요즘말로 ‘심쿵’하는 게 시였다. 네가 젊음의 한때 그런 시를 마음 속에 담아두는 건 첫사랑을 만나는 것만큼이나 행복한 일이지. 함민복이라고, 아빠가 아는 .. 더보기
조용필과 아이들, 방배동 노래방습격기 가요계의 맏형 조용필, 경향신문 사진부 조용필과 아이들, 방배동 노래방습격기 벌써 10년도 넘은 2004년의 일이다. 가을이 깊어가는 어느날 저녁에 서울 방배동 조용필 형의 빌라에서 그와 마주앉아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베이시스트 출신이자 ‘삐삐밴드’ 등 재기발랄한 록음악을 제작하여 세상에 내놓은 송홍섭씨도 함께였다. 오랜만에 들른 조용필 형의 집은 적막 그 자체였다. 예전 같으면 형수인 안진현씨가 손수 끓인 김치찌개에 소주를 내놓으면서 조금만 드시라고 했을 터인데 황망간에 세상을 뜨셨으니 넓은 집이 더욱 썰렁해 보였다. 일하시는 아주머니도 퇴근한 뒤였기에 용필이 형이 냉장고를 주섬주섬 뒤져서 김치며 밑반찬을 늘어놓고 소주를 마셨다. 소주를 마시면서 나눈 얘기도 늦가을의 쓸쓸한.. 더보기
꿈꾸는 민물장어, 신해철 생전의 신해철, 사진 경향신문 사진부 꿈꾸는 민물장어, 신해철 2009년 초겨울이었다. 형 저녁에 뭐해요? 술이나 한 잔 하시죠? 신해철의 전화를 받고 서둘러 일을 마친 뒤 약속장소인 강남의 한 바로 갔다. 기자가 그것도 데스크가 서둘러 일을 마쳤지만 밤 9시가 넘은 야심한 시각이었다. 검은 양복을 차려입은 신해철은 반갑게 나를 맞았다. 그무렵 신해철은 고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로 큰 슬픔에 빠져 있었다. 그당시 정말 많은 이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애도하고 슬퍼했지만 유독 신해철의 슬픔과 분노는 길고도 거칠었다. 그날 우리는 말없이 술을 마셨다. 기자생활동안 그를 인터뷰할 때마다 거칠지만 논리정연하게 솓아내는 말들을 정리하면서 그 생각의 깊이와 넓이를 익히 아는 터였다. 그날 신해철은 노무현 대통.. 더보기
방황하는 청춘들의 암구호, 김현식 영원한 청춘으로 남은 김현식, 사진 경향신문 사진부 방황하는 청춘들의 암구호, 가객 김현식 ‘돌아서 눈감으면 잊을까 / 정든 님 떠나가면 어이해 / 발길에 부딪치는 사랑의 추억 / 두 눈에 맺혀 있는 눈물이여. / 이제와 생각하면 당신은 / 내마음 깊은 곳에 찾아와 / 사랑은 기쁨보다 아픔인 것을 / 나에게 심어 주었죠.’ 늦가을이 되면 늘 생각나는 가수와 노래가 있다. 그 이름 김·현·식, ‘사랑했어요’다. 지금은 명반으로 기억되는 그의 2집앨범에 수록된 이 노래는 그의 다른 노래들과 사뭇 다르다. ‘어둠 그 별빛’이나 ‘바람인 줄 알았는데’ 등이 수록된 2집 앨범 속 김현식의 보이스는 특유의 스크래치로 거칠게 포효하는 느낌의 창법이 보이지 않는다. 이후 밀리언셀러로 남은 6집 수록곡이나 그때 불렀던 .. 더보기
내 친구와 국정교과서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서거 당시 오열하는 아주머니들. 내 친구와 국정교과서 ‘아이들이 큰 소리로 책을 읽는다 / 나는 물끄러미 그 소리를 듣고 있다 / 한 아이가 소리 내어 책을 읽으면 / 딴 아이도 따라서 책을 읽는다 / 청아한 목소리로 꾸밈없는 목소리로 / “아니다 아니다!” 하고 읽으니 / “아니다 아니다!” 따라서 읽는다 / “그렇다 그렇다!” 하고 읽으니 / “그렇다 그렇다!” 따라서 읽는다 / 외우기도 좋아라 하급반 교과서 / 활자도 커다랗고 읽기에도 좋아라 / 목소리 하나도 흐트러지지 않고 / 한 아이가 읽는 대로 따라 읽는다 / 이 봄날 쓸쓸한 우리들의 책 읽기여 / 우리나라 아이들의 목청들이여.’ -김명수 ‘하급반 교과서’ 나는 두말할 필요없이 국정교과서 시대에 공부했다. 김명수 시인.. 더보기
문산 세탁소집 아들 윤도현 1997년 당시 윤도현밴드 멤버들. 거칠지만 당당했던 윤도현, YB 20년 역사를 쓰다 가수 윤도현이 이끄는 록밴드 YB가 20년이 됐다. 대단하다. 이 나라, 이런 음악풍토에서 록밴드가 20년을 버티다니. 95년이었다. 야근을 하면서 편집국으로 배달된 신보들을 듣다가 한 남자 신인가수의 앨범에 눈길이 갔다. 윤도현의 ‘타잔’을 그렇게 만났다. 거침이 없는 싱싱한 보이스로 쉬지 않고 달리는 그의 노래에서 야성의 힘이 느껴졌다. 게다가 노랫말도 묵직하면서도 경쾌했다. 인터뷰 요청을 하고 신문 편집국에서 처음 만난 윤도현은 스물셋 싱싱한 청년이었다. 막 육군 단기병으로 제대를 했기에 아직 다 자라지 않은 밤톨머리를 한 그가 참 씩씩하게 느껴졌다. “노랫말에 무게를 담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대중들과 더불어 .. 더보기
가을비 그리고 ‘가을비 우산 속에’ 가수 최헌 가을비 그리고 ‘가을비 우산 속에’ 비오는 봄날에 박인수의 ‘봄비’가 있다면 가을비 내리는 날엔 최헌의 ‘가을비 우산 속에’가 있다. 누구나의 가슴 속에 계절의 변화에 따라 생각나는 노래 한 곡이 있겠지만 이렇게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엔 ‘가을비 우산 속에’가 절로 떠오른다. ‘그리움이 눈처럼 쌓인 거리를 / 나혼자서 걸었네. 미련 때문에 / 흐르는 세월 따라 잊혀질 그 얼굴이 / 왜 이다지 속눈썹에 또다시 떠오르나 / 정다웠던 그 눈길 목소리 어딜갔나 / 아픈 가슴 달래며 찾아 헤매이는 / 가을비 우산 속에 이슬 맺힌다.’ ‘가을비 우산 속에’는 최헌이 1978년 발표한 4집 솔로앨범에 수록된 곡이다. 최헌은 허스키한 보이스의 매력에 ‘뽕끼’가 가미된 이 노래로 70년대말 방송사의 10.. 더보기
지지고, 볶고, 노래하고. 추석연휴 ‘딴나라TV’ 70년대 추석귀향 열차표를 구하려는 시민들. 경향신문 사진부 지지고, 볶고, 노래하고. 추석연휴 ‘딴나라TV’ 추석명절이 지났다. 추석은 늘 풍성함의 상징이다. 보릿고개를 넘기고 온 들판에 오곡백과가 익어갈 무렵이면 적어도 먹거리 때문에 인심 사나워지는 일이 없는 시기가 추석이었다. 그러나 작금의 추석은 예전같은 풍성함이 없다. 올해 추석명절의 화두가 ‘먹고 살기 힘들다’, ‘이대로 가다가 나라가 거덜나겠다’였다니 그리 행복한 명절은 아니었다. 70년대 시골마을의 추석은 서울 갔던 동네 총각 처녀들이 내려와서 한 바탕 홍역을 치루던 시기였다. 별로 배운 게 없이 도회지로 일하러 떠났던 시골동네 처녀, 총각들의 서울살이는 뻔했다. 여자들은 구로공단이나 청계천에서 봉제공으로 일했고, 총각들은 건설현장에서 잡.. 더보기
추석대목, 성룡은 어디로 갔을까? 추석대목, 성룡은 어디로 갔을까? 거대 도시의 한 가운데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추석은 마치 ‘숨구멍’ 같은 것이다. 고향을 찾아가 차례도 지내고 그리운 가족과 친지, 그리고 동네 친구들을 만나서 술 한 잔 나누면서 고단했던 시간들을 털어버릴 수 있는 시간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추석이 돌아왔다. 이땅의 소시민들의 삶은 그 어느때보다도 어렵고 힘들지만 들판의 곡식과 과일들은 풍성한 햇빛으로 풍년이라는 소식이다. 그런데 추석인데, 추석임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허전했다. 뜬금없을 지는 모르지만 추석 극장가나 TV영화에 성룡이 사라진 것이다. 한 시절 ‘추석’과 ‘성룡’은 동의어였다. 적어도 지난 20년 안팎에 성룡은 이땅의 추석과 동지적 관계였다. 몸개그를 바탕으로한 성룡표 액션영화는 극장에서 늘 만원사례였고, 지.. 더보기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고?”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고?” 영화 이 1,272만명의 관객을 동원, 영화 을 넘어 올해 최고 흥행작에 올랐다. 역대 6위의 준수한 성적이다. 영화 의 첫 손 꼽는 명대사는 형사 황정민의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였다. 그의 아내 역시 검은손이 내미는 명품백과 돈다발을 팽개치고, 황정민에게 와서 “가오 떨어지게 살지말자”고 말한다. 류승완 감독은 영화배우 강수연(부산영화제 공동집행위원장)이 어떤 행사의 뒷풀이에서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야, 마셔”를 외치는 걸 들으면서 머릿속에 각인됐다고 토로했다. 어찌됐든 유승완 감독은 가오를 세우면서 영화 흥행에도 성공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사실 ‘가오’는 일본말이다. 일반적으로 얼굴을 뜻하지만 체면의 뜻으로도 쓰인다. 우리 일.. 더보기
댄스음악의 성지 ‘문나이트’ 출신 스타들의 인생유전 댄스음악의 성지 문나이트 출신 스타들의 인생유전 현진영 당대를 지배하는 가요 제작자들의 히스토리를 추적하다보면 어김없이 나오는 클럽이 있다. 80년대와 90년대 서울의 밤을 지배하던 이태원 관광특구. 그중에서도 클럽 가 있다. 는 약 80여평 크기의 평범한 나이트클럽. 그러나 이곳을 거쳐간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90년대 이후 우리 대중음악의 트랜드를 주도한 댄스음악의 성지이자 시발점이 된 곳이 였음을 부정할 수가 없다. 동명의 댄스뮤지컬로도 제작된 는 얼마전 작고한 서재용씨가 주인이었다. 베트남 참전용사 출신의 서씨는 이태원에서 이라는 클럽을 운영하다가 80년대 후반 의 문을 열고 90년대 후반까지 운영했다. 여러사람의 증언을 종합해보면 는 술만 팔고 춤을 추던 단순한 클럽을 넘어서 전국의 춤꾼들이 모.. 더보기